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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지혜의 꽃을 뿌리고, 자비의 노래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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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곽만연 1987년 05월 63호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지혜와 자비의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이 땅의 우리들은 지혜롭게 자비롭게 살고 있는 것인가? 부처님께 지혜롭고 자비롭게 살고 있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필자를 포함하여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부끄러워서 부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부처님께 매달리며 이 땅에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도록 빌고 또 빌고 싶다.
부처님께서는 연기설을 가르치셨고 이 연기설은 사회적 윤리로 표현할 때에 곧 공존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가장 필요한 정신인 것이다. 신문을 볼 때마다 답답해진다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야의 극한적인 대립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막히기까지 한다. 여·야의 극한적 대립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혐오증을 낳게 하고 있는데, 결국에는 그것이 정치가의 설 땅마저 없도록 하는 것임을 왜 모를까? 건전한 상대당이 있어야만 건전한 자당이 있을 수 있다는 공존의 윤리가 아쉽다. 삼저호황 덕분으로 기업가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고 있고, 또 그 결과를 자랑하는 소리는 드높은데, 왜 오늘의 경제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근로자의 임금 인상에는 그다지도 인색해야 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나서기 전에 기업 스스로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수많은 건전한 중소기업이 있어야만 장기적으로 국제 경제력을 가진 대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의 윤리가 아쉽다.
올해 부처님께서는 5월 5일 어린이날에 오셨다. 부처님께서 5월 4일이나 5월 6일에 오셨다면 연휴를 즐길 수 있을 것인데,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왜 올해는 부처님께서 어린이날에 오실까? 우리 모두에게 어린이처럼 살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피부색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권력·재산을 초월하여 어린이들은 함께 살고 함께 즐긴다. 아 모든 걸 훌훌 던져 버리고 어린이처럼 살고 싶다. 어린이처럼…
모든 불교도들도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어야하겠다. 절에 가서 등불을 켜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자식이 부모님 생신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생신을 기려야 한다. 또한 우리 마음의 등불도 밝혀야 한다. 자신을 밝히고 사회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부처님 생애를 배우고 익혀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살았던 시대는 인도 역사상 보기 드문 전환기의 시대였다. 정치적 격동, 가치관의 혼란, 경제적 격변, 신분 이동의 극심 등 참으로 많은 문제가 얽힌 시대였다.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가르쳐 주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가르침을 구해야 할 때이다.
부처님의 출생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다. 그러나 그가 B.C. 5~6세기에 활약한 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석가족의 후예로서 태어났다. 그 당시 석가족은 전 인구가 백만 정도의 소국가였으며 코살라국의 보호를 받아서 국가를 겨우 유지하였다. 석가족의 정치 체제는 중앙 집권적 전제 정치가 아니라 귀족적 공화 정치, 즉 귀족의 합의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나중에 부처님의 종교적 모임인 승가에 영향을 미쳤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슛도다아나(Sudd-hodana) 왕인데 그 뜻은 ‘깨끗한 쌀’ 이라는 뜻이다. 이는 석가족의 주요 산업이 농경이었음을 말해 준다. 왕은 오랫동안 후손이 없다가 40이 넘어서야 겨우 아들을 얻었다. 어머니는 마야(Maya) 왕비였다. 경전에 의하면 흰 코끼리가 부인에게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고 한다. 산월이 가까와지자 마야 부인은 그 당시 풍습대로 친정인 코올라국으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두 나라의 중간에 있던 롬비니 동산에서 출산하였다. 부처님이 이처럼 길위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의 생애를 암시해 주는 오묘한 뜻이 있다. 그는 길 위에서 탄생하여서, 길(道)을 찾아 출가하였고, 성불(成佛)한 뒤 온 중생을 일깨우기 위하여 북부인도 전역의 길들을 맨발로 걸으셨으며, 인도 북방으로 가는 도중 길 위에서 열반하셨다. 일신의 평안만을 위한 이기적 생애가 아닌 베푸는 생애를 상징하는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며, “우주 안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이 세상 모두 고통 속에 잠겨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건져 평안케 하리라”라고 외쳤다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뜻이다. 그의 외침 속의 ‘나’는 부처님 자신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기 자신, 곧 인간 개개인의 본체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하여 인간의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가 있었다면 그의 이 선언은 위대한 인간승리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아기 태자가 만 백성이 환호하는 가운데 카필라성으로 돌아오자 부왕은 싯다아르타(Siddharath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뜻은 ‘모든 것을 성취한,’ ‘미덕을
갖춘’ 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머니 마야 부인이 태자를 낳은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태자는 이모인 마하프리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는 이레 만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인생고를 맛보았다. 이 사실은 그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부처님처럼 인간에 있어서 괴로움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상가는 없었다. 그 문제 때문에 출가하여서 결국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체득하였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게 인간의 고통 문제를 다룬 사상가라면, 고통 가운데서도 가장 괴로운 생모와의 사별도 그러한 의미에서 부처님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태자는 왕이 되기 위한 그 당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태자 나이 20세 때 야소다라(Yashodara)를 맞이하여 결혼을 하였다. 그리하여 결혼한 지10년 후에 비로소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라아훌라(Rahula)라고 했다. 인도의 습속으로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문의 크나큰 불행이었을 뿐 아니라, 가계의 단절은 종교적으로도 최악이었기에 아들의 태어남은 태자가 세상을 떠나 도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태자는 29세 때 출가했는데 ‘대장엄경론’에 보면 마지막으로 잠든 부인과 아들을 보고 헤어지는 고통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리를 얻기 위한 떠남, 그래서 어느 학자는 출가를 위대한 버림(The Great Renouncement)이라고 하였다. 태자는 가야산 고행림에서 6년 동안 고행하였다.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없는 것처럼 6년 동안의 수행은 알을 깨는 작업이었다. 6년 후 그 때까지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고행을 버리고 소 치는 소녀 수쟈다가 바치는 죽을 먹고 기운을 차려 붓다가야의 보리수 밑에 앉아서 자기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인생과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대각(大覺)을 성취하였다. 그때 나이 35세였다.
‘이제 어둠은 영영 사라졌도다.
어둠의 흐름도 모두 사라졌도다.
이제 다시 생사의 길을 따르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고 선언하노라’
-자설경
그때부터 태자는 스스로를 붓다(Bud-dha : 깨달은 자, 佛陀)라고 불렀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을 통찰했다는 긍지이며 만유의 존재당위를 독특한 지견으로 열어보였다는 자부이기도 하였다. 동양적 성자는 ‘아는 자’가 아니라 ‘깨달은 자’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절대적 존재가 주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내증(內證)이다.
진리를 깨달아 성불한 후 설법하는 것을 주저하자 범천(梵天)이 부처님께 중생을 위하여 세 번 청했다고 한다. 그 당시 가장 영향력있는 정통사상인 바라문교의 최고신인 범천이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세상을 위하여 설법을 청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가 그때까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던 바라문교보다도 더욱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부처답의 성도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우리 불자는 부처님의 생애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나서 다시 모든 중생이 사는 곳으로 내려 오신 근본 정신을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어디로 오실까? 부처님께서는 양지보다는 음지로, 호화 주택보다는 달동네로, 고아원에, 감옥으로 오실 것이다.
요즈음 우리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일로해서 불안해 하는 것 같다. 옛날 같으면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하여 꽃을 뿌리고 노래를 지어 부를 것이다 우리도 지금이야말로 불안한 징조들을 없애기 위하여 산화공덕(散花功德)이 필요한 때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슨 꽃을 뿌리고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언가. 개나리꽃일까 진달래일까, 아니면 매화꽃일까. 아니다. 오늘 필요한 것은 지혜의 꽃이요, 자비의 노래일 것이다. 지혜의 꽃과 자비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높이 높이 날아 멀리 멀리 인생과 세계를 보게 할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가질 때, 그것이 꽃이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 주위에 있는 흉조들을 걷어 낼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살 때, 5월 5일 하루만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일년 365일에 날마다 날마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