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생명관에 입각한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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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고재종
1997년 08월 186호
칠월도 중순. 들판의 볏줄기들이 제 푸르름을 한없이 구가하며 벌써 배동을 시작하고 있다. 마을 앞 삼밭엔 풋고추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참깨밭엔 은종 같은 깨꽃송이들이 딸랑딸랑 소리라도 낼 듯 흔들린다. 봄에 태어난 햇송아지들은 벌써 중소가 다 되어 냇가에서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울고, 이곳 저곳 비닐하우스 속에선 수박과 포도들이 일일이 영글고 있다. 농사꾼들은 참으로 마음 하나는 잘 다스린다. 그 서럽고 분하고 억울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은 죽고 싶은 심정을 안으로 안으로 삭이며 논에겐 밭에겐 그렇게 오지고 대견스럽게 수많은 작물들을 가꾸어 놓았다. 행여 마당가나 손바닥만한 하천의 뙈기밭도 놀리지 않고 가지모며 들깨모종을 놓고, 울타리나 담장 위로는 오이넝쿨이며 호박덩쿨이 쭉쭉 뻗어 올라가게 했으니 농사꾼들의 그 마음 깊이는 정말 얼마만한가.
나도 몇 년 전까지 농사를 지어 봐서 잘 알지만 사실 심은 공력조차 거두지 못하는 곳에까지 씨를 뿌리는 게 농사꾼이다. 그 예로 길가에 있는 밭의 가장자리는 개가 똥을 누고 아이들이 늘 밟고 다녀서 무척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땅을 일러 ‘녹두밭웃머리’ 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땅에 주인들은 한사코 씨를 넣는다. 아이들과 개들이 분탕질을 쳐 놓으면 쳐 놓는대로 한해 다 가도록 그 곳에 몇 번씩이고 씨를 넣는다. 결국 그 자리에서 가을이면 콩꼬투리 몇 개 건지고 말지라도 쉽사리 땅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날 계산과 이해타산에 밝은 자본주의적 사고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위이다. 세상은 온통 경제지상주의를 외쳐 대고 너도나도 세계경영을 주창해 대지만 아직도 밥과 생명의 먹거리 생산을 위한 농사꾼들의 싸움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농사가, 본전을 건지지 못할지라도 거기 땅이 있으매 씨를 뿌리고야 만다는 전통적인 농사와는 달리 대부분 상업영농에 치우쳐 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 심하게 농약을 치고, 화학비료로 범벅하고, 성장촉진제 주사를 놓는 등 작물의 상품성을 높이려고 안달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짓들도 도시 수요자들이 언제나 때깔곱고 탐스럽고 벌레 먹지 않은 상품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하는 것일 뿐 농사꾼들의 근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더구나 오늘날 농업말살정책 속에서 배운게 농사일밖에 없는 사람들이 사력을 다하여 살아내려고 몸부림하는 그 때문에, 먹어서 건강과 생명을 유지할 수있게 해 주는 농작물보다, 상품성을 갖춘 직물 생산에만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을 어찌 부도덕하다고 매도하랴. 이는 도덕 이전의 생존문제인 것이다.
모든 문제는 정부 당국의 농업홀대정책에서 발생한다. 떠나가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 민들겠다던 문민정부의 지난 사년 동안의 정책은 농가부채를 9조 원에서 27조 원으로 늘려놓았을 뿐이다.
쌀 개방만큼은 절대로 않겠다던 대통령의 공약은 지난 7월1일부로 농산물의 전면개방으로 바뀌면서 헛구호로 끝났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체 식량자급율은 현재 25.9퍼센트로 하락하였고 그것도 쌀을 제외한 자급율은 5.3퍼센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역시 그 바람에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져 온 소값 파동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올여름 호남지방의 양파는 한 푸대당 이천 원도 못 견져 온통 밭에서 썩어 갔으며, 강원도의 하지감자는 1킬로그램에 천 원도 안 되는 똥값에 처분되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이를 농민들의 과잉생산 탓으로 돌리고, 농민들이 제하재비를 하여 값이 조금 오른다 싶으면 곧바로 외국 것을 마구잡이로 수입하여 농사꾼들을 옴나위도 못하게 해 버린다.
결국 사 년 동안의 농어촌 구조 작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농촌에서 농업이탈인구는 날마다 늘어가고 그 대신 그 자리에 골프장과 러브호텔과 이른바 ‘가든’이라는 호화음식점만 가득가득 들어서서 경기도 어느 군은 속칭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라 불릴 만큼 파탄한 사실에서 쉽게 입증된다. 취임 초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부동산 과다 보유 실태를 보고받고는 토지를 많이 가진자들이 고통을 받게 하겠다고 공언한 것과는 정반대로, 문민정부의 신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국토이용관리법 개정과 새 농지법의 제정 탓에 전국 농림지역의 52퍼센트나 되는 면적이 준농림지역으로 바뀌어 버렸다. 준농림지역이라 함은 농지를 언제들지 농업 이외의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니 농지의 환락지대화, 투기장화는 당연지사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경자유전의 헌법조문은 용자유전의 새 법칙으로 대체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외국의 한 학자는 “한국은 경제개발면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농지감소율과 식량자급율의 감소 속도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의 모범국”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문민정부 시대에 들어와 해마다 매년 농지가 여의도 면적의 사백팔십 배가 넘는 양이 줄어들고 식량자급율은 북한의 지급율 4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25.9퍼센트에 지나지 않느 ㄴ것으로 이미 증명되고 있다고 김성훈 교수는 말한다.
이러하니 전 국토의 생태계 파괴는 또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본디 농업은 식량과 먹거리 생산뿐만 아니라 장마때의 홍수 조절 기능과 토양 침식 방지와 수자원 함양 역할을 하며, 또 국민에게 초록 공간을 제공하고 대기정화와 대기보전 기능을 하는가 하면, 국토 균형개발 유도와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농업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니 바로 농업이 무보수로 수행하고 있는 이 소중한 기능마저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지상 주의자들이 내세운 부단한 성장논리 탓에 산업사회의 비경쟁력 지대쯤으로만 여겨 완전히 소외시켜 버린 농촌을 이제라도 생명과 평화의 고향이라는, 그리고 이 땅의 환경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리는 새로운 인식을 통해 하루빨리 되살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 국민은 금명간에 외국에의 식량 종속과 국토의 생태계 파괴로 말미암은 어마어마한 환경부담금을 엄청나게 물게 되는 괴로움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 푸르른 결실로 치닫고 있는 저 들판이 과연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인지. 아직도 그 생명을 길러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오백만 명의 농민들의 삶은 또 어떻게 보장될 것인지. 전도는 암담하지만 그러나 지구상의 인간이 어찌 땅의 소산물을 먹지 않고 히루인들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겠는가. 아마 그 진실의 확인이 농업의 근본적인 희망일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