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현대극과 불교연극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기획연재 - 김미미 1987년 05월 63호
지금까지 우리는 불교연극이 어떠한 경위로 어떻게 정착되었으며 또한 다난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형태로 민족과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하였나를 살펴보았다. 동시에 한국의 불교 연극사는 곧 한국의 민속극사라 결론지을 만큼 우리의 민속극에 짙게 깔린 불교적 사상 및 세계관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제 이 여정의 중반부에 해당할 20세기 이후 즉 다시 말해 개화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신극(新劇)으로서의 불교 연극 활동의 양상과 그 성과 및 진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여러 학자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공연된 최초의 서구적 개념의 연극은 창극(唱劇) 형식으로 꾸며진 이인직(李人稙)의 ‘은세계(銀世界)’였다. (1908년 11월 원각사 공연). 1인극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 일대 혁신을 단행했던 당시의 창극은, 종래의 창자(唱者) 1인이 해내던 모든 배역을 독립된 배역으로 분담시켜 여러명의 창자가 동시에 공연한 일종의 판소리 오페라였다. 또한 이와 때를 같이해 공연을 위한 독자적인 극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은 당대의 명창(名唱)들에게 여간 신명나는 일이 아니었다. 비록 극장의 형태는 서구의 것을 따온, 우리에겐 사뭇 생소한 것이긴 했지만 초기 예인(藝人)들의 이러한 갈등은 전통의 현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치러야만 했던 선구자적 진통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창극 활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도 전에 조국은 치욕스레 일제와 합방을 하고 이후 물밀듯이 밀려든 외래 문화의 홍수 속에 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당시 민간에선 소위 ‘신파극’이라 하여 눈물과 감정에 호소하는 새로운 극형태가 성행, 장안을 휩쓸기 시작했고 이어 ‘토월희(土月會)’를 중심으로 하여 일본 유학생들로 구성된 지성파측에선 소수 엘리트 계층을 겨냥한 서구의 번역극으로 이 땅의 신극 운동의 막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무대를 잃은 우리의 명창들은 다시 대갓댁의 사랑채 식객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거나, 아니면 낙향의 시름을 달래며 몇 안되는 제자를 키우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도리밖에 없었다. 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자연스레 만나며 발전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때아닌 국난으로 갈취당한 참으로 안타까운 개화기 신극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개화기의 연극인들이 이룬 공로만큼이나 그들의 무비판적 도입식의 서구 연극이 남긴 상처의 후유증은 깊었다. 우리의 전통 연극이 그러했고 또 뒤늦게나마 오늘날 연극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민중과의 직접적 교감을 통해 본래의 제의성(祭儀性)을 회복하고자 하는 문제 등은 개화기 연극인들에게 있어 구 시대의 낡은 유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서구문화에 대한 벅찬 감동을 한시바삐 이 땅의 몽매한 민중에게 보급하려는 선각자로서의 열뜬 고뇌를 안고 우리 문화의 주체마저 뒷전에 밀어둔 채 쫓기듯이 우리의 음성과 모습만을 빌어 남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제 연극(이 단어 자체부터 서구적 개념의 ‘드라마’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다.)은 더 이상 민중의 적극적 참여를 원치 않았으며 관객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깜깜한 그들만의 공간에 앉아 그저 눈물을 흘리고 박수나 치면 되었다. 이렇듯 기형적 출산과 성장 배경을 가진 한국의 신극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번역극 일색인 연극계의 암담한 현실로 이어져 왔다.
여기에 70년대를 맞으며 일부 진보적 연극인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전통성의 회복 및 전통 문화의 현대적 수용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시도였다. 그 물결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던 연극계에 신선한 새바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비로소 그동안의 무분별한 외래 문화의 수입으로 인해 손상되고 도외시되었던 ‘우리것’을 되찾자는 아픈 각성의 메스를 스스로 대기 시작한 것이다.
각 대학을 중심으로 전통 가면극과 판소리 등의 민속 연회가 재연되었고, 기성 연극에 있어서도 이들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극에 도입 내지는 전통의 현대학 작업이 몇몇 뜻있는 연극인들에 의해 다각도로 시도되어졌다. 그들은 단순한 전통성의 회복에만 역점을 둔 것이 아니라 전에 없이 연극을 통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사회 참여의 기틀을 구축하려 했는데, 이는 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일련의 사회운동과도 결부되어 사회주의 미학 이론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민중극 운동으로까지 전개되어 갔다. 이상이 개화기에서 격동의 7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한국 신극사의 간략한 이력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하에서 불교 연극이 가지는 문제점도 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30년 공연된 박 진(朴珍)의 ‘나무아미타불’은 개화기 이후 사찰을 떠나 극장에서 공연된 최초의 불교 연극이었다. 이후 불교계가 아닌 연극계에서는 매년 4월 초파일을 즈음해 흥행을 노리는 불교연극을 의례적으로 공연해 왔다. 그 소재에 있어서도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전기적 인물이나 설화 등에 기초를 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대개 기존의 소설 등을 극화한 각색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자주 극화되던 소재를 인물별로 살펴보면 이차돈, 원효대사, 마의태자, 사명당, 석가모니, 한용운, 목련존자 등으로 이들 역사적 위인들의 숭고한 업적과 그들의 인간적 고뇌 및 갈등을 주로 다룬 것이 많았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던 불교 전설이나 설화는 주로 삼국유사에 근거한 에밀레종의 전설이라든지 무영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혹은 선덕여왕과 지귀의 비극적 사랑 등 대개는 우리에게 친숙한 불교적 테마가 많았다.
이들 연극 중에는 이 광수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꿈’이나 역시 김 성동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만다라’처럼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있었던 반면, 연례적인 초파일의 기념 행사 정도로 끝나 그 대본마저 남아 있지 않는 것도 허다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면으로 시각을 돌려 자아 반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대적 민족정서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연극이 아무런 비판없이 서구 연극이 만들어 놓은 틀 속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상호모순과 갈등을 느끼다 아제야 그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 오늘날 연극계의 상황과 거기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해 온 불교 연극의 현실은 그 나아갈 활로에 있어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종래의 불교 연극이 가졌던 관중과의 교감을 통한 불교적 메시지의 전달이나 폭넓은 관중의 참여와 더불어 이루어지던 현장성 둥의 문제가 현대의 불교 연극에서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더구나 불교 연극이 가지던 극적 제의성이 좁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더러 단순한 스토리 전개 위주의 연극 형태도 관중의 깊은 감동을 자아내지 못하는 주요원인 중 하나다. 이는 다시 말해 불교 연극을 불교 문화와 민족 문화의 바탕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서구극의 모방이랄수 있는 기존의 연극 형태속에 적당히 대입시켜 버린데서 오는 결과이다.
이제 불교 연극은 새롭게 태어나야 하며 그러기 위해 무진장한 불교문화와 민족 문화의 유산을 자양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그 실제적 방법론의 하나로 불교 연극의 근간을, 종전 모든 사찰에서 승려와 신도들에 의해 진행되던 불교의식(齋)의 절차에서 찾아보는 것도 새로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불교 의식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 가지기 쉬운 제사나 불공 등의 편협한 종교적 이해의 관념을 벗어 버리면 그 곳에서 훌륭한 종합 예술로서의 불교적 연극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즉 하나의 법회 의식(齋)은 다양한 춤과 음악, 그리고 양식화된 스토리의 전개가 하나가 되어 각종 악기의 효과와 어우러져 장엄한 무대 속에 장소를 옮겨가며 환상적으로 연희되는 완벽한 연극의 형태를 갖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중생을 지옥에서 극락으로 이르게 하는 상징적 스토리를 승무, 바라춤, 나비춤 등의 무용과 범패, 염불 등의 음악, 그리고 각 불단에 모셔진 불, 보살, 신장, 나환상, 탱화, 벽화, 단청 등의 만다라적 구조들이 주는 장엄한 극적효과에 힘입어 보다 적극적인 관객의 참여로 꾸미는 한편의 장엄 연극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관객(신도)은 전통 민속연희에서처럼 독특한 지위를 갖는데, 법사의 선창에 따라 때로는 같이 염불을 외기도 하고 무대 위에 모셔진 불상에 예배를 하고 혹은 줄지어 탑을 돌기도 한다. 그냥 방관자적 자세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참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찰의 법회 의식은 오늘날 현대 연극이 지향하고자 하는 궁극의 모습을 그대로보여 주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훌륭한 연극적 원형을 서구적 편협한 연극관에 사로잡힌 나머지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통렬히 반성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불교 의식 등에서 가졌던 풍성하고도 고양된 종교적 체험, 한판 연희적 무대에서 얻는 참여의 즐거움 등과 오늘날 타성에 젖은 서구식 연극을 외면하는 민중과의 함수를 이제는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때이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미래의 불교 연극이 의식 중심으로 장엄하게 펼쳐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우기 오늘날 많이 간소화 된 제(齋)의 모습을 과거처럼 부활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단지 불교의 제의식(諸儀式)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많은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불교가 갖는 독특한 상징성과 제의성, 관중과 주재자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참여의 정신 등을 오늘날 불교 연극에서 살려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요즘 연극계에서도 반성적 자각으로 대두되는 문제, 즉 한국적 토양에서의 연극적 구성 요소의 새로운 해석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기존 불교적 문화 속에 담겨 있는 춤, 노래, 놀이, 제의 등에 대해 연극적·재해석 작업을 요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 연극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 살리우는 작업은 바로 오늘날 현대 연극이 지향하는 연극의 마당성, 현장성, 그리고 전통 예술이 지닌 총체적 형태의 참신한 현대적 구현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