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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吉祥)과 흑이(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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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와 비유경 - 김현산 1987년 05월 63호
늦은 밤, 시계는 12시에 가까와지고 있다. 정릉행 버스를 탄 나는 쉽게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학생인 듯한 젊은이, 술을 한 잔 걸친 듯한 젊은이, 몸뻬를 입은 아주머니 등 10여명 내외의 승객들이 타고 있는데 모두 졸리운 듯 눈을 감고 좌석에 기대어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늦은 밤 차를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나 역시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와 마신 술기운이 퍼지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한참을 졸던 나는 갑자기 떠드는 소리에 눈을 댔다.
“뭐라구, 안내양이 안내를 하는 게 임무아냐 뭘 잘했다구 말대꾸야.”
“나참, 왜 소리는 질러요.”
“소리 안지르게 됐어. 내가 탈 때 이야기 했잖아. 술을 먹었으니까 길음 시장에서 내려달라구.”
“난 못들었어요.”
“야, 왜 못들었니. 귀머거리냐?”
“뭐라구. 당신이 뭔데 야자야.”
“아니 이게 눈에 봐는 게 없나?”
“그래 없다, 없어. 어쩔래.”
안내양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운전 기사가 한마디 참견을 시작했다.
“여보슈, 젊은이 그러지 말구 차비 줄테니 얼른 내리쇼. 그 애도 피곤하다 보니 졸다가 안내를 못한 모양인데 이해하시구료. 원…젊은 사람이…똑같애.”
기사의 달램 반 핀잔 반의 이야기에 젊은 회사원은 안내양과 기사를 둘러보고 차내를 둘러보더니 안내양이 주는 토큰을 받아쥐고 다음 정류장에서 쫓기듯이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 버스 안은 다시 조용해지고 승객들은 다시 졸기 시작했고 안내양 역시 이런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승강구에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조그만 불교 잡지사에 근무할 때였다. 비록 반듯한 기자증이나 일간신문 기자와 같은 ‘무관의 제왕’ 이라는 칭호를 듣는 보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기자로서의 직책을 충실히 하려고 애를 쓸 때였다. 그래서 내딴에는 소위 발로 쓰는 기사를 찾는다고 편집국장에게 큰소리도 쳐놓은 터였다. 이래저래 나는 다시 졸고 있는 안내양을 쳐다보며 슬며시 기자 근성을 발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승강구 뒷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아 안내양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피곤하죠. 이게 막차요?”
“예”
“난 종점에서 내리는데 아가씨 많이 봤어요.”
“그러세요?”
“지금 회사 들어가면 바쁜가요?”
“입금하고 하면…아니 왜 그래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나는 한동안 난감했다. 무작정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스 안에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얻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궁리끝에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아가씨 실은 내가 누굴 찾으려고 하는데…내 동생이요. 나보다 먼저 시골에서 서울로 왔는데 안내양을 하고 있더구만. 그런데 몇달 전부터 소식이 끊어져서 나도 취직을 하러 온 김에 알아보려구…”
“그래요.”
“그래서 그러는데 나좀 도와줄 수 있어요?”
“어떻게요?”
버스는 어느덧 종점에 가까워졌다.
“아니 여기서는 얘기가 길고, 내일 비번이면 나와 잠깐 만납시다.”
안내양은 그제서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나쁜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던지 의외로 선선히 약속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날 그 안내양과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물론 만난 지 십분도 안되어서 나는 동생을 찾는다는 것이 거짓말임을 실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까지 데리고 나온 그녀에게 없는 동생을 꾸며대기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녀에게 들은 안내양의 생활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고달펐다. 그들은, 졸음에 시달리면서 1 ~2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를 돌아 종점에 도착하면, 회사에 입금시킨다, 차를 닦는다 하여 제대로 쉴 사이도 없이 또 차를 타야만 했다. 이렇게하여 하루 열 번 이상을 똑같은 코스로 달리고 나면 거의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 하루 근무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한 벌 밖에 없는 유니폼을 매일 빨아야하고(특히 여름) 그밖에 빨래나 세면을 하고 나면 새벽 1시가 훨씬 넘어서야 하루 종일 시달린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리고 달콤한 꿈도 꿀 사이 없이 깊은 잠에 떨어지지만 안내양이란 직업은 결코 하루의 피로를 풀 만큼 충분히 오래 자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새벽 5시면 기상을하여 또 그 지긋지긋한 버스를 타는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통 안내양 근무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나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제이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보통 3일 일하고 하루 쉬며 심지어 7~8일 일하고 하루 쉬는 예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중노동에 시달리는 안내양의 임금은 그당시(83년) 십이만원에서 십오만원 정도이지만 이것은 일당식 월급제이기 때문에 안내양으로 하여금 7~8일의 중노동을 계속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따라서 안내양들은 중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한편으로는 승객들의 비인간적 대우를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내가 안내양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것은 이러한 근무 조건만은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안내양에게만 국한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녀 자신이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집은 전남 여수예요. 얘는 나하고 이웃에 살던 친구인데 우리는 중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왔어요. 먼저 와 있던 친구언니 소개로 버스를 타기 시작했는데 힘들긴 하지만 후회는 안해요. 누가 공짜로 밥먹여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다달이 집에 얼마 안되지만 돈도 부쳐 주고… 그리고 고향 친구들 중엔 서울와서 술집에 나가는 얘들도 있는데 개네들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학교에 다닐 때 민중의 실상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고민에 빠졌있던 나는 안내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생각하며 이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찾도록 하기 위해 무슨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우리도 요즈음에는 노동 조합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C운수 애들이 농성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그렇지만 그렇다구 무조건 개네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 나름의 생활도 있구, 또 그렇게하는 것만이 지금의 고생을 벗어나는 길은 아니잖아요. 물론 막판에 이르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안내양의 이 말에 나는 내가 여태까지 소위 민중의 실상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활 속에서 아주 잘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행복해지려면 이까짓 고생쯤이야 견뎌야죠. 그렇다고 무조건 살고 싶지는 않아요. 언제까지 술 취한 사람에게 ‘야’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지도 않고…”
‘아비달마 구사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어느 곳에 한 독신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평생 소원이 한 번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기도를 했는데 그 보람이 있었는지 어느날 밤
누가 그의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굴까 하고 열어 보았더니 밖에 서 있는 것은 길상(吉詳)이라는 행복의 여신이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으나 여신은,
“잠깐 기다려요, 나에게는 누이가 있는데 같이 들어가야 돼요.”
하고 뒤에 있는 자기 동생을 소개했다.
그는 그 동생을 보고 놀랐다. 언니는 아주아름다운데 동생은 아주 추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언니에게 물었다.
“당신의 동생이 틀림없습니까?”
“예, 바로 내 동생인데 이름은 불행의 여신 흑이(黑耳)랍니다.”
“그래요. 그럼 당신만 들어오고 동생은 딴 데로 가면 안될까요?”
“그건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함께 있어야 합니다. 혼자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읍니다.”
그는 곤란해졌다. 그가 원한 것은 행복이지 불행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머뭇거리자 행복의 여신은 다시 말했다.
“곤란하시다면 둘 다 돌아갈까요?”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안내양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참으로 괴로와 해 본 후에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불행을 겪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더 행복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교를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인간을 떠난 곳에있지 않다. 그것은, 즉 행복을 느끼는 마음은 자신의 마음가짐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그래서 이러한 마음 상태를 중도라고 표현하셨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찾아 그 속에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배우고자 한다. 진정한 가르침은 바로 우리 삶 속에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비유경을 설하신 것이다. 당시의 인간들의 삶을 비유하시어 무지한 중생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우리들 삶 속에서 지혜를 찾는 걸음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