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 멀리 티베트 고원 위의 라다크라고 하는 지방의 이야기이다. 산업화, 서구화, 현대화의 과정을 거쳐가면서 농촌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끝내 평화와 평온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티베트 관찰기 「오래 된 미래」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절실한 공감을 일으키는 글이다. 개발로 인해 농촌이 파괴되고 끝내 농촌이 죽어가는 현실을 서양의 양심적인 지식인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지방자치제도 시행 뒤에 부쩍 더 개발논리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농업은 인간의 온갖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키며, 특히 제3세계의 대다수 민중에게는 생계의 직접적인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과 십수년 전만해도 농지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의 위치가 불안하게나마 지켜졌다. 그러나 밀어닥친 서구화, 근대화, 개발논리의 태풍앞에 농사를 중시하던 우리의 전통은 태풍 앞 조각구름의 신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농촌은 빠르게 파괴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다투어 도시로 떠났다.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젊은이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처럼 여겨지고, 농촌총각들은 적령의 나이가 지나도 장가를 들 수 없게 됐다. 우리 역사에서 농부의 지위가 지금처럼 낮은 적은, 또 농사가 지금처럼 천덕구니로 취급 받은 적은 없었다. 국제적인 경제수뇌회의에서도 농업 문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 문제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데에 ‘장애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농부들은 다음 세대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보다 앞서 농촌의 몰락을 경험한 나라들이 조금씩 드러내 보이는 농업의 중대성에 대한 자각은 흐릿하게나마 농부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환경의 오염과 파괴 등 생존에의 위기가 가져다준 생태적 농사법이나 유기농법의 필요성 대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직판 라인의 형성 등은 분명 농부들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짐들은 소규모 농가와는 여전히 상관이 없는 일이다. 특허 대규모의 농장이 없는 것이 우리 농촌의 특징인 만큼 우리나라 농가의 절대 다수는 지금도 솨락의 길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농촌의 몰력이 주는 폐해가 결코 농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칼국수로 라면으로 날마다 먹는 수입밀가루가 쥐도 파먹지 않을 만큼 농약과 방부제로 뒤범벅되어 국민의 생명을 해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에조차 이상스러울 만큼 무감각한 현실에서 우리 국민은 어쩌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재앙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지금이야 수입 농산물이 우리 농산물보다 값이 싸지만, 미국등 주요식량수출국의 국내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값이 폭등할 수 있다는 개연성은 분명 섬뜩한 일이다. 또 한꺼번에 엄청난 강우량을 기록하는 기상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에 빗물을 담수해야 할 농지를 묵힌다면, 토사의 유실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벼가 생산해내던 엄청난 양의 산소가 사라지게 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생명류를 일시에 죽게 할수도 있는 이 문제는, 꼭 식량 문제가 아니더라도, 농촌의 몰락이 생명류 전체의 몰락을 담보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현실에서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제일 덕목으로 갖고 있는 불교가 할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농업에 관심을 갖고 불교의 생명 질서에 부합하는 농사의 모델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것은 만생명을 부처로 존중하고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불교의 의무이기도 하다.
다행히 한국 불교는 산간이나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고, 꽤 많은 고찰들이 많은 농지와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 정부다음으로 부동산이 많은 곳이 조계종이라는 이야기는 오늘의 농촌위기가 곧 불교의 위기이며, 농촌을 살리는 것이 곧 불교를 살리는 것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는 근거도 된다. 이런 맥락에서 소유 부동산의 관리와 관련한 정책이나 근거 법령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불교계의 현실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은 불교가 유일하다고 본다. 이와같은 단정의 근거는 불교가 많은 농지와 임야를 가지고 있고, 사원이 대체로 농촌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지금의 사원경제가 농업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수지에는 아랑곳 없이 불교의 생명관에 입각한 생태농법을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임야에서 수거한 자연퇴비를 활용한 생태농법으로 화학비료에 의해 황폐화된 토질을 되살리고, 사찰 인근의 지역민들에게도 퇴비를 나누어 주어 이들에게 생태농사를 유도한다면 머지 않아 사찰 농지의 활용을 통한 사원경제의 활성화와 더불어 지역민과 사찰의 공동체 곧 불교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사찰들이 저마다 앞장서서 몰락해 가는 농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소유 농지나 임야를 활용한 생태농법을 통해 토양을 살리고, 나아가 생태농법을 통해 지역 주민과의 신잉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발벗고 나선다면 불교는 오늘날 사회적, 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만중생의 귀의처로 거듭날수 있다.
철학이 있는 농사, 다시 말해 불교적 생명관에 입각한 농사는 그대로 불성이 있는 모든 생명을 지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실천이다. 바로 이 점이 오늘의 한국 불교가 한국의 농촌문제와 농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