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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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무관
1999년 12월 214호
20세기 불교 백 년 동안의 여러 중요한 사실 가운데 교육 분야에서는 1906년에 시작된 각 본사나 사찰 단위의 신학문을 전수하기 위한학교의 설립을 꼽을 수 있다. 그 때 해인사는 지금 보경당이 된 옛 명월당에 명립 보통학교明立普通學敎를 설립하고 이 곳에 새로운 교육 과정을 마련하였다.
물론 고려시대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확립된 전통적인 불교 경전과 선서의 강론을 겸비한 강당을 1900년 홍제암에서 범운화상梵雲和尙이, 1908년 사운당四雲堂에는 영해문석 총섭暎海文晳總攝이, 1928년 고경덕원古鏡德元 강백, 1929년 김만응金萬應 주지가 궁현당窮玄堂에 설치하면서 해방 전까지 설호영세雪醐榮世, 고봉태수高峰泰秀, 보봉홍표寶峯弘杓(洪民), 서응서영瑞應瑞英(蔡民) 등이 강설했다. 그 때 전국의 대찰은 거의가 이처럼 강원을 운영하면서 한편으로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전국에 많은 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지금의 중고등학교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1906년 중앙에 세워진 명진학교는 지금은 사학명문 가운데 하나인 동국대학교로 발전한 것이다.
정화 후 해인사에 초대 주지 김자운金慧雲(1955년 10월) 스님이 부임하면서 이운허李雲虛(1955~1957재직) 강백을 모시고 강원을 부활하여 법보전문강원法寶專門講院으로 명칭하였다. 1963년 지관강백智冠講伯은 학칙 총7장 42조를 제정 시행하였다. 이 때 통도사에 강당이 있었고 이후 범어사, 송광사, 법주사, 불국사, 백양사, 화엄사, 쌍계사, 직지사, 수덕사, 선암사 등이 차례로 설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고, 비구니 강당은 동학사, 운문사, 봉녕사, 청암사 등이 있고 학교 형식의 삼선승가대학이 있다. 해방이후 강당의 명칭을 살펴 보면 해인사 법보전문강원(1955년 1월), 해인강원(1964 강원) 해인사 승가학원(1972년 2월 15일) 해인사 승가대학(1987년 3월 7일) 등으로 변해 왔다.
지금도 교직자 회의측에서는 전통강원 명칭을 주장하나 종법상 또 대 사회적 이미지와 승려의 권익 보호차원에서 승가대학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강당의 교육은 일반적으로 정화의 이념에 따라 사교 입선의 의미를 갖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참선을 통하여 성불한다는 뜻이다. 또한 강당은 속칭 중물 들이는 곳이라고 해 왔다. 여기에서 중물의 의미는 바람직한 승가상의 확립과 사교 입선의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정화 이후 통합종단의 종헌에서 밝힌 대로 출가 승려는 부처님처럼 개개인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함을 받들어 체현시키고 대사회적으로는 전법도생함을 목적으로 명시하였다. 이런 넓은 의미의 목적이 구체적인 교육현장에서는 사교 입선 또는 중물 들이기라는 한 마디로 축약된 것이다. 그러므로 승가상의 확립은 자각의 범주임을 사교 입선이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철저한 수행자상만을 내포했다고 보아 무리는 없을 것이다.
1981년은 종단사에서 큰 획을 긋는 해이다. 외부의 핍박이라 할 수 있고 이른바 법난이라 일컫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내용을 살필 여유는 본란의 뜻에 합당치 않아 생략한다. 이로써 단일 계단 단주를 역임한 자운, 일타 대율사와 현 송광사 방장 보성율사 등이 꾸준히 1960년대 중반 해인총림 설치 때부터 노력하여 승가구성원의 승풍 진작의 구체적인 대안은 오직 철저한 지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수행 그 자체임을 천명하고 붓다 때의 이부승제도 확립과 함께 단일계단이 발족하게 된다. 이는 승가의 위계질서에 기초가 되는 5급 사미, 사미니 선발고시와 4급 비구, 비구니 선발 고시를 병행하여 종법이 명시한 법계와 고시의 승려분한의 승급을 부여하게 되었다. 이는 고려 때 도첩제와 조선조 일시 행해졌던 승과의 실시가 승가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불교 발전에 기여한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또한 이 시기에 중앙승가대가 개운사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부의 4년제 대학 인가를 받고 김포로 학사를 이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1994년에는 종단·이 대 사회적으로 신뢰를 추락시키는 과정을 겪으면서 개혁의 선풍을 내세워 총무원 단일 체제 속의 행정 기반을 정화이념의 현실적 구현을 위해 교육원, 포교원이 별립되어 총무원과 함께 삼원체제의 제도 틀을 마련한다.
20세기 초에 많은 스님이 서양 교육을 받아 우리의 전통 교육과 접목시키면서 해방 이후 사회의 지도층 인사를 배출하여 불교의 위상이 높아졌던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정화운동의 목적은 승려의 수행상 확립과 새로운 세기의 종교인 상 곧 성직자상을 구현하고자 도제양성, 포교, 역경의 기치를 내세우고 1962년 통합종단이 비구 중심의 골격으로 제도적 틀을 확립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94년의 개혁 입법에서 교육원의 별원 설립은 정화이념 구현을 바탕으로 1981년 법난과 단일 계단 설립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 온 수계산림 등이 교육의 새로운 제도외 필요성과 체제를 요구하게 됨으로써 기초, 기본, 전문, 및 재교육의 틀을 마련하고 실천해 가는 단계에 와 있다.
1세기 동안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교육의 목적과 이념을 구현해가는 체계적 연구와 검증을 충실히 해 나가는 종단의 공식기구가 없었다. 개혁 입법에서 교육원의 교육, 교재 편찬, 역경위원회는 연구기관이랄 수 없다. 포교원에 포교 연구실이 있으나 미시적 대안으로 행정 지원기능이 대부분이다. 전국승가대학 교직자 회의도 마찬가지다. 종회는 입법 기능만 가지고 있으므로 거시적 종책 연구기관의 설립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들도 연구기관을 두어 인적, 물적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용 그만큼 이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화 이후 그 한 예가 역경원이다. 많은 불교학자와 뛰어난 학승을 보유하고서도 종단의 지원이 미흡했고, 학문 연구기관이 없음으로써 동국대학교 부설로 설립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앞으로의 종책 개발과정에서 다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교육정책을 위한 연구는 다양한 세미나를 통하여 여러 차례 개최되어 왔으나 종단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승가상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통불교를 지향하면서 내부의 수행중심만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헌상에 명시된 교육의 틀에도 기본 교육 기관의 나열은 많은 문제가 있다. 그나마 전문 교육 기관인 학림 등이 심도 있는 연구를 해 나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조계종이 선종을 표방하면서 외부에 비친 안일과 온포를 구하는 집단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정화 일 세대의 투철한 정진력과 자기 위기관리의 능력은 승가상 확립과 조계종의 위상을 크게 높였고, 그 예가 1993년 입적한 성철 대종사의 생애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제 정화 일세대의 시대는 끝났다.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과 조사들의 위업을 폄하시키는 누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정진해야 한다. 부처님의 사의법四依法을 염두에 두고 기득권의 포기를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오로지 수행의 기본은 계율 정신임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21세기의 불교는 부처님 때의 향기로움과 빛나는 꽃과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이계위사以戒寫師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