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새롭게 거듭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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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08월 186호
“불교를 알게 되면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데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도대체 나 자신에게 변화가 없으니, 이것이 요즘 나의 고민입니다.” 어느 불교출판사 편집장이 지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한 말이다. 불교를 이론적으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체득해서 자신이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밀이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까닮은 자각하는 데 었다. 자신에 대한 자각, 타인에 대한 자각, 사회에 대한 자각, 더 나아가 우주 만물의 이치에 대한 자각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각은 내 삶을 벗어나 어떤 특별한 곳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충분히 가능하다. 「무량수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첫째, 재물이란 뜻밖에 수재나 화재를 만나 불에 타기도 하고 물에 떠내려 가기도 하며, 도적이나 원한이 있는 이나 빚쟁이들한테 빼앗기기도 한다. 이와같이 재물이 흩어지고 없어지면 답답하고 분한 생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날이 없느니라. 이렇게 해서 마음이 병들고 몸이 허물어져 목숨이 다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수 없으니, 이것은 귀한 사람이나 부자나 매한가지니라. 갖가지 근심과 두려움과 애타는 괴로움은 끝이 없으니, 그 고통은 마치 얼음이나 불 속의 괴로움과 같으니라. … 이러한 괴로움과 근심 때문에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나니, 명소에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진리를 배우거나 공덕을 쌓지도 못한 채 몸을 버리고 허무하게 홀로 돌아가, 결국 저마다 가야 할곳으로 갈수밖에 없지만 그 선악의 업보의 길 마저도 모르고 가느니라.
둘째, 세상사람들은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결코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있는 것 없는 것을 서로 주고받아 탐내거나 인색하지 말며, 언제나 상냥한 말과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로 대하여 다투지 말아야 하느니라. 혹시 다투어 분한 마음이 남으면 비록 이 세상에서의 원한은 적다고 할지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큰 원수가 되고 마느니라. 왜냐하면 이 세상 일이란 서로 미워하고 괴롭혔을 때 평생은 사이가 나빠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 마음 속으로 독을 품고 분한 마음을 맺어서 풀지 않으면 지연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결국 죽은 뒤에 모두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로 앙갚음을 하게 되느니라. 인간은 홀로 태어나 흘로 죽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는 스스로 받고 스스로 감당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대신할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선악의 과보에 따라 저마다 태어날 곳을 달리하여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행복한 곳에 악한 일을 한사람은 재앙이 많은 곳으로, 업에 따라 엄연히 정해진 처소로 나아가는 것이니라.
셋째, 인간의 길흉화복은 인과의 도리에 따라 어김없이 스스로 받는 것이니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되느니라. ··· 세상은 혼탁하여 인심은 어리석고 어지러워 애욕만을 탐하니, 인생의 길을 헤매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진리를 깨달은 이는 지극히 드무니라. 그러니 세상 일이란 부질없이 바쁘고 어지럽기만 하여 믿고 의지할 아무것도 없느니라. 가난한 자나 부자나, 귀한자나 천한자나, 어른이나 아이 할것 없이 모두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지만 어쩌다 서로 이해가 충돌하면 원수같이 미워하나니, 그사납고 표독한 마음은 마침내 불행한 재앙을 일으키느니라. 이렇듯 천지의 올바른 도리를 거스르고 인간의 참다운 본심을 따르지 않아 저절로 그릇된 악업은 앞뒤를 다투어 거듭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다만 그 죄업의 결과만을 기다릴 뿐 달리 어찌할 수 없느니라.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는 세 기꺼 번뇌를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이라 하고,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나쁘게 물들이는 독극물과 같아서 삼독三毒이라 부른다. 위의 내용은 이 삼독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과 과보를 설한 것이다. 첫번째의 내용은 탐욕에 대한 설명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의 욕망이 성취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는 것이 욕망의 본질이다. 악을 쓰고 재산을 모아 본들 인연이 없으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그것이 내세에 지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는 아무런 도용이 되지 않으니까 인간으로 태어나 욕심부리지 않고 올바른 정신과 신체로 인간답게 사는 것. 이것만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경전은 가르치고 있다.
두번째의 내용은 삼독 가운데 성내는 습관은 내세에 원수를 만나는 원인이 됨을 말 해주고 있다.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가끔 있다. 분명히 원한 맺을 일을 한적이 없는데 어처구니 없이 살해당하거나 피해를 입는 일이 있다. 이러한 일이 생기면 우연이라해야 할지 필연이라해야 할지 가슴만 치는 경우가 많은데, 경전에서는 이것을 모두 자신의 업이 만든 결과라고 해석하여 ‘이 생에서 사소한 원한이라도 풀지 않으면 내세에는 원수로 만난다’ 고 한다. 우리가 평소에 이무렇지도 않게, 또는 습관적으로 성내는 마음이 이렇게 원수를 만나는 악연의 과보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지막으로 어리석어 인과관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과보에 대해 말하였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내것이라고 소유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생기는 인과관계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인과관계를 믿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여 결국은 그 악업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이 간단한 법칙을 잊고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사는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어리석은 중생이여,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법칙을 제발 하루에 한 번씩만 되새기며 살아가면 어떨까.
불교로 인해 새롭게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실천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 시대의 참다운 인간이고 진정한 불자의 모습이 아닐까.
‘내 곁의 부처’ 를 연재해 온 지 이 년 반이다. 처음에는 불교의 생활화를 목적으로 일상의 일을 예로 들어가며 불교 전체를 개관했지만, 올해 초부터는 「해인」 독자라면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대승경전 가운데 우리에게 친숙한 경전을 골라 그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한회에 한정된 지면에 대승경전 한권의 내용을 축약시키다보니 문장이 건조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번 호는 딱딱한 경전 공부에서 잠시 벗어날겸, 요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올려주는 소박한 경전의 말씀을 한번 간추려 보았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