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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의 당우(堂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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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향기 - 원택 1987년 05월 63호
해인사는 한국의 고가람(古伽藍) 가운데에서 사원 건축의 정형(定型)이라 하리만큼 가람 배치의 아름다움이 유별하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법보전까지 일직선상에 놓인 문들과 집들을 기준으로 좌우에 늘어선 당우들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근자에 생겨난 집들인 보경당(寶鏡堂)의 우악스러움이나 종각의 갑작스러움, 방정맞을 정도로 위태롭게 보이는 서전(西殿) 등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고가람 해인사의 배치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직도 해인사는 곳곳에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절이다.
각 당우를 잇는 지붕의 선을 이른 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날 백호등 능선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움이나, 대적광전 앞에서 남산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해인사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풍치(風致)의 교향악(交響樂)이다. 또한 해탈문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구광루(九光樓)의 헌출한 모습하며, 수월문(水月門)을 중심으로 하는 지붕들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정중탑(庭中搭)을 중심으로 배치한 궁현당(窮玄堂)과 심검당(尋劍堂)의 조용하고 한가로운 아름다움들도 한국 고(古) 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해인사의 선원(禪院)이 신장경각(新藏經閣)으로 옮겨가기 전에 선열당(禪悅堂)과 퇴설당(堆雪堂)과 해행당(解行堂)은 선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해행당은 14평의 작은 건물로 광무(光武) 3년 서기 1899년에 범운(梵雲)대사가 창건했으며, 1918년부터는 당시 주지 회광(晦光) 스님이 수선사(修禪社)를 폐(廢)하고 조사전(祖師殿)으로 변경하여 희랑조사(希郞祖師)의 상을 주석(主席)으로 봉안하고 개산조(開山祖)부터 대공덕주(大功德主)에 이르기까지 52위를 모셔 그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해행(解行)이란 지해(知解)와 수행(修行)을 아울러 일컫는 말인데, 불교 수행의 근본을 가리킨 말로써, 지목(知目)과 행족(行足)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 방장실(方丈室)로 사용하는 퇴설당은 서기 1817년 대화재 때 함께 타버린 것을, 그 후에 제월(霽月) 선사가 중건(重建)하였고, 광무 3년 서기 1899년에 범운 스님께서 제방의 납자(納子)들을 모아 수선사(修禪社)를 열었으나, 1918년에 주지 회광 스님이 수선사를 폐하고 조사전으로 개칭하면서 소향각(小香閣)을 병합하여 그 이후 선원으로 사용하던 건물로서, 한국 근세 선종의 걸출한 스님들인 경허(鏡虛), 석두(石頭), 인곡(麟谷), 효봉(曉峰), 청담(靑潭), 지월(指月), 고암(古庵)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 푸른 납자들이 정진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본래 이곳은 장경각에 향화(香火)를 봉행하던 곳으로, 백설같이 흰 마지(부처님의 공양)를 퇴상(堆上)하던 곳이란 말이다. 현재 조사전(祖師殿)으로 사용하고 있는 선열당(禪悅堂)은 본래 노전(爐殿)이었다. 정축 대화재 이후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화재에 대비했던 것인데, 이를 다시 메우고 그 당시 응향각(凝香閣), 소향각(小香閣) 등의 작은 건물을 헐고는 그 자리에 새로이 큰 건물을 세워 대적광전과 각 법당의 향화공양(香火供養) 예배를 받들어 모셨으니 이 건물이 노전, 곧 지금의 선열당이다. 이 건물은 1936년 병자년에 그 당시 주지 고경(古鏡) 스님께서 세웠으며 얼마 전까지 하선원(下禪院)으로 사용되었다.

대적광전 왼편에는 작은 불당(佛堂)들이 있는데, 명부전(冥府殿), 웅진전(應眞殿), 삼성각(三聖閣)들로서 학사대(學士台)로 가는 길목에 있다. 명부전은 지장전(地藏殿)이라 하기도 하고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명부란 흔히 죽은 이의 혼이 돌아가는 종착처로 저승이란 말이다. 따라서 이곳은 살아 생전(生前)의 여러 업보(業報)를 심판 받는 곳으로 불교의 내세관(來世觀) 중 인과(因果)의 지중(至重)함을 보여 주는 곳으로 지옥 탱화 속의 무시무시한 고과(苦果)를 받는 형상의 그림과 지옥 사자(使者) 등의 모습들이 민간 신앙과 함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기도 하다.
누구든지 이 곳에 들어오면, 다시 한번 지신의 죄업(罪業)을 생각하여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과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데, 조각으로 되어진 십대왕(十大王)의 모습이 근엄하게 모셔져 있어 더욱 참담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지옥의 중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크나큰 원력(願力)과 연민의 마음으로 육환장(六還丈)을 짚고 손바닥에 구슬을 들고 계시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모습은 영원한 불교의 이상인 자비심을 상징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명부전은 고종 10년 서기 1873년에 해인사의 화주(化主)스님이시던 담화(曇華) 스님이 창건했으며, 이 명부전을 설립하기 위해 이 이전부터 웅천(熊川) 성흥사(聖興寺)에 모셔져 있던 시왕상(十王像)을 배로 지금 고령의 개포(開浦)까지 모시고 와서 법당에 모셨다가 전국을 돌면서 탁발과 모금으로 본 명부전을 건립하고는 시왕상(十王像)을 이곳에 모셔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스님은 대장경각(大藏經閣)의 기와를 다시 개와(改瓦)하고 장경각의 담도 쌓는 등 해인사의 불사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명부전 내부를 둘러보면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이 모셔져 있고 진광대왕(奏廣大王), 송제대왕(宋帝大王), 염라대왕(閻羅大玉), 태산대왕(泰山大王), 도시대왕(都市大王), 초관상(初官像), 장군상(將軍像), 사자장(使者像) 등이 배열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무독귀왕상(無毒鬼王像), 초강대왕(初江大王), 오관대왕(五官大王), 변성대왕(變成大王), 평등대왕(平等大王), 장군상(將軍像), 사자장(使者像) 등이 모셔져 있다.
웅진전(應眞殿)은 다른 이름으로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는데 소승불교의 성자(聖者)인 아라한의 다른 이름이다. 보편적으로 나한전에는 열여섯분의 아라한을 모시는 것이 상례이지만 오백 나한전도 여럿 있다. 이 건물은 23평으로서 성종 19년인 서기 1488년 학조대사가 창건했으나 그뒤 대화재 때 타버린 것을 순조 17년 서기 1817년 제월대사가 중건하였다. 보편적으로 나한전에는 석가모니상(像)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빈두루발라타사, 가낙가발리타사, 낙구라, 가리가, 수박가, 라후라, 인게라, 아시다의 상(像)을 모시고 왼쪽으로는 소빈타, 발타라, 벌사라불다라, 반락가, 나가세나, 벌나바사, 쥬리반타카의 상을 모시는 것이 상례(常例)이며 상(像)이 매우 특이하고 익살스러워서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법당이기도 하다. 이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들은 본래 판전(板殿) 서재(西齊)에 모셨던 것을 이곳에 옮겨 모시고 응진전이라 이름하였는데 1918년 무술년이었다.
삼성각(三聖閣)은 보편적으로 독성(獨聖), 산신(山神), 용왕(龍王)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독성(獨聖)은 본래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이었던 우루빈다존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홀로 닦아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독성이라 하며, 산신(山神)은 한국에 재래로 내려오던 민족신앙이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접합된 신앙 형태로서 어느 종교이든지 이러한 지역적인 특색을 접합하게 마련인데 이는 불교가 한국적 민속 종교를 포용한 한 좋은 예(例)이다. 또 한편 용왕(龍王)은, 흰두교의 제신(諸神) 중의 하나이며, 불교의 팔부신중(八部神衆) 가운데 하나로서 가람을 수호하는 신중이며, 차츰 바다를 지키는 해신(海神)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었다.
이러한 불교와 민간 신앙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는 불교의 문화수용(文化受用)의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 불교는 불교 이전에 있던 기층 문화를 파괴한 적이 별로 없다. 이 말은 불교는 한번도 종교적 목적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켜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언제나 기층(基層)문화를 수용하고 포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켜 왔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불교의 태도를 불교의 큰 결점인양 몰아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교도 스스로도 불교속의 산신과 용을 무슨 큰 잘못인 양 생각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불교의 특징이요 좋은 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굽은 것은 굽은대로 바른 것은 바른대로 모든 것을(비난하는 그것마저도) 포용해서 배척하지 않는 정신, 마치 온갖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정화(淨化)되듯이 넓고도 깊은 부처님의 진리는, 대해(大海)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불교는, 산신이나 용왕을 가르치고 믿게 하려는 종교가 아니요, 소박하게 산신이나 용왕의 신앙을 통해서 부처님의 참 진리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질박한 마음을 승화시켜 영원한 부처님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작은 문(門 : 산신이나 용왕)을 하나 더 열어 놓았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