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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유아독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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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5월 63호
오월, 음력으로 사월, 햇살은 따사롭기그지없어 그대로 어머니의 따스한 품안 같기만하다. 그래서 오월의 대지는 마냥 풋풋한 풀내음을 내뿜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대지의 체취를 느끼면, 수많은 생명들이 왜 생존해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또 오월달은 우리 불자들에게는 더 뜻있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날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체취를 풍기며 오셨다. 그분께서 이달에 오심은 우연이 아닌 필연의 역사인 것이다. 그것은 우매한 인간들에게 싱그러운 생명의 실상을 깨우쳐 주러오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이땅에 오시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치셨다. 이것은 당신 자신만이 하늘과 땅위에 홀로 존귀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 다 존귀하고, 생명있는 것은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하늘의 절대 신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을 뜻하며, 지상에서는 계급의 해방을 뜻한다. 그것은 대자유와 평등의 표상이며, 바로 인간 승리의 외침인 것이다.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인도 사회가 애타게 기다리던 것은 바로 인간 해방을 위한 성자였던 것이다. 그때의 인도 사회는 수천년 동안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지배해온 바라문교의 브라만 신과 사성 계급에 의히여 피지배자와 가지지 못한 계층은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땅에 부처님이 오심은 바로 인도의 르네상스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종교와 사상은 있어도 그것이 모두 지배자와 가진 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곧 종교나 사상은 지배자를 비호해 주는 신화의 조작일 따름이었으며 또 평등하지 못한 법과 제도를 합리화시켜 주는 꼭둑각시에 불과하였다. 부처님은,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수천년 동안 인도 사회를 지배해 온 그러한 편파적이고 불평등한 사상에 대하여 과감하게 반기를 드신 것이다.
그 한 가지 보기를 들면,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에 고향인 가비라성에 들어가셨을 때에 왕궁의 이발사인 우바리가 출가를 원하여 그를 허락하하셨다. 그런 지 7일 뒤에 동생인 왕자가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동생을 불러 선배 비구들에게 절을 시켰다. 그러나 왕자는 자신의 종이었던 우바리에게는 절을 하지 않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동생에게 말씀하셨다. “일주일 전에는 너는 왕자였고 우바리는 이발사였지만 이제 승가에 들어왔으니 사회에서의 신분 같은 것은 없어졌다. 여기는 평등한 인간의 모임일 뿐이다. 마치 백천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강 이름이 없어지고 다같이 바다인 것과 같다.” 그리하여 왕자였던 비구는 우바리에게 절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건은 그 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큰 혁명인 것이다. 어쩌면 천지개벽과도 같은 것일 게다. 그와 같은 인간 평등 운동은 오늘날과 같은 개방 사회에서도 하기 힘든 일이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지 2,600년이 지났어도 이 나라는 아직까지 인간의 평등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저 지배자와 가진자만이 사람인 양 저 좋을 대로할 수 있는 사회이다. 제 잘난 맛에 산다고는 하지만 정말 두눈 뜨고 볼 수 없는 꼴불견임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부처님께서 ‘유아독존’을 지배자와 가진자들의 언어로 사용하셨겠는가! 어디 자기들만이 존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고 남들은 다 자기들의 생활을 위한 수단과 도구란 말인가? 마치 자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착각하는 듯 선민 의식에 빠져 다른 사람들은 다 하찮게 보는 것같으니, 한 나라에서 태어나 같이 살면서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인들에게서 더 심한 것 같다. 이 나라 백성들이 다 자기들의 종인 양하니 주-객이 바뀌어도 유만부득이다. 저들이 이러한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일깨워 주어야할 이 시대의 지성인과 종교인들은 무기력하게 관념주의에 빠져 그저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니 나라의 꼴이 제대로 될턱이 없다.
부처님이 지금 다시 이 나리에 오신다면 무엇을 하실 것인가. 필시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 지도자와, 재물로서 없는자를 우롱하는 기업 재벌과, 종교라는 미명 아래 대사기극을 연출하고있는 성직자들부터 제도하시리라.
우리는 해마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 오면 봉축 행사를 다채롭게 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부처님이 이땅에 오시면서 선언한 인간 평등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인간 해방을 위하여 오셨지만, 아직도 우리 인간은 신과 권력과 물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으며 또한 계층 간의 갈등으로 서로 아우성치고 있는 현실에 살고 있다.
오월의 대지가 싱그러운 까닭은 자연의 생명체가 모두 서로 다른 생명체의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귀하게 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자연과 같은 삶을 살 때만이 다 함께 생존할 수 있으며, 나라는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유아독존으로 룸비니 봄동산에 오셨읍니다. 당신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유아독존임을 깨우쳐 주려고 당신은 오시지 않았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