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겨울철 감기가 유행인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뭐 , 잘 넘기고 있습니다.
* 예전부터 해인사 소임 보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주지 소임을 사신 지 두 해쯤 되셨는데 살아 보시니 어떠신지요.
수행자란 늘 부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근본을 삼고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원에서 수좌들이 화두를 침구하는 것이 수행자본연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듯 주지나 삼직 업무를 맡은 스님들도 소임 보는 그 자체를 공부로 생각해야 하지요. 소임 사는 사림들은 공심을 가지고 모든 것에 공명정대하면 다 통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았는지를 재삼 되풀이 해서 생각해야 하겠지요.
소임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소임 사는 이들이 얼마나 공심으로 일을 했는가 또한 지·신은 물론 자신이 한 일들이 뒷날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하는 문제를 두렵게 생각하고 소임을 살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모두 해인사 소임이 어렵다고 치부하면 누가 일을 보겠습니까.
* 그 동안 소임을 보시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여러 일들에 있어 일차적으로 삼직 소임을 보는 스님들의 책임이 크겠으나 해인사가 좋다고 하면서도 대중스님이 삼직 못지않은 책임의식, 곧 해인사는 내 절이다 하는 의식이 조금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느 절에 가나 소임을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 요즘 절 집안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보시기에 변화된 부분0|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크게 근본자리에서 보면 아무리 천변만화해도 불법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근본입니다. 현실 눈앞의 것을 보면 찰나찰나 변하는 것이 사실이나 변화를 쫓아가다 보면 범부 중생이 되어 버립니다. 변화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흔히 좋은 말로 흐름을 따라간다고 하는데 변화를 쫓아가다 보니까 수행도 놓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천년, 만년이 지나고 또한 상전벽해가 된다 해도 불법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이 수행인데 근본을 대체로 망각하고 시절인연 유행을 따르다 보니 이천오백 년 전 불법과 지금의 불법이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해 놓고 불교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허물을 불교에 돌려 버리고 자신은 책임이 없고 불교가 요 모양이라고 합니다. 지금 절 집안이 시끄러운 것은 수행자가근본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수행자는 유행을 안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유행을 따르고 세상을 따르면 불교가 아닙니다.
수행이란 자체는 반본환원, 곧 근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유행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행이 역행이냐 아닙니다. 바로 이게 순리인데 세상을 안 따라가면 역행했다고 하고 수행을 거꾸로 잘못했다고 하는 터무니 없는 논리가 나오는 겁니다. 범부를 번역하면 사邪이고, 반본환원하는 것이 정正이지요. 바른 길로 가는 사람을 세상을 모르고 산다고 하고 유행을 따르는 것을 바로 산다고 하면 수행이고 불교를 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 수행자의 근본 만큼은 절대 변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이제 곧 21세기입니다. 모든 분야에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의 교육이나 포교 부분이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곧 대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불교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되겠습니까.
흔히들 이제 곧 21세기로 넘어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백 세기도 더 넘어갈 것입니다. 설사 백 세기가 앞에 닥치더라도 불교는 달라질 게 없습니다. 포교를 하더라도 부처님 법을 가지고 하지 세상 법을 가지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출가자는 불교 얘기하면 되지 세상 얘기 할 필요가 없다는 밀입니다.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중노릇하는 것이고, 포교하는 것이지 세상 것들을 가지고 할 것 같으면 뭐 하러 출가하며, 또 절에 와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천오백 년 전에도 머리 깎고 가사 장상 입고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백 세기가 흘러가도 바뀔 게 없습니다. 이렇듯 모양도 바뀔 것이 없다면 행동도 바뀔 것이 없고, 행동이 바뀔 것이 없다면 말이 바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모양은 무엇이냐, 부처님 모양을 하고, 부처님 행동을 하고, 부처님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얼마만큼 똑바로 수행을 했는가 얼마만큼자기 견해를 안 붙이고 부처님 말씀을 전했느냐가 진정한 포교일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도 그것을 바랄 것입니다. 스님에게 세상 얘기 들으려고 절에 오지는 않겠지요.
* 불법의 체體는 놓아 두고 시대에 맞추어 용用을 변화시켜 보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느 종교나 시대를 따라 변화해 가다 보면 그 종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근본을 고수하면 종교는 살아 남지만 시대 운운하며 변화시키다 보면 혼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현실적인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저히 수행하면 그 시대를 책임지게 되어 있어요. 세속에서도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책임만 다하면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게 되어 있는데 자기 책임은 안하고 사회만 걱정하고 있어 병통이 생기듯, 수행자도 자기 본분을 다하면 되는 것 입니다.
용과 체는 둘이 아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체고 굴러가면 용입니다. 자동차 바퀴는 수만 번 굴러도 제자리에 있습니다. 축에 박혀 있기 때문이지요. 축을 벗어날 때 자동차는 쳐박히거나 안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체와 용을 둘로 보지 않습니다. 흔히 체 다르고 용 다른 줄 알고 있는데 자동차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굴려왔어도 한 바퀴밖에는 구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만 바퀴 굴러왔다고 얘기해요.
다시 말하지만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책임지게 되어 있어요. 수행정진을 철저히 하면 그것이 그대로 포교입니다. 지금 조계종이 망신을 당하는 것도 제 본연의 자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바세계의 중생은 거꾸로 자신이 쳐박혀 있으면서, 곧 전도몽상된 가운데서 틀린 것을 자꾸 옳다고 우겨대면 더 틀려지는 겁니다. 중생이 전도몽상을 되돌리면 바로 바른 깨달음이 되는 거지요.
* 수행자가 수행자다운 수행을 할 때 나머지는 저절로 되게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요즘 종단 안팎의 동정을 보면 수행자 집단이 이러한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고 모든 불자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종단의 상황을 보면 실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저 탄식밖에 안 나옵니다. 이 시대를 겉이 살고 있으니 동업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정화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사십오년이 넘었는데, 그 때는 근본이 바른 불교를 되찾겠다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종권 다툼이 아니었어요. 나 자신도 예전의 정화에 두세 번 참여했지만 지금은 명분 없이 치고 받는 싸움밖에 안 돼요. 제 손가락 가지고 제 눈 찌르는 데 할말이 없습니다.
얼마 전 일간지 사설에까지 ‘이젠 중들 싸움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더군요. 누가 시작을 했는지 맺은 자들이 풀어야지요. 양보하면 그 자체가 화합입니다. 서로 이권과 권리에 나서지 않으면 그것이 화합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물러나면 됩니다.
* 종단의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저희 후학들이 어떻게 하면 참다운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있을지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는 조물주가 만든 게 아니고 모든 범부 중생의 자업자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삼세 삼천제불이 출현해도 없앨 수 없어요. 다만 중생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업을 돌이키는 날, 꿈에 나타난 성처럼 이 사바세계는 없어질 것입니다. 범부중생이 부처님 말씀을 안 들으면 영원히 사바세계가 존속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허덕이고 사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참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돈의 세상은 끝이 없지요.
* 재가불자들마저 요즘의 종단 현실을 보며 불교신자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하기도 하고 자괴심 마저 든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자들이 지금의 현실을 힘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나 자신도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의 일이 아니라도 내 자선 무능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멀어 없습니다. 내 양심으로 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불교를 자랑하고 싶고 또 자랑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불자들에게 할말이 없으나 한편으로 나는 법회에서 불자들을 호되게 질책을 하곤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신의 무능력에 대해서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발전이 있는 겁니다. 아무리 미미하고 시원찮아도 부처님 제자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 말입니다.
비유해 말하면 바다는 엄청나게 거대하지만 빗방울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빗방울은 범부 중생에 해당됩니다. 불법 차원에서 보면 범부 중생이 귀의한 것은 들어온 것이나 안 들어온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러나 범부 중생에서 보면 모르든지 알든지 불법에 귀의하면 이미 그 때 바다를 얻은 거나 다름이 없어요.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량대복이라고 합니다. 그런 근기와 자부심이 있어야 비로소 불자인 거지요. 무슨 불법 걱정할 것 없어요.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서서 깨달은 분입니다. 정각이에요. 바로 깨달아 바로 서신 분입니다. 전도된 중생은 제가 바로 설 생각을 하면 됩니다. 바로 서 있는 불법을 걱정하고 앉아 있으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부처님 당시에도 멸빈, 곧 체탈도첩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나도 어렸을 적 본 기억이 나는데 사문을 쫓아내면서 전국에 통문을 돌렸어요. 통문이 돌면 대한민국사찰에는 발을 못 붙여요. 신도들도 시주를 안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원래의 법입니다. 복전이 아닌데 투지를 하면 원형까지 버리는 일이라는 걸 불자들은 알아야겠지요.
* 재가불자들도 이젠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수행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불자들이 어떻게 수행을 해 나가면 좋을까요.
불자들 스스로가 전국 방방곡곡에 절들을 참 많이 지어 놓았습니다. 이제까지 절 짓는 데 보시해 복을 지었으니 이젠 그러한 노력을 불법을 공부하는 쪽으로 철저히 그리고 아낌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극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불법공부에 온몸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불법을 자주 듣고 깨우쳐 지난 날 잘못 된 것들을 바로 잡아 가다 보면 전부 깨달음이 되고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을 비판하려 하지 말고 시절 인연이 도래했을 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불교는 의무교육입니다. 스스로 찾아야지 누가 쥐어주는 게 아니에요. ‘좋은 스승찾기’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재가자가 해야 할 수행입니다. 적어도 삼년에서 오년, 십년만 지나면 제 갈 길을 알게 됩니다.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해질 것입니다. 스스로 눈이 떠지면 절대로 자빠지지 않습니다. 공부에 투자한 만큼 뿌린대로 거둘 것입니다.
* 다사다난한 1998년 한해도 저물고 있습니다. 내년은 토끼해 인데 모든 불자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승속을 막론하고 지금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저마다 본분을 망각하고 살아왔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혹독하게 겪고 있는 아이엠에프 사태도 지난 한 십여 년 동안 모두 방심하고 방종하고 더 나아가 방일했던 까닭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너무 방탕했고 너무 놀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며 이렇게 유언하셨습니다. ‘모든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라. 방일은 곧 죽음이다. 열심히 정진하면 열반으로 갈 수 있느니라.’
모든 분야에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의 교육이나 포교 부분이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골 대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불교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 이 혼돈의 시기는 자업자득이에요. 그러나 우리 인생이 좋은 날, 나쁜 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좋았고 나빴다는 생각을 버리고 반성하고 열심히 정진하면 나날이 좋을 것입니다. 나날이 좋으면 다달이 좋고, 다달이 좋으면 해마다 좋다는 성현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참회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소임을 보시는 동안 모든 일이 원만히 회향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