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와 태국
크메르(Khmer)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저지(低地) 시암(Siam)의 메남강 유역은 1세기경만 해도 대승불교와 브라흐만교가 우세했다. 이에 반하여 고지 메남강 유역은 몽족의 하리뿐자야(Haripunjaya)왕국 통치 하에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상좌부불교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실제로 스리랑카와 시암(Siam)이 가까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시암 상좌부불교는 몽족에 크게 의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족이 그들 최초의 독립국가인 수코다야(Sukhodaya)를 중부 시암에 건설한 것은 13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이 무렵 시암은 버어마 및 말레이반도의 시리드함마나가라(Siridhammanagara)를 통하여 스리랑카와 접촉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스리랑카와 수코다야 사이의 종교적인 접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그 뒤 14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암과 스리랑카 승가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1530년 아유띠아(ayuthia)에 수도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암의 문화는 본격적인 발전기에 접어들게 된다. 불교 역시 가속적으로 발전하였음은 물론이다. 15세기의 시암 역사는, 일단의 시암 승려들이 스리랑카로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과 이들이 그곳에서 구족계를 받은 사실, 그리고 시암에 스리랑카 승가가 설립되었다는 일련의 사실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16세기에 들어 시암의 스리랑카 승가는 크게 번성한다. 수코다야의 왕이 이곳 소속의 마하사미(Mahasami) 대사를 라자구루(Rajaguru,王師)로 임명한 것만 보아도 당시 시암 불교곙서 차지하는 스리랑카 승가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유띠아(Ayuthia)는 최초로 서구 세계와 접촉하게 된다. 이때는 시암의 경제사상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하지만, 시암의 역사문헌 가운데에 이 무려의 불교에 대한 기록은 별로 등장하고 있지 않다. 18세기 는 양국 사이에 새로운 교류의 장이 열린 때이다. 승단의 정화를 꾀하고 있던 스리랑카 왕은 마침내 버어마 승려들의 도움으로 이를 무사히 완수하기에 이른다. 스리랑카에 시야마파(Siyama, 혹은 Siyamopali로도 쓴다)로 불리는, 시암불교 계통의 승가가 설립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이는 시암-스리랑카 불교사에 있어 실로 특기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스리랑카, 캄보디아, 라오스
수르바야르만 1세 치하에 있던 11세기 무렵의 캄보디아에는 갖가지 종교가 뒤섞여 번성하고 있었다. 시암의 롭부리(Lopburi)에서 발견된 11세기 초의 비문에 의하면 그 가운데에서도 대승불교의 세력이 가장 우세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쁘라캄(Phra Khan)에서 발견된 범어(梵語) 비문에서는, “문자 그대로 전지전능하시고 항상 진실한 말씀만을 하시는 오직 한 사람 부처님에게 귀의한다”라는 내용의 싯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롭부리에서 발견된 크메르어 비문은, 당시 그곳에는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상좌부불교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수로 야바르만 1세 자신은 불교도였다. 그의 불명(佛名)이 니르바나빠다(Nirvanapada), 즉 ‘열반에 이른 이’였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그의 종교 정책은 대단한 관용으로 일관되었다. 앞에서 말한 비문에 의하면, 그는 대승 및 소승의 불교뿐만 아니라, 쉬바교와 비쉬뉴교 등의 제신앙(諸信仰)에 대해서도 항상 공평한 입장에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사이의 정치 문화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12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당시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 상좌부불교의 종주국(宗主國)으로서 스리랑카의 명성이 드높았던 때였다. 스리랑카 승려들의 여법(如法)한 수행상은 자연적으로 동시대의 모든 불교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아 한 왕자는 불법 수행을 목적으로 직접 스리랑카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13세기가 다 지날 무렵의 캄보디아를 방문한 어떤 중국인은, 당시 그 곳에는 세 가지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것은 대개 브라흐만교와 시바교, 그리고 불교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기초에 제작된 빠알리어 비명(碑銘)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14세기 무렵의 캄보디아에서 상좌부불교도 꽤 번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캄보디아 왕의 사위인 파눔(Fa-Ngum)이 라오스에 랑창왕국을 건설한 것은 1353년의 일이며, 이후 캄보디아는 라오스의 상좌부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17세기의 라오스 문헌에 의하면 ,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공식적인 교류는 14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사이의 종교적인 교류는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단의 캄보디아 승려들이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구족계를 받은 것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캄보디아 불교계에 오늘날까지 스리랑카의 불교적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17,8세기에 걸쳐 캄보디아와 사암 사이에는 오랜 동안 정치적인 반목이 있기도 했지만, 캄보디아 불교에 대한 시암의 공헌은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나아가 캄보디아 불교에 대한 시암의 공헌은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나아가 캄보디아와 시암으 도움으로 라오스 불교가 크게 발전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