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은 근심의 세월이었다. 해인사는 물론이거니와 조계종 총무원, 환경단체 모두에게 그랬다. 96년 7월 정부가 해인사∼합천댐 순환도로 건설이라는 경상남도의 건의를 받아들여 노선을 지정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이듬해 10월 해인승가대총동문회 등의 도로 개설 반대 성명 발표로 가야산 관통도로 개설 논란에 불이 당겨졌다. 환경부의 ‘국립공원 내 도로 개설 불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경상남도와 건설교통부는 구간을 나눠 환경영향평가를 비켜가는 편법을 쓰면서 도로 개설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자체로서는 가야산과 해인사, 가천리 온천장, 지리산을 잇는 관광지 개발을 통한 세수稅收 확보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이 훌륭한 자원임에는 분명하나 불교의 수행환경을 침해하면서까지 개발해야 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이 같은 뜻은 지난 5~6월 경상남도 홈페이지에 매일 도로 개설을 반대하는 십수 건의 항의 메일에서 보듯 해인사 스님들만이 아닌 국민 대다수의 뜻임을 확인했다. 해인사는 물론이거니와 조계종총무원과 중앙종회, 교계 안팎의 환경운동단체도 해인사 인근의 환경훼손을 우려하며 도로 개설을 반대했다. 때로는 간곡하게 청원했으며, 때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시위를 벌였다.
가야산 환경위원회가 조계종총무원에 낸 의견서의 한 구절은 절절한 절박감이 배어난다. “불교신자의 정신적 귀의처요, 민족의 성지인 국립공원 가야산에는 5백여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고,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는 바 이 도로의 개설로 인한 차량과 환경오염의 증가는 문화재의 보존에 더할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수도도량의 훼손은 민족성지의 훼손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아직 끝나지 않은 해인골프장 건설 문제에 겹쳐 가야산 관통도로가 개설된다면, 이런 생각에 해인사 스님들은 아득했을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훼손된다면 선조들에 대해 더 없는 죄를 짓는 일이고, 가야산을 지키지 못한다면 후손들 대하기 참으로 부끄러운 일 아닌가. 59호선 도로 개설 문제는 법정에서 판가름났다. 지난 4월 해인사 스님들과 지역주민들은 창원지방법원에 경상남도지사를 피고로 한 ‘도로구역 결정처분 취소’ 등의 소송을 냈다. 창원지법 행정부는 6월 19일 “국가지원 지방도 59호선 죽전(시점)~성기(종점) 간의 1구간 도로 중 죽전~가천1교까지의 구간에 대해 도로구역 결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벗어난 가천1교 부!
근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내용의 건교부장관의 노선변경안이 이루어지도록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해인사와 경상남도가 창원지법의 결정을 받아들여 가야산 관통도로 개설은 백지화됐다. 가야산을 지키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수행을 뒤로 하고, 생업을 미루었던 스님들과 주민들의 의지가 마침내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가야산 관통도로 반대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가야산 환경위원회가 결성됐고, 사찰과 환경운동단체, 지역주민들이 연대한 것은 또 다른 성과이다. 개발 위협에 시달리는 국립공원 구역을 지켜냈다는 것도 보존과 개발 논란의 논란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선례로 남는다. 특히 가야산 환경위원회(위원장 정원 스님, 간사 대오 스님)를 결성했음은 환경수호자로서의 한국불교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큰 성과로 기록된다.
가야산 환경위원회는 지난 4월 25일 발족하면서, 올해의 사업 목표로 가야산 순환 관통도로 전면 백지화 및 노선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단 시급했던 목표는 이뤄냈다. 환경위원회는 또 중장기 목표로 △가야산의 환경 보존을 위한 각종 종책 수립 및 사업 전개 △해인총림의 친환경적 운영을 제시했다. 이에 따른 세부적인 사업 내용도 잡았다. 이로써 해인사는 지자체와 사업자의 각종 개발에 시달리면서도 환경지킴이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많은 사찰에 모범사례가 되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환경분쟁을 겪는 사찰이 30여 곳에 이른다.
조계종총무원이 올 1월 펴낸 <사찰환경 침해 사례집>을 보면, 위락시설 조성에 따른 침해 사례가 11건, 고층건물 건설에 따른 침해 사례 4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 건설에 따른 침해 사례 7건, 광산 및 채석 채취 등에 따른 침해 사례 6건 등 모두 28건이다. <사례집> 발간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문제가 해결된 곳은 10곳도 안 된다.
사찰환경 침해 사례의 특징은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해인골프장 건설 문제는 10년 넘게 끌어오고 있다. 사업자 측이 공사기한 연장을 불허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찰이 자리잡은 곳이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있어 업자들이 사찰을 배경으로 삼아 개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사찰 인근에 위락시설을 설치하면 이용객 유인효과가 크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이러다 보니 스키장, 온천장을 세우려 달려든다. 사찰 인근의 산이 대부분 국공유지라는 것도 문제다. 국가와 지자체가 부지 확보에 따른 민원 발생을 줄일 수 있고, 재정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각종 공공시설을 건설하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이 이렇다면,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것으로는 사찰의 수행환경 침해는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사찰 곧 관광지’라는 인식을 수정토록하는 일, 이것만큼은 반드시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가야산 관통도로 백지화의 성과를 잇기 위해서 몇 가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사찰은 관광지가 아니라 수행처이다. 부모와 친지와의 인연을 뒤로 하고 대자유를 성취하려고 삭발염의한 스님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수행하는 공간이 사찰이다. 이런 곳이 관광지라면 스님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싯다르타 태자가 왕자의 지위와 세속의 영화로움을 미련없이 팽개치고 고행의 길을 걸어 부처님이 되었듯, 그 뒤를 따르는 거룩한 이들이 생활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또한 스님들의 수행을 뒷받침하고 신심을 증장시키는 불자들의 신행의 터전이다. 관광지와는 천리만리 상관없는 곳이다. 사찰에 있는 문화재는 성스러운 공간을 거룩하게 장엄한 선조들의 신앙의 표현물이다. 부처님과 수행자에게 드리는 공양이었다. 그렇다면 문화재를 보는 최소한의 마음은 부처님과 수행자의 지혜와 자비를 배우겠다는 마음이어야 하며, 조성자의 신심을 내 것으로 삼는 겸허함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이러한 마음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사찰에 계신 스님들과 신도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찰과 문화재를 관광지로 인식시킨 첫째의 책임은 사찰에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소임자와 스님, 불자들이 사찰과 주변 환경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세우고, 이 의지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일도 우리의 과제로 주어졌다.
다시 가야산 환경위원회의 사업 내용을 살펴보자. 사찰이 환경 수호의 지킴이로 우뚝 설 수 있는 주목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야산 환경선언문 발표 △가야산 및 해인총림 환경종합대책 수립 △임야 훼손 방지를 위한 감시활동 강화 및 조림 △사찰, 치인리 오수처리장 설치 및 계곡 청소 △홍류동 계곡 수질오염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 △해인사 진입로 가로수 정비 △가야산 생태조사 실시 △해인총림 생태조사 실시 △해인골프장 건설 전면 백지화에 따른 백서 발간 △총림대중, 거주민, 관람객에 대한 환경교육 및 홍보 등 시급하고 필요한 내용들이다.
여타의 사찰에서 그대로 옮겨와 실행해도 좋은 사업들이다. 59호선을 막기 위해 들여온 5년의 시간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