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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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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상진 1999년 12월 214호
요즈음 밀레니엄이란 말이 마치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처럼 야단스럽다. 물론 컴퓨터가 연도를 잘못 인식하여 은행에 문제가 생기고 비행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현실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허나 컴퓨터 문제를 제외하면 꼭 의미를 찾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밀레니엄의 기준이 되는 나라의 연도 표기가 서기西紀로 배뀐 것은 군사 정권 시절인 1962년이므로 사십 년 남짓하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마치 기나긴 역사의 흐름이 단절되고 새로운 역사라도 시작되는 것처럼 각종 매체에서 이끌어 가고 있다.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또 한 해를 보내는 예의 연말일 따름이다. 조용히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고 차분히 서기 이천년인 다음해를 맞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부처님의 연호로 불기 이천년이었을 때는, 사백오십여 년 전의 옛이야기지만. 과연 요즈음처럼 떠들썩했겠는가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한다. 서력과 불기가 가져 다 주는 느낌의 차이를 음미하면서 문득 필자의 전공인 나무와 부처님과의 인연을 찾아보고 싶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팔장도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나무와의 인연을 중생의 입장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부처님은 억조창생을 구하려고 사바

세상에 오시는 순간부터 가장 먼저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다. 잉태한 마야왕비는 산월이 가까워지자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는 나라의 관습에 따라 콜리성으로 길을 떠났다.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들이 다투어 피며 뭇 새들의 지저귐이 일행을 축복하였다. 조용히 룸비니 동산의 절경을 감상하던 마야 왕비는 아름다움에 흘린 듯 한 나무의 가지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산기를 느끼게 된다.
이 때 미야 왕비가 붙잡았던 나무, 산고의 고통을 덜게 한 그 나무를 우리는 무우수無憂樹라고한다. 룸비니 동산이 아열대 지방이니 우리나리에서는 온실이 아니면 자랄 수 없다. 무우수가 무엇일까? 부처님의 신심에 가까이 가지 못한 필자는 사물의 실체를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대로 자료를 찾고 인터넷을 뒤져 인도에서 일반인들이 부르는 이름은 아쇼카Ashoka 나무임을 알 수 있었다.
잎이 늘 푸른 아열대 지방 나무로서 마치 고무나무 잎처럼 도톰한 긴 타원형의 잎을 가지고 있고 짙푸른 잎사귀를 배경으로 소복하게 피는 자주빛 꽃이 특히 아름다워 당연히 마야 부인의 눈에 띄었고 수많은 나무 중에 최고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굳이 비슷한 나무를 찾는다면 남부 지방에 자라는 붓순나무를 들 수 있겠다.
다시 부처님은 스믈아홉살 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을 구하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면서 또 나무와 인연을 갖게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보리수普提樹 아래에서 육년 간에 걸쳐 깊은 사색으로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 부처님이 도를 깨우친 인도 보리수는 아열대 지방에 자라는 뽕나무 무리의 무화과종류에 속하는 나무로서 높이가 수십 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씩이나 되는 큰 상록수이다. 가지가 넓게 뻗고 풍기뿌리가 주렁주렁 달려 한 포기가 작은 숲을 이룰 만큼 무성하게 자란다. 이 나무를 인도에서는 피팔라Pippala 또는 보Bo라고도 했는데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한자로 번역할 때 음을 그대로 따서 보리수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러나 중국어나 우리나라에는 진짜 부처님이 도를 깨우친 인도 보리수는 추워서 자랄 수 없으므로 불자들에게는 대용 나무가 필요하였다. 이에 스님들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산에서 만나는 피나무를 선택하여 부처님이 득도한 나무와 꼭 같은 보리수란 이름을 붙이고 널리 심기 시작했다.
왜 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피나무 무리를 인도보리수의 대용으로 선택하였을까? 피나무는 나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잎이 심장모양인 것이 인도보리수와 매우 비슷하며 단란하고 새까만 열매가 수없이 달려서 염주로 쓸 수 있고 따뜻한 지방에서 추운 지방에까지 걸쳐 기리지 않고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에는 예부터 보리수甫里樹란 나무가 있었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연산 육년에 전라 감사에게 이르기를, ‘보리수 열매를 익은 다음에 봉하여 올려보내라’ 라는 조선왕조실록 내용처럼 남쪽 섬 지방을 중심으로 열매를 먹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다. 육지에도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이것도 보리수로 불렸다.
그래서 보리수라고 하면 부처님의 인도보리수, 피니무 보리수, 열매를 먹는 보리수, 심지어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까지 해서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뒤섞여 있다. 우리 나라의 불자들은 피나무 보리수를 오랫동안 부처님의 보리수로 알아 왔으니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절에 보리수를 섬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사에 보면 ‘명종 11년 묘통사妙通寺 남쪽에 없는 보리수가 표범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로 울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적어도 고려 초 이전부터, 아마 불고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될 때부터 함째 들어와 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 등 염주를 만들 수 있는 열매를 가진 나무는 한자로는 흔히 보리수라고도 하여 나무 이름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장장 사십오 년이란 세월에 걸친 사바 세계 포교가 끝나고 여든 살로 입적하실 때 부처님은 또 나무와 마지막 인연을 맺게 된다. 팔상도의 쌍림열반상에서 보듯이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난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열반에 드셨다. 이 때 사방에 쌍수가 있어서 모두 여덟 그루의 사라수가 있었는데 입적을 하시자 네 그루의 사라수는 말라 죽어 버리고, 나머지 네 그루가 쌍을 이루는 사라쌍수만이 무성하게 살아 남았다고 한다.
사라수는 오늘날의 무슨 나무인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도에서 살sal, 혹은 사라sala라고 부르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의 참나무처럼 비교적 흔한 나무이다. 대반열반경 ‘공양’에는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의 숲에 누우셨을 때, 갑자기 사라쌍수에 꽃이 피어나 부처님께로 떨어졌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살나무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는 아니고 크게 자라 재목으로 구실을 하는 나무이다. 무겁고 단단하며 비중도 커서 힘 받는 데 쓰기에 적합하며 한때 우리나라에 많이 수입되던 라왕lauan이라는 나무와 사촌쯤 된다.
사라수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보리수처럼 명확한 대용 나무를 찾지 못하고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나무를 사라수라고 하였으며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아쇼카나무와 상징이 뒤섞이기까지 하였다. 삼국유사의 원효 이야기에 ‘그의 어머니가 밤나무 밑을 지나다 갑자기 태기가 있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이 옷을 나무에 걸어 주어 거기에 누워서 해산하였으므로 이 나무를 사라수라 했다’는 내용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우수, 보리수, 사라수를 흔히 불교의 삼대 성수聖樹라 하며, 여기에 잎을 따서 종이 대신 글자를 새기는 데 쓰였던 다리수多羅樹를 넣어 사대 성수라고도 한다.
밀레니엄이라는 천 년의 시한성이 아니라 영겁의 세월을 조용히 관조하였던 부처님의 큰 뜻을 새기면서 부질없는 나무 이야기가 혼란스럽지 않았나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