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교계는 풍성한 봉축행사를 치루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봉축행사가 다양해지고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거리에 설치되는 봉축 장엄물이나 행사를 알리는 광고물 등은 전통적인 문양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불교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봉축행사를 통해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재고하려 한 점은 그 동안의 구태의연한 행사치례와는 전혀 다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는 한국불교로서의 본분을 바로하는 것이었다.
불교를 민족종교라 하면서도 민족문제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저간의 실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불교계는 활발하게 사회문제와 민족문제에 대치하고 있다. 이번 봉축 기간 동안 중국에서 직접 북한의 불교계 인사를 만나 그 동안 모금한 성금으로 구입한 중국산 옥수수 1380톤을 전달하였고 올해 하안거 결제 기간동안 ‘북녘 동포를 위한 일백일 결사법회’ 를 갖기로 한 것 등등이 그러하다.
종단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남과 북의 불교도들이 공동으로 발원문을 발표하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화합된 봉축행사를 거행하는 성과를 올렸다. 대북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진 남북불사의 공동기원문이지만 오히려 더욱 값진 초파일이 되게 하였다. 남과북의 불자들은 이 발원문을 통해 ‘분단의 아픈 설움을 가시지 못한 채’ 남과 북이 별도의 봉축행사를 거행하지만, 이 봉축법회를 ‘동시에 갖고 사회와 중생을 위한 대승보살도의 실천행에 용맹정진할 것’ 을 굳게 서원한다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참되게 살리는 길이며 혼탁이 가실 줄 모르는 지금의 사회에서 불제자들이 진정 세워야 할 서원이다.
이번 공동발원문의 성과를 좀더 높여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아울러 통일을 준비하는 남과북의 불교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화합하지 못한 내부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동포에 대한 지원은 범종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북녘동포돕기 불교추진위원회’ 가 5월 6일 결정되었고 이미 그 이전에 ‘우리민족 서로 돕기 불교운동본부’ 가 구성된 바있다. 북한동포를 돕기 위해 남한의 불교도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이다. 북녘의 불교도들 또한 이에 따뜻한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 5월 1일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박태호)은 조계종 총무원 앞으로 ‘남녘법우들의 참보살행과 동포애 실천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라는 문서를 전송하였고 초파일에는 남북불교도의 공동발원문을 동시에 발표하는 등 실로 대외적인 화합의 분위기가 전례 없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교단과 종단의 내적인 화합은 대단히 우려될 만큼 와해되고 있어 심히 안타깝기만 하다. 비록 조계종에 많은 경비와 노력을 부담한다 하여도 해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주관으로 봉축행사가 치루어져 여타의 종단이 동참하는, 화합의 축제였으나 이번에는 조계종이 주관하고 여타 종단은 초청자로서 참석하였다. 물론 지난해말부터 ‘조계종의 전횡’ 을 구실삼아 종단협의 일부 종단이 별도의 ‘종단진흥회’를 꾸려 교단 내부에 분열을 가중시키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그들과의 협조를 아예 묵살하고 조계종 독자적으로 연등축제를 진행한 것은 아무래도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결과 연둥 축제에 참석한 종단은 극히 소수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종단내의 참여도 썩좋지 않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일부 대형 사찰의 신도들만이 대거 참석하여 일단 운동장을 가득 메웠으나 사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사찰의 신도들이었다. 더 줄여 말해 두세 군데의 사찰에서 동원된 신도들이 거의 다라고 하여도 맞는 표현이었다. 타종단의 참여도 없었고 서울의 그 많은 종단사찰과 포교원 등도 외면하였다. 봉축이라는 기쁜 축제의 마당에 참석하지 않은 쪽에 책임이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결과에 대한 자자와 포살이 있어야 할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초파일에 종정 스님의 법어가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종정직이 공석중인 것인지 아니면 종정이 계시면서도 그 책임을 저버린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종단실정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있지 않고는 종단의 기강과 화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민족의 화합을 인도하여갈 불교계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시급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이간질은 바일제
승가는 대중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어야 한다. 그 당위를 현실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승가의 분멸은 있을 수 없다. 부처님 재세시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말씀과 교리, 계율 등이 사회의 발전과 함께 다양하게 변화발전하였다. 어느때에는 그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이견이 대두되어 종단이 분화되기도 하였지만 사상적 풍요라는 긍정적 성과로 불타의 가르침을 널리 퍼지게 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승가의 화합을 깨트리는 일만큼은 용인되지 않았다. 사상적 견해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승가의 질서를 전제로 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이 평행선을 그어 이견의 해소가 불가능하면 위로 어른들께 자문을 구했고 옆으로는 도반들과 연구하는 자세를 지켰다.
승가의 화합을 깨는 행위에 대해서 만큼은 엄중해야 한다. 출가사문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을 어겼을때 죄의 경중에 따라 바라이, 승진, 유란차 등 육취계로 경책을 하는 여유도 대중의 화합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육취 가운데특히 바일제(波速提 payattika)는 화합을 해치는 ‘이간질’ 로 받는 죄로써 대중에게 참회토록 하는 것이다.
사분율四分律의 「아흔 가지 파티카」 항목 가운데 ‘이간질을 하지말라’ 는 경에서 부처님은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슈라바스티 세타 숲에 계실 때 여섯 무리의 비구들이 여기에서 이러쿵 저기에서 저러쿵 말을 전하여 대중의 화합을 해치고 있었다. 부처님이 사정을 알아보시고 여섯 무리의 비구를 불러 엄하게 정책을 하시며 단호하게 대중을 향해 “어떤 비구가 이간질을 하면 파티카이니라” 하셨다. 이어 ‘이간질이라 함은 아무라도 비구, 비구니, 식차마니, 사미, 사미니, 우바새, 우바이 등등과 싸우게 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번 종정 스님의 봉축법어가 없었던 배경을 거슬러 올라기면 종정의 권한에 대한 시비에서 발단되는 것으로 일러졌다. 특히 종단에 물의를 일으켜 승가 공동체의 규율로 계엄한 이들에 대해 종정이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이 종헌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단순히 상징적 존재로서의 종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 일반사면을 할수 있는 권리의 보장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종정의 사퇴가 이미 세간의 언론에도 보도되어 종단에 무슨 큰 불화가 있는 양하는데 그 실상은 일반사면권의 보장이며 이를 둘러싸고 현재의 종단 집행부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종정 사퇴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종정 스님이 이렇게 권한의 보장을 요구한 이면에 94년의 개혁불사로 대중의 엄한 경책을 받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초파일 봉축을 맞아 종정스님의 법어가 없도록 소홀했던, 또 여타종단의 화합된 참여로 연등 축제가 치루어지지 못했던 점 역시 종단집행부는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종단을 분열하고 종단의 화합을 해치는 자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승가공동체의 일원인지를 깊이 되돌아보길 바란다. 파티카를 범하고도 참회하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였다. 일대사 인연으로 사문이 되고서도 해탈은 고사하고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제 모두 자성의 눈빛으로 각자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법어도 동참도 없었던 초파일을 계기로 우리 종단에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정과 화합. 그것이 우리 비구 승단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가장 현안적인 과제 아니겠는가 지금은 다들 반성할 때일 뿐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