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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문학상의 이 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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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박진환 1987년 04월 62호
1. 봄에의 초대
P형, 어느 새 봄이 지척에 와 있오. 그렇게 앙탈하던 겨울 추위도 어느새 봄에게 바톤을 넘겨 주고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생명의 약동과 이상을 마음껏 펼칠봄이 우
리 앞에 다가와 있오.
금아 피 천득선생의 조춘(早春)이란 수필 가운데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無給助敎)는 약혼을 한다”는 대목이 있읍니다.
P형, 스물여섯 된 무급 조교도 약혼을 할 만큼 가난을 잊게 하는 봄, 우리의 봄도 그 만큼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는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셀리가 이 서풍부를 읊던 시절은 전 유럽이 차가운 겨울의 침묵 속에 갇혀 있을 때였읍니다.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와 독재가 인간다운 삶의 기쁨마저도 깡그리 무너뜨려 버리던 암흑기였읍니다. 협잡과 사기가 나날이 늘어나고 이상이 경멸당하고, 세속적인 정치 놀음이 인간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던 시절이었읍니다.
P형, 어느 새 우리 주위에도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서슴지않고 덤벼드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읍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나 인간에의 애정보다는 권모술수나 일시적 쾌락속에 자신을 내던져 버리는, 그리하여 스스로 파멸의 나락 속으로 끝없이 추락해 가는 인간 군상들. P형 우리도 이 인간 군상 속의 하나가 아닌지 모르겠오.
세속적인 정치 놀음이나 아집에 사로잡혀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위정자들의 추태를 보면서 셀리가 노래한 “봄은 멀지 않으리”란 귀절을 떠올려 봅니다.
P형, 시절이 하도 어수선하여 오는 봄도 잊은 듯이 지내고 있읍니다만 목련 나무가지에서는 소담스럽게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읍니다. 누구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봄은 오고 또한 계절은 쉼없이 바뀌어 갈뿐입니다. 다들 길어봐야 고작 백년미만인 생을 살면서 왜들 이리 아둥바둥거리며 발버둥을 치는지 모르겠오.
P형, 봄은 다만 계절의 순환으로서만 끝나서는 무의미합니다. 우리도 저 모든 생명있는 것들이 겨울을 이기고 다시 도약을 꿈꾸듯 새로운 이상과 희망을 품어야 할 때입니다.
봄은 자연만의 계절이 아니라 참다운 인간의 계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성 회복의 계절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2. 문학상과 나이
P형, 지난 주말 대구에서 있었던 “상화시인상”에 참석하였드랬읍니다 이 상은 지난 해부터 죽순 시인 구락부가 주관하여 만든 상으로 향토가 낳은 빼어난 시인, 오직 민족주의의 일념으로 피지배 민족의 비애와 항거로 일관했던 이 상화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전국 규모의 문학상입니다.
올해 수상자는 최 재형 시인, 문학하는 사람의 이름 속에서는 다소 생소한,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읍니다.
최신인은 지난 해에 고희를 넘긴 할아버지 시인(?) 입니다. 지난 해 고희 기념으로 자제들이 마련해 준 「세월의 문」이란 시집으로 상을 받게 되어 쑥스럽다는 시인, “자신은 상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 사람으로 알았으나 나이 칠십에 새삼 상화 시인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하고 부끄럽고 쑥스럽고 민망스럽고…. 이제부터 남은 여생은 문학에만 헌신하겠다”는 수상 소감은 이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여운을 남겨 주었읍니다.
P형, 지난 해에도 고희의 재일 교포 시인인 최 화국 시인이 일본 시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H써상 신인상을 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그는 “시는 청춘의 문학입니다. 그건 시인이 젊다는 게 아니라 시가 젊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시인과 나이, 아니 문학상과 나이는 어떤 함수 관계를 형성할까? P형, 허지만, 문학은 나이와는 큰 상관 관계가 없겠지요. 나이에 관계없이 얼마만큼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철저하게 버텨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것이니까요.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성과 상과는 별개이겠지요. 상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시인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상은 다만 꾸준히 노력하고 자신에게 헌신하는 사람에게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산물이라야 하니까요. 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우리 주위에는 허다하지요.
P형 , 상에 따른 잡음이 많은 나라에서 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았오. 돌려먹기식이나 나눠먹기식의 상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에게 헌신하고 묵묵히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다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야 더욱 빛나겠지요. 물론 나이와는 상관없이….
P형, “시는 청춘의 문학입니다. 그건 시인이 젊다는 게 아니라 시가 젊어야 한다는 뜻”임을 곰곰히 되새겨 보면서 두서없는 글월 거두겠습니다. 모쪼록 환절기에 건강에 유념하시고 내내 대안(大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