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죽비 깎는 아침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수필 - 지묵 1987년 04월 62호
죽비를 많이도 깎았다. 어제 그제도 계속해서 밤낮없이 죽비를 깎았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적이 있지만 이번은 순전히 대나무만으로 만들었다.
농막 제재소에 가서 봄철에 대밭 솎음질해놓은 대 뭉지를 추려서 임경당(臨鏡堂) 마루로 가져와 작업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도구가 풍부해서 일하기가 수월한 듯 했다. 전각(篆刻)에 쓰던 칼, 도장 파는 칼, 나무 조각칼 등에다 등산용 다목적 주머니 칼까지 합하니 연장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다 된 죽비는 소리를 내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건 아주 소리가 좋겠는데.”
하면 틀림없다. 누가 그때 구경을 하다가 몇번,
“딱, 딱, 딱.”
치고는,
“내가 사용해야지.”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드는 족족 죽비가 나가버렸다. 하루 보통 열 개씩 만들었지만 다 나가고 지금은 다섯 개 남아 있다.
죽비 모양도 가지가지. 아이들 팔뚝만한 굵기의 죽비가 있는가 하면, 엄지손가락 만한 굵기의 죽비도 있고 길이도 들쭉날쭉 여러가지다. 취미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저녁에는 선방에나 맞지 얼른 임자가 나타날 것 같지 않은 큰 죽비를 새 암자 주인인 호주 비구니 지광(智光)스님이 몇차례 소리내어 보고는,
“이게 소리가 시원스러워요.”
하고는 나중에 ‘인월암(印月庵)’ 이란 글씨를 파 달라고 하였다. 지광스님이 물건을 볼 줄 안다. 조각솜씨가 보통 이상인 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죽비 고르는 솜씨를 보고는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재료가 딱 하나 남아 있어서 그걸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끌어가며 천천히 더 깎았다.
죽비 등에다가,
“일념일행(一念一行).”
해 놓고는 새긴 날짜도 넣었다. 이걸로 칼질이 끝났다.
이때 곁에서 누가
“선방 걸려고 죽비 깎는구만.”
하였지만 그게 아니다. 착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가다듬기 위해서 죽비를 깎는 것이다.
한 어르신 스님은,
“나이도 생각할 때요. 이제 이리저리 다닐 때가 아니니 생각 잘 해요.”
하며 간곡히 일러 주셨다. 이유는 나의 방랑벽이 발동할까 봐 그러시는 줄 안다.
“갈려고 생각하지 밀아요. 명성각(明星閣) 뒷방에서 ‘치문 난자집(緇門難字集)’ 정리도 해야지요.”
아주 떠나는 줄 짐작하는가 보다. 나는 이제 훨훨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칼질이 훨씬 시원스러워질 것 같다. 대나무를 베는 일부터 한다면 아주 멋지게 해낼 생가이다. 뿌리 밑부분을 바짝 불여 베어서 마디가 많을수록 좋게 만든다. 그늘에다 말려서 곱게 손질해 두면 작품이 나온다. 잡념이 생기다가도 일에 열중해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손놀림을 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 주는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죽비 끝을 불에 그을리고 끈을 달아 걸어놓을 수 있게 하는 작업으로 일단락된다. 그런 후에,
“딱, 딱, 딱.”
하고 죽비를 쳐보면 참 좋다. 이 방 마루에서 주인 노릇 하기도 이제 마지막 날인 것 같다.
어느 스님은 와서 보고는,
“아 죽비는 이게 진짜 죽비구나. 나무로 깎은 건 목비(木萞)지, 죽비가 아니어.” 한 말 끝에,
“스님, 죽비라 해도 안 맞고 죽비가 아니라 해도 안 맞아요.”
하였더니,
“하하”
하고 웃고 말았다.
소위 배촉관(背觸觀) 이라고 해서 죽비라고 한다면 집착에 떨어져 상견(常見) 외도(外道)이고, 죽비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기고 등져서 멀어졌기 때문에 단견(斷見)외도(外道)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죽비를 만들면서 줄곧 이 생각을 했다.
떠나는 일은 확실히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약효가 대단하다. 이미 떠나기 전에 이리도 흔쾌한데 떠나는 시간은 얼마나 좋을까 해젯날 빈 걸망이라도 지고 일주문 밖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멋도 이해가는 이야기다.
해젯날. 그렇다, 오늘은 묶어 놓은 짐을 부치고 나서 홀가분한 차림으로 나서는 날이다. 구름 가듯 물 흐르듯 간다고 해서 운수납자(雲水納子) 라고 했다. 조롱속에 갇힌 새가 창공으로 날아가는 기쁨이 있다.
깎은 죽비를 마지막으로,
“딱, 딱, 딱.”
세번 치는 것으로 모두 해 마쳤다. 끝나는 죽비소리다. 아니, 새로운 출발의 죽비소리. 명쾌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