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바깥 세상에서 명상법이 유행한다고 덩달아 나도 마음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삶의 필요에 의해 마음의 작용을 알고자 하고 또 마음 다스리는 수행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요즘 산사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귀한 시간을 내서 모여든 사람들이 평소 소홀하게 잊고 지내던 자기와 마주 서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모든 소식을 뒤로 하고 하던 일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나 동료,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잠시 쉬고, 묵묵하게 어로語路도 끊고 자기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자기의 모습을 만나고자 한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때론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살펴갈 수 있고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앉은 자리와 서 있는 자리가 각자 다를지라도 자기만의 고유한 수행법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하안거 기간에 자기와 치열하게 마주 서는 수좌스님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변명 없이 심신을 조복 받으며 정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포교를 명분으로 도심에서 사는 나는 정진이 여의치 않을 때 변명이 많다. 가끔 자신의 호흡마저도 조식調息이 안 될 때가 있다. 조식이 안 되는데 조신調身과 조심調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럴 때 나는 어느 산자락에 사는 수행자의 하루를 생각한다. 수행자가 말이 없어도 그윽한 향기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치열한 정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난 무수한 시간 속에 지나가는 솔바람 소리에 귀를 씻었을 것이고, 피고 지는 들꽃과 일어났다 사라지는 구름에게서 안식眼識의 경계를 넘었을 것이다. 묵묵한 바위와 나무에게서 마음의 품을 넓히지 않았을까.
어느 고서에 ‘향기는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바위는 사람을 우뚝하게 하며, 여인은 사람을 연민에 빠지게 하고, 스님은 사람을 담박하게 한다’고 했다. 둘러보면 세상엔 말없는 선지식이 많다. 다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귀가 없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방송 시간에 소리 없이 다가앉는 무언無言의 선지식들을 많이 만났다.
청취자가 보내는 마음의 메시지를 나는 안다. 그윽한 향기를 가진 수행자의 메시지처럼 말이다. 언젠가 어른스님께서 수행자는 말없는 모습만으로도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도심에서 살다보면 무언의 포교가 절실할 때가 있다. 어설프게 쏟아 놓는 많은 말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바르게 실천하는 부처님 말씀 한 가지, 담박한 수행자의 모습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는 큰 가르침이 되리라고 믿는다.
어딘가에서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내일은 이 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을 전해야겠다. 자기 분상의 알음알이를 떠나면 바람처럼 오고감에 자재自在를 얻을 것이라는 이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