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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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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7년 04월 62호
길림의 어느 시골 기차 정거장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탔다.
“어머니, 조선에 가면 우리 동무들이 많이 살고 있어?”
점례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조선은 우리 나라니까 거기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한 핏줄이지.”
정말 그보다 더 즐거운 여행길은 없었다. 해방이 된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며칠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아버지를 졸지에 잃어버린 점득이와 점례한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이 가슴에 맺혀 버렸다.
압록강의 강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할머니의 오두막에서 점득이네는 닷새를 머물렀다.
할머니는 그 닷새 동안 점례와 점득이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모두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왜놈 순사에게 잡혀간 이야기, 아들 용식이 징용에 끌려가고 딸 용순이까지 잇달아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버린 이야기를 눈물을 흘리며 들려 주었다.
“옛날에도 그랬단다. 북쪽에서 빨간 수건을 쓴 오량캐들이 내려와 지식들을 끌고 갔단다. 압록강이랑 두만강은 아리랑 노래만큼 슬픈 강이란다.”
“징용갔던 사람들이 이젠 돌아오고 있다는데 할머니네 아드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직 안 왔어. 하지만 돌아올 것이라 기다리고 있지. 우리 용식이 용순이 안 돌아 오면 늙은이 둘이 누굴 기대고 살까··.”
할아버지는 닷새 동안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보기보다 정정하여 물을 길어 밥을 짓고 땔감을 해오고 빨래를 한다. 어머니가 도와주려 들면 한사코 그만두라 했다.
“길림에서 오자면 많이 걸었을 텐데 푸욱 쉬었다 가야지. 애기 아버지 잃은 것 슬프지만 얘들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 살아야 하잖어.”
떠나 오던 날, 할머니는 수수쌀로 지은 밥을 보자기에 싸서 주면서 점례와 점득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은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 남매끼리 사이좋게 살아야만 힘이 강해지고 그래야만 우리 나라가 튼튼해지는 거다.”
할머니는 우차길이 있는 동구밖까지 바래다 주었다.
“어떡하지, 백리길을 걸어야 기차 정거장까지 갈 수 있는데 …”
“괜찮아요, 그만 들어가셔요.”
“할머니, 안녕히 계셔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점례와 점득이는 짝듯이 인사를 했다. 앙상한 가지를 뻗고 서 있는 팽나무 밑에서 할머니는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어머니는 점례와 점득이를 데리고 얼어버린 우차길을 걸었다. 자꾸만 허전하고 외로웠다.
가끔씩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버지가 총을 맞고 강에 휩쓸려간 것이 꿈만 같았다. 정말 죽은 것일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 것일까?
어머니에겐 굽이 쳐 흐르는 압록강이 슬픔의 강, 원한의 강이 되버렸다.
한낮이 지나자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눈이 제법 어깨 위에 하얗게 쌓일 때 쯤, 점득이네는 어느 시골 장터에 닿았다. 마침 장이 서는 날이어서 사람들이 길을 바쁘게 오고 갔다. 장은 거둬들인지 오래지만, 저쪽 구석쪽 떡가게 아주머니는 팔다 남은 떡함지박을 그냥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점득이네는 떡가게 아주머니께 갔다. 아주머니는 손님이 찾아온다고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저어, 저희가 점심밥을 싸가지고 왔는데, 먹을 자리가 없어 그러니까 가게 안을 좀 빌려주시겠어요?”
어머니가 사정을 했다.
떡가게 아주머니는 금방 실망을 한 얼굴을 짓더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자 얼른 웃어보였다.
“어서 들어오셔요. 가게가 비좁지만 저쪽으로 편히 앉으셔요.”
아주머니는 거적대기를 펼쳐 점득이 쪽으로 놓아주었다. 셋은 옷에 쌓인 눈을 털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적대기에 쭈그리고 앉아 밥보자기를 풀었다.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여기 무우국이 아직은 따뜻하니까 같이 잡수셔요.”
떡가게 아주머니가 사발에다 무우국을 가득 떠서 세 사람 앞에 놓아주었다.
“고마워요.”
어머니는 너무 고마웠다. 식어버린 수수밥이지만 셋은 맛있게 먹었다.
“어디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죠?”
떡가게 아주머니가 물었다.
“길림에서 왔어요.”
“어머나! 그럼 강을 어떻게 건너셨어요? 해방군이 지키고 있다는데…”
“해방군라뇨?”
어머니는 잠깐 있다가,
“애 아버지가 총맞아 죽었어요.” 했다.
“그것, 정말이예요?”
아주머니가 놀라 어머니 얼굴을 마주 봤다. 어머니는 금새 눈물이 글썽거렸다.
“믿기지 않아요.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 봤어요.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것만 같었어요.”
“때가 나빴군요, 좀 일찍 오시든지 아니면 이 다음에 시끄러운 것이 가라앉거든 오실 것을 그랬어요.”
아주머니는 무섭게 한숨올 토해 내었다.
밥을 먹고 나자 아주머니가 가게를 거두었다.
“눈이 자꾸 쏟아지네. 벌써 날이 저물 것 같은데 어쩌시겠어요?”
어머니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우리 집으로 가서 눈이 멎거든 내일 떠나기로 하셔요.”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권했다.
“저희들이 묵을 방이 있을지요?”
“우리도 애들 뿐이어요, 방 하나는 비워드릴께요.”
“그럼, 하룻밤 신세를 지겠어요.”
점득이네는 아주머니를 따라 변두리의 작은 오두막에 닿았다. 계집아이만 셋이 있는 집이었다.
“애기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주머니께 물었다.
“일본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러세요. 그러셨군요.”
이날 저녁 아주머니는 흰죽을 끓이고 팔다 남은 떡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저희들은 아까 먹었기 때문에 아직 든든하군요.”
어머니는 차려놓은 저녁상을 사양했지만 아주머니는 기어코 권했다.
막내가 일곱살이라고 하는 계집 아이들 셋은 점득이와 점례를 뻔히 쳐다보며 깔깔 웃기도 했다.
다음날, 눈은 개었지만 찬바람이 몹씨도 매웠다. 그래서 얼른 길을 나서려니 망설여졌다.
아주머니네 세째인 연실이가 점득이한테 자꾸 캐묻고 있었다. 밤새 둘은 아주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점득아, 너희 아버지만 총맞었니?”
“음, 아버지는 나 대신에 총을 맞었어.”
점득이는 어른스럽게 태연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떠내려가지 않게 왜 손을 꼭 불잡지 않았니?” 연실은 무척 꼼꼼했다.
“난 손이 작아서 아버지를 못 불잡았어. 처음부터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었어.”
“아버진 총맞고 아팠겠다.”
연실이 안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아팠을거야. 그러니까 난 이담에 크거든 아버지 원수 갚을 거야.”
점득이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너흰 아버지 안 계시면 어쩌니?”
“어머니가 그래서 울잖니.”
“저어 말야. 우리 아버지 일본에서 돈 많이 벌어오거든 너희 집에 나눠줄께.”
연실은 아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아버지 돈 갖고 오니?”
“그래, 이번 설날엔 오신대. 과자도 사 오시고, 때때옷도 사오셔.”
“너희 아버지도 힘이 세니?”
“그럼, 황소만치 세다.”
“우리 아버지도 세었어. 그런데 총맞아 죽었구나.”
점득이는 갑자기 쓸쓸해졌다. 연실이네가 부러웠다. 길림의 외딴 산골의 초가집이 생각났다. 거기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왜 떠나왔는지 원망스러웠다. 점득이는 눈 가장자리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누나인 점례는 같은 나이인 꽃분이와 맏이 후남이와 함께 손뼉치기 놀이를 하다가 싫증이 났다.
후남이가 점례한테 은근히 말했다.
“점례야, 너희 고향에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살자.”
“나 혼자서만?”
점례는 후딱 놀랐다.
“아니야, 너희 어머니랑 점득이랑 모두 같이 살어.”
“여긴 집도 없고 어떻게 살어.”
“그건 괜찮어, 이제 곧 집도 나눠주고 땅도 나눠준댔어.”
점례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후남이는 눈을 떼록거리며 깊은 표정으로 거듭 말했다.
“우리는 이제 인민의 나라가 되어 부자들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거야.”
“그게 정말이니?”
“정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살자, 응?”
“하지만 어머니랑 아버지랑 벌써 전부터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
“이젠 너희 아버지가 안 계시잖어? 그러니까 여기서 살어.”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외갓집 할머니를 보고싶어 하시거든 외할머니는 연세가 아주 아주 많으시대.”
“그럼, 고향에 가서 외할머니 만나보고 이리로 오면 되잖어.”
후남이는 흡사 오랫동안 친했던 동무한테 말하듯 자꾸 졸랐다.
“그렇게 하면 될까?”
“그래, 그렇게 해.”
꽃분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햇빛이 뜰안 가득히 들었을 때, 점득이네는 길을 나섰다. 꽃분이와 후남이는 점례 손가락을 걸면서 고향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라고 약속을 했다. 점례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연실은 점득이를 뻔히 쳐다보며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서 있었다.
눈길은 무릎까지 빠졌다.
발이 이내 꽁꽁 얼어버렸다.
미류나무가 듬성 서 있는 신작로 길엔 이따금씩 자동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엄마, 발이 아퍼.”
점득이는 몹시 헐떡거렸다.
“많이 아프니?”
어머니가 멈춰서서 물었다.
“어머니, 나도 발이 아파도 참고 있어.”
점례가 조그만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서서 쌔근대며 말했다.
“그래, 점례도 아프겠지. 엄마도 아프단다. 그렇지만 참고 가야 해. 여기는 눈길이고 아무도 없는 벌판이잖아?”
점득이는 어머니를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고통을 참느라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점득아, 아버지가 그러셨잖어? 너한테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라고 했어.”
점례는 한 손으로 점득이의 등을 쓸어 주었다.
점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다시 걸었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그렇게 가슴설레며 찾아온 조국이 아닌가.”
점득이는 문득 작년 겨울 아버지와 함께 20리나 되는 장터에 다녀오던 것을 떠올렸다. 때가 덕지 덕지 묻은 더러운 옷을 입은 중국의 고기장수한테 돼지고기를 샀다. 아버지는 고기를 종다래끼에 담아 끈을 매어 점득이 등에 지워줬다.
아버지는 다리가 길었다. 점득이는 아무리 종종걸음을 쳐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아버지, 다리 아프다.”
점득이는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그래, 나도 다리가 아프다.”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여전히 성큼 성큼 앞장서 갔다.
“나, 다리 아파 못 가.”
점득이는 거기 멈춰 서버렸다.
“못 걸으면 아버지 혼자서 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못 본체 걸어갔다. 점득이는 행여나 행여나 아버지가 멈춰 서서 돌아다 보기만 기다렸지만 매정하게 자꾸 멀어져만 갔다. 점득이가 큰 소리로 울어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점득이는 덜걱 겁이 났다. 이대로 투정만 부리다가는 아버지를 못쫓아가고 만다.
점득이는 종다래끼를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달렸다. 가까스로 숨차게 아버지 옆에까지 쫓아갔을 때, 아버지는 걷던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점득이 이마에 촉촉히 밴 땀을 닦아주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등에 지워진 다래끼를 내리려 했다.
점득이는 어쩐지 아버지한테 꿋꿋하게 자랑하고 싶었다.
“싫어! 나, 그냥 지고 갈 거야.”
점득이는 그렇게 다래끼를 진 채 아버지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아버지보다 더 힘차게 걷고 싶었다.
점득이는 그 땅버들가지가 얼기설기 난 들길을 떠올리자 어쩐지 지금 바로 곁에 아버지의 숨소리가 나는 듯했다. 숨소리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그 기다란 다리가 점득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정다운 웃음지은 얼굴이 따르고 있었다.
점득이는 어느새 눈이 쌓인 신작로를 어머니보다 점례누나보다 더 빨리 앞장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