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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西山磨崖三尊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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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편집실 1999년 12월 214호
“ 자네 이제서야 왔는가! 하하하.”

벌써 세간의 고민과 번뇌는 저 만큼 옆으로 비켜서 있다. 깨달음의 열락悅樂과 중생을 향한 자비를 얼굴 가득 머금고 계시는 부처님이 어찌 이 분뿐일까마는 호쾌하게 웃으며 세간 살이에 찌든 중생을 맞는 부처님이 계시나 이 분이 바로 서-지금은 운산이다-의 마애부처님이다. 서산 마애 부처님은 이미 “백제의 미소”로 유명하다. 친근한 모습과 유쾌한 웃음은 그를 대하는 중생의 번뇌와 고민도 한 순간에 날려 버린다.

7세기 백제에서 불교가 가장 변성했던 시기에 조성된 부처님으로 중국에서 건너온 문물이 태안반도를 기점으로 하여 부여로 향하는 교역로 사이에 모셔진 것이다. 주변에 옛 보원사普願寺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큰 가람의 역사와 무관하게 않으리라.

부처님 좌우로는 반가상을 한 보살과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보실이 협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을 갖춘 보살상은 당시 중국 남쪽 지역과 우리나라 삼국에서 널리 조성되었는 바 이를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이라 존상尊像의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혹은 가운데 본존불을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파악하여 과거·미래의 수기불授記佛인 제화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중생에게 가장 친근한 불·보살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었던 백제인인의 마음과 손길 중에 그 존상의 명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보통 사람의 키보다 조금 큰 부처님의 신체는 다른 불상과 달리 장대長大해 보인다. 그 친근한 모습으로 서산마애불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동네 사람들은 부처님이 새겨진 그 바위를 인印바위 즉 새김 바위라 불렀다.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또 서산 마애부처님은 주변 마을의 여느 아낙과 여느 중생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이고, 고민을 들어 주던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이듯이 부처와 보살이 또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살의 마음과 진리의 발걸음은 밝은 생각과 즐거운 몸가짐에서 비롯되며, 어느새 햇살처럼 내 주위를 불국토佛國土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