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여름을 관觀하며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김동정 2001년 08월 234호
여름은 모든 산물이 풍성한 계절이다. 절기상으로 입하부터 입추까지를 여름이라고 한다. ‘여름 거지 겨울 부자 안 부럽다’는 옛말도 있듯이 날씨가 더워서 집안에 갖출 것이 많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여름인 것이다.
신록이 한껏 푸르름을 더해 가고, 낮의 길이가 긴 여름철에는 이제까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많은 곤충과 새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는 여름철이 곤충들에게 가장 활동하기 좋은 때이다. 녹음이 우거진 이맘때, 자신의 몸을 숨기거나 보호받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고운 맵시의 밀잠자리, 장수잠자리, 깃동잠자리들이 예쁜 모습으로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풀숲 구석구석에는 사마귀, 여치 따위의 풀벌레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한낮에는 여러 종류의 매미들이 이 나무 저 나무에서 한껏 목청을 돋운다.
여름은 매미소리와 함께 깊어간다. 이솝 우화에 보면 매미를 음악의 신이었던 뮤즈 여신의 노랫소리에 취해 죽은 사람들의 넋이라고 했다. 겨우 2∼3주일을 살기 위해 5∼7년을 흙 속에서 지내는 매미는 운명이 박복한 곤충이다. 그러나 그 맑고 청아한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청렴과 검소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리 때문이다.
한여름밤, 각종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듣는 재미도 그만이다. 맹꽁이 소리하며 반딧불이가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풍뎅이, 하늘소, 사슴벌레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산과 들에는 노린재, 메뚜기, 꽃등에, 밑드리, 나방 같은 곤충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닌다.
여름새로는 뜸부기, 백로, 뻐꾸기가 있다, ‘뜸북 뜸북 뜸부기 논에서 울고’ 라는 노래는 벼포기가 자라는 여름논을 생각나게 한다. 무더운 여름날,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팽나무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는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정담을 나눈다.
한여름 밤에는 온 식구들이 마당에 멍석이나 돗자리를 펴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쫓는다. 그 옆에는 모깃불이 타고 있고 방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다.
여름 더위를 나타내는 용어로 절기상의 대서와 소서가 있다. 또한 한여름의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를 삼복더위라고 한다. ‘작은 더위’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든다. ‘큰 더위’인 대서는 겨울인 대한으로부터 꼭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해당한다. 대서 때는 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로 인해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잘 자라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할 정도이다.
음력으로 칠월 칠일 밤을 칠석이라 한다. 이 날 밤 은하수를 경계로 하여 좌우에 있던 견우(은하수의 서쪽에 있는 별)와 직녀가 까치의 도움을 받아 오작교를 건너 서로 만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여름 날씨는 이 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가을 날씨로 접어든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 입추이다. 입추라 해도 더위는 여전하여 ‘잔서(늦더위)’가 계속된다. 이 때쯤이면 김장용 무·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여름은 무더위로 해서 휴식이 필요하지만 농부들은 내내 바쁜 나날을 보낸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속담은 여름철 일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죽하면 ‘새벽별을 보며 논밭에 나가 저녁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까.
한여름의 바쁘고 힘든 농사일은 주로 망종 무렵의 보리베기와 보리타작, 감자캐기 그리고 김매기 작업이다. 이러한 일은 모두 일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김매기와 더불어 고구마 새순을 이식하고 하지가 지나면 감자를 수확한다.
두레와 품앗이는 이런 힘든 농사일을 서로 도와가며 해결했던 전통적인 노동조직이다. 여럿이 모여 노동요를 부르며 일의 고단함을 잊었다. 노동요는 농사일에 따라 그 내용이 다양했다. 이를테면 소에 쟁기를 매고 논밭을 갈 때 부르는 ‘소 모는 소리’ , 흙거름을 나르면서 부르는 ‘흙걸음 노래’, 논 맬 때 부르는 ‘김매기 노래’ 등이 그것이다.
여름은 또한 풍성한 과일이 많이 난다. 딸기와 복숭아가 신선한 미각을 돋우고 참외, 수박, 토마토가 줄줄이 나온다. 참외와 수박이 끝날 즈음이면 포도가 영글어가고 배, 사과, 감이 가을의 신호를 보낸다.
늦여름이 되면서 종종 찾아드는 태풍은 성숙기에 접어든 벼와 조 등 과수에 큰 피해를 준다. 이것을 이겨내면서 여름의 농사는 끝나는 것이다.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만큼 바쁜 여름철이지만 우리 민족은 때에 맞춰 농사의 풍요를 비는 의례를 치러왔다. 농경의례는 농작물의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계절별로 이루어지며 여름철에는 농작물의 성장을 기원하는 의례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단오, 농신제, 초연, 기우제, 기청제 등을 들 수 있다.
단오는 초여름철 모심기를 전후하여 관행되던 성장의례이다. 농신제는 삼복 중에 혹은 유두 때 모내기 한 논에 가서 지내는 제祭로 물을 관장하는 신인 용신에게 벼의 성장에 필요한 물을 적절하게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주술 종교적인 의례이다.
김매기가 끝나는 날 또는 백중 때 행하는 초연은 한여름의 농사일을 마쳤다는 의미로 일부 지역에서 ‘호미걸이’ 또는 ‘호미씻이’로 불리기도 한다. 초연은 두레패나 농경에 직접 종사한 일꾼들이 모여 한여름의 바쁜 농사일을 마무리한 것을 기념하고 서로의 고됨을 풀어주는 축제의 성격을 띤다.
무엇보다 여름을 넘기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 가뭄과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었다. 기우제란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수리시설이 부족하였던 옛날일수록 기우제를 많이 지냈으며 특히 4월에서 7월 사이에 대부분 실시되었다. 이런 풍속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지만 반대로 비가 자주 내리면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를 지내기도 했다. 기청제는 입추 후까지도 장마가 계속되어 비 피해가 클 때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었던 제사이다. 이 제사는 산 꼭대기에 제단을 만들고 봉화를 올리면서 지냈다고 한다.
여름의 한복판이다. 올 여름에는 세시풍속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가운데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