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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미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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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이혜경 1997년 06월 184호
사진 주명덕 / 글 이혜경

남녘 산자락에 꿈결같이 환히 핀 조팝나무꽃 어느 비엔가 가뭇없더니 사월말, 월악산 언저리에서 희디희게 흘러내린다. 꽃은 남에서 북으로 북상하고 단풍은 북에서 남으로 남하한다.
꽃이며 단풍이 그 번져가던 기세를 잠깐 멈추고 온 길과 갈길을 가늠할 법한 자리, 중원.
생의 한중을 넘어서서 밟는 땅이름이 묵중하게 가슴에 얹힌다. 생을 끌고 가는 바퀴, 그 바퀴의 굴대를 잡았는가 싶다가도 자칫 널뛰는 부박한 마음자리의 중원은 어디쯤인지. 이 땅 한가운데라는 중원지역을 달리는 찻속, 마음은 잡히지 않는 중심 언저리에서 휘휘 맴돌며 봄빛 같은 현기를 일으킨다.
봄날, 산은 온갖 빛깔이 깨어나는 현기증으로 어른거린다. 흰빛에서 옥색을 거쳐 연두초록까지 연분홍에서 분홍을 거쳐 보라까지, 사이사이 어른거리는 노란 빛깔, 저 많은 색들이 어디에 묻혀 있다가 나타나는지, 살아 있는 것들이 와와 눈부신 색으로 제 목숨을 주장하는 함성. 그 함성들로 물속에 잠겨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봄산은 혼곤하다.
충북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미륵사지 가는 길. 충주에서 문경을 잇는 국도를 따라가다가 수안보를 거친다. 물길로는 강원도 영월에서 한강까지 잇닿고, 붙길로는 하늘재 넘어 문경으로 가는 길과 단양거쳐 죽령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교통의 요지라서 유사시엔 이 곳을 차지하려는 각축전이 끊이지 않던 곳. 예전부터 사람의 발걸음으로 다져졌을 길들. 그 길을 차로 달려 미륵사지에 닿는다.
미륵사지의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절의 역사를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기록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전설이나 석굴사원 양식 등으로 미루어 나말여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오누이는 깊은 산으로 찾아든다. 전쟁으로 죄 없는 백성을 참혹하게 죽게 만드느니 사직을 고려에 넘김으로써 백성의 안위를 도모하려 했던 경순왕에게 그 아들 마의태자는 말한다.
충신 의사들과 더불어 민심을 수습해 힘이 다한 뒤에야 그만 둘 일이지 어찌 천년사직을 경솔하게 남에게 내어주겠느냐고. 끝내 고려에 항복하자, 울며 부왕을 하직하고 길 떠난 마의태자. 정작 전쟁은 길 떠난 마의태자외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 길밖에 없었을까. 못다한 아쉬움이 금강산을 향해 가던 태자를 잠시 이 곳에 머무르게 한다.
일찍이 신라가 하늘재와 죽령을 개척해 삼국통일을 위한 발판을 다지려 했던 곳. 이 곳에 원력을 세움으로써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마의태자는 미륵사를, 덕주공주는 덕주사를 짓는다. 전설은 마의태자가 미륵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뒤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미륵사지의 미륵불이 나라안에 유일하게 북향한 미륵이라는 점에서, 북쪽야인의 침해를 많이 받았던 고려시대에 부처의 힘을 빌려던 것이 아니었나 추정하는 것이다. ‘대원사大院寺’ ‘미륵당 彌勒堂’ 등의 글씨가 쓰인 기와가 출토되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고려시대 문헌에는 미륵원彌勒院이라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원院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하룻밤 쉬어 갈수있는 숙박시설의 기능을 겸한 곳이다. 미륵사지 또한 교통의 요지인 하늘재와 가까워 나그네들이 쉬기 맞춤한 터전이다. 험한 고개를 넘어온 길손들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해준 미륵불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 터전에 깃들이어 밤을 보낸 다음에 길 떠나면서 다시 안녕을 기원했을 것이다. 그 숱한 오고 감을 지켜보았을 미륵불, 보물 제 96호 미륵사지석불입상미륵불은 여섯 개의 돌을 쌓아 올려 조성되었다. 북쪽이 트인 석굴 안에 모셔져 있다. 석굴 안쪽에는 군데군데 돌로 벽감을 만들어 그 안에 앉아 있는 보잘상을 모셔두었다. 화재 등의 재난으로 보잘상은 많이 없어지고, 돌 한 덩이에 두셋 조각된 보살상도 닳아져 윤곽반 어슴푸레 남았다. 간절한 마음이 세월의 힘으로 안으로 다그어 이룬 무덤덤함. 그 한 겹 안쪽을 헤쳐보면 섬세한 마음결이 그대로 살아 있을 법하나, 좀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갈 순 없다. 미륵사지에 들어선 세계사라는 절에서 석굴 입구를 1년등을 켠 유리 진열장으로 막아서이다. 미륵불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면 축단위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시가 위협적인 두릅이 그 가시에 어울리지 않는 연한 햇순을 밀어올리는 석굴뒤편으로 돌아가며 본 미륵불의 어깨는 앞쪽으로 약간 동그스름하게 기울어 겸손하고 수굿하다. 근기로는 석가보다 나았으나 석가의 수행이 하도 맹렬하여 자기 시대를 석가에게 내주고 밀려난 미래불 미륵. 또는 “한방에 누워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웰오면 내 세월이요, 네 무릎에 올라오면 네 세월”이라고 내기하다가, 미륵의 무릎에 핀 꽃을 몰래 꺾어 자기 무릎에 얹은 석가에게 세월을 내주고 만 설화 속의 미륵. 깊은 산에서 수행중인 한밤중, 정처 잃고 찾아든 여인을 내치지 않고도 자기 수행에 충실했던 노힐부득이 성불해 되었다는 미륵. 가멸찬 수행으로든 계교를 부려서든 한사절을 이루어내고 싶은 석가의 열망은 강렬하고, 수행이 석가만 못했든 속았음을 알면서도 넘어갔든, 제 시절을 내어주고 물러나 기다리는 미륵은 어리무던하고 넉넉하다.
미륵불 뒤편에서 보면 미륵불 앞에 석등이, 그 앞에 보물 제95호인 오층석탑이 일직선으로 북쪽을 향한다. 오층석탑의 찰주는 북향인 월악산 정상의 땅기운에 끌린 듯 정상을 향해 조금 기웃하게 기울어져 있다. 밤이면 눈아래 가물거리는 석등의 불빛을 보며, 저 멀리 북쪽을 내다보며 미륵은 다가올 미륵의 세상을 어떻게 펴나가야 할지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석등에 불 켜지지 않은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미륵불이 북향한 것은 북쪽의 야인을 경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마의 태자전설은 오누이 사이의 간절한 정으로 그려낸다. 누이 덕주공주가 지은 덕주사는 북쪽인 월악산 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다. 덕주사의 마애불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북향한 미륵사 석불의 시선과 마애불의 시선을 이으면 각도상으로 맞바라보듯 일치한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어 산속으로 스며든 오누이. 그들이 삼킨 말들이 그 시선으로 오간다. 덕주사의 마애불이 고려시대 양식을 띠었으므로 덕주 공주 당시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훗날에 만들어졌으리라는 분석은 그 전설에 어린 간절함에 자국을 남기지 못한다. 합리에 어긋나면 어떻겠는가. 이미 있는 물건에 사람들 이 마음을 의탁하고 꾸며낸 이야기면 어떻겠는가. 비단옷으로 감싸던 몸에 거친 삼베옷 입고 산자락으로 숨어든 태자와 공주, 그 마음에 어리는 무늬들을, 미륵불을 바라보며 더듬어보면 그 뿐. 미륵불이 있는 곳에서 내려오면 사각 석등이, 그 아래 거대한 귀부가 있다. 거북의 등에는 비신이 있었던 흔적이 남았지만 자연석을 크게 다듬지 않아 질박하다. 마음의 간절함을, 그 솟구침을 둥글리고 다져서 윤곽만으로 드러낼 때의 질박함. 귀갑무늬 같은 건 아예 생락해 버린 민돌 거북의 왼쪽 어깨쯤, 몸체와 머리로만 거북임을 드러낸 손바닥만한 거북 두 마리가 기어 오른다. 앞서 오르는 거북은 좀더 작다. 무엇엔가 마음 팔려 막무가내로 기어나가는 새끼 거북. 그리 가지 말라고, 못내못 미더워하며 말리는 어미처럼 조금 큰 거북이 뒤쫓는다. 갓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가 분필로 담벼락에 그린 낙서처럼 단순하고 정겹다. 보는 사람을 미소짓게 만드는 그 여유는 경건하되 그 경건함에 지레 경직되지 말라는 배려일 것이다.
절터 서편 개울건너엔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이 바위 위에 얹혀 있다. 신라가 길을 닦고 고구려가 장악한 뒤, 신라가 이 곳을 재탈환하자 이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의 온달이 이 곳에 온다. 온달이 보초서는 병사들과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이다. 둥그스름한 돌은 사람머리 보다 크다.
어떤 날엔 신라의 백성이, 어떤 날엔 고구려의 백성이 되었을 사람들. 그들은 그 큰 돌로 공기놀이를 할 만큼 큰 장수가 출현해 언제나 난세인 이 세상을 평정해 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고려 고종41년(1254) 몽고 병란으로 절은 소실된다. 중건한 절은 임진왜란 때 다시 불에 타고, 18세기에 다시 중건했으나 이번에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만나 매몰되니 1936년의 일이다. 불과 바람, 물과 흙에 묻어 버린 절의 자취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절터에 들어선 집을 옮기고 집터를 정비하다가 드러난다.
그 뒤의 발굴로 경사가 진 절터며 회랑, 석굴의 위쪽에는 목조로 지붕을 해 얹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절터 북쪽, 입구였을 법한 곳에 당간지주가 있다. 만개한 연꽃이 새겨진 당간지주는 땅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다. 누워 있는 미륵이 일어서는 날, 용화세계가 되어 미륵불이 내려온다는 운주사 와불처럼 나란히 누운 당간지주. 돌에 오목 패인 틈바구니를 비집고 그 와중에도 잡초는 자라고 있다.
여리나 질긴 풀에 눈 주고 돌아나오는 절 어귀, 호박엿이며 오미자따위의 약재, 쌉싸름한 향기를 번지게 하는 더덕 등속을 쌓아놓고 “호박엿 사가요” 호객하던 아주머니들 서넛이 장사도 잊은 채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그 눈길이 닿는 거기, 넓적한 바위 위에 맹인 여남은 명이 물새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 관광여행하러 나온 차림이다. 온갖 색들이 깨어나 아우성치느라 소란스러운 봄날, 그 경계를 넘어서 무채색의 침묵에 잠긴 이들. 온갖 빛깔을 누리는 아주머니들이 그런 맹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호객할 땐 물건 사줄사람만 들이던 아주머니들의 눈이 보살의 눈, 미륵의 눈이 된다. 볼 수 있는 눈안에 설핏 스치는 아주머니들의 안타까움을, 보이지 않아 예민해진 감각으로 맹인들은 감지한다. “구경 잘했다”고,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한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가 문득 흐려진다.
중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어느 바람결에 묻어들어왔는지 엄지손가락만한 나비 한마리. 차안에서 퍼덕인다. 차창이 열렸는데도 어쩔 바를 모르고 유리에 몸을 부딪는다. 들어온 길 그대로 열려 있으니 들어올 때처럼 나가면 되련만 끝내 그길 못 찾는 나비는 황망하다. 어찌어찌 인연 닿아 금생에 던져졌으나 금생에서 나갈길 아득한 중생들이 경계에 걸려 어지러운 봄날, 나비 한마리, 어떻게 나가려느냐고, 제 온몸을 제 전생애를 던져가며 묻는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