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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의 고사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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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강난미 2001년 08월 234호
남들에게 우리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같은 대학에서 연애…? 가 아니고, 같은 남녀 공학 고등학교 캠퍼스에서 선생 하면서 만났으니 그것도 말 되나요? 남편과는 3년 동안 동료 교사로 잘 있다가 어느 날 결혼 상대로 관점 전환이 발생했는데, 다시 말해서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수업을 들어가니 한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 폭탄 발언을 합디다.
“샘예! 같은 학교 샘끼리 결혼해도 됩니꺼?”
순간 웅성웅성하는 아이들, 물론 이 판에 오늘 수업 좀 땡땡이 쳐보자는 녀석들의 부추김도 있었겠지만 여하튼 아이는 당돌하고 선생은 순진하니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쩔쩔매는 사이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됐지요.

문득 결혼 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강조하던 남편의 말이 생각납니다. 남편의 성은 배裵, 내 성은 강姜인데 남편이 말하기를 강江엔 배(船)가 있어야 하고 배(船)는 강江위에 있어야 한다나요. 정말 천생연분도 말하기 나름이더군요. 어쨌든 이런 강과 배의 인연은 지리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학교 온 지 3년째 되는 여름 방학 때,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노고단에서 천황봉까지 지리산 종주 등반을 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출발 직전 어쩌다 끼이게 되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남편될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등엔 머리 위를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7월 말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오르다보니 사람들의 얼굴이 출발할 때와는 달리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갔습니다. 산에서 며칠 밤낮을 입에서 악!소리 나게 행군하다보니 10여 명의 도시인들이 참말 무섭게 변합디다. 처음엔 앞사람 엉덩이가 친근할 정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던 대열이 차츰 제 멋대로 되기 시작하더군요. 내가 보니, 선두엔 교장 선생님을 비호하는 가신 그룹의 샘들이 오로지 교장선생님의 보폭에 맞춰 전진 또 전진을 외치며 나아가고, 그 뒤엔 체력이 딸리는 몇 선생님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 몰아쉬며 선두를 추적하는데, 그 대열에서도 또 몇 발자국 뒤에는 길을 잃어도 뒤돌아 봐 줄 사람 하나 없는 살벌한 분위기에 죽으나 사나 따라갈 수밖에 없는 제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그들이 선심을 써, 겨우 선두가 쉬고 있는 곳까지 헉헉거리고 따라잡으면 이미 편안히 쉰 그들은 땀이 보송보송 마른 혈색 좋은 얼굴로 나 잡아봐라 하듯 출발하는 거 있죠. 참 그것만큼 서러운 게 없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뒤에서 유일하게 말동무, 길동무 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배 샘이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선 못했던 이런저런 얘길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긴 여름 하루 종일을 눈만 뜨면 함께 걸으니 나중엔 서로에게 익숙해져 행렬에서 보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찾아졌어요. 그러면서 다시 보니, 배 샘은 힘든 산행 내내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판에 진심으로 몸 아끼지 않고 남을 돕더군요. 나중엔 녹초가 된 다른 사람의 짐까지 떠맡아 그의 등짐은 엄청나게 불어났고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지게꾼처럼 ‘여차’ 기합소리를 내야 겨우 아등바등 일어날 정도가 됐지만 힘닿는 데까지 애쓰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어느 산악인이 그러더군요. 산을 타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 있다고… …. 지리산 종주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왕초보들의 등반은, 천황봉 정상에서 자신의 한계를 이겨 낸 사람들의 얼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득한 희열 속에 마무리되고, 산에서 친해진 두 사람은 내려와서도 계속 친하기를 거듭하다가 결혼하게 됐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마음만 맞는다고 되는 건 아니더군요. 수순隨順이란 게 그것이죠. 예비 시어머님과 처음 만난 날의 이야기입니다. 난데없이 ‘강씨는 고집이 세던데’ 하는 말을 시작으로 갑자기 머리카락에 가려 있던 내 이마를 당신 손으로 쓱 헤집으며 “이마가 잘 나야 되는디.” 그와 동시에 귀까지 마저 보고야 말면서 “귀가 잘나야 복도 많은데….”오빠 셋 밑에 딸 하나 키워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엄마와, 한 남자가 ‘결혼하자’ 하니 그의 어머니도 당연히 만나야 되는갑다 하고 멋모르고 나온 나는, 이야기가 눈감고 들으면 꼼짝없는 인신 매매 수준이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일어서면서는 “아고, 귀하게 키워 사장 집에도 못 보내고 우리 집에 와서 우얍니꺼.” 하며 도무지 정신이 하나도 없게 혼자 말씀하시고, 답하시는데….
상견례 후 엄마는 ‘사윗감은 좋은데 시어머니가 좀 어렵다’하시자, 신랑이 예비 장모를 꼬시는 말, ‘우리 엄마는 뒤끝이 없는 화통한 분이니 걱정 마세요’ 하면서 ‘당신이 뭔 말했는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성격입니다요’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주의할 것은 남편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다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 거죠. 바로 상대에 따라 다르단 거지요. 아들에겐 이제껏 뒤끝 없이 했겠죠. 서른 해 동안 당신 속으로 낳아 키워 온 아들은 말하나 마나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체 아닙니까? 저도 열댓 살 먹은 아들놈 키우니 그 심정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난 단지 며느리일 뿐인데 어떻게 뒤끝이 없을 수 있겠어요.
결혼 후, 어머님은 몸도 마음도 약한 내가 처음부터 너무 만만해 보이셨는지 고양이가 마치 병아리 훌치듯 하셨지요. 지나고 생각해 봐도 아쉬운 것은 왜 처음부터 어머님께 내 자신이 좀더 당당하지 못했나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계시는데도 어머님 중심으로 집안 대소사가 결정되는 것도, 집안 식구 모두가 어머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골 호인無骨好人인 아버님의 성품 땜에, 몸 앞서고 말 앞서는 어머님이 집안 일을 도맡다보니 주장이 강해지셨고, 본디부터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남 달라 누구하고 짝 지워도 내 아들이 아까운 어른이셨어요. 세 아들만 보면 밥을 굶어도 배부르다던 어머니께서도 어느덧 70을 바라보시고, 저도 아래로 동서를 둘이나 거느린 맏 형님이 되었네요.

15년 시집살이 끝에 전 이제야 어머님을 바람(風)이라고 불러봅니다.
모성母性과 여성女性이 함께 존재하는 어머님의 내면은, 어느 날엔 꽃을 피우는 미풍이 되고 또 다른 날은 금세 주위를 흔들어 놓는 강풍이 되기도 하죠.
그렇지만 나는 이젠 압니다. 내 뒤를 끝까지 지켜 준 남편과 그 여름의 지리산 등반 때 함께 보았던 천년 세월의 고사목처럼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품을 때는 품고, 맞을 때는 맞아야 한다는 걸요.
그리고 한 남자와의 결혼이 결코 한 남자의 육체와 정신만이 아니라 그를 잉태한 모든 근원과 만나는 일이란 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