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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의 전산화, 그 사회적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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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유승무 1997년 06월 184호
전자고려대장경의 탄생-제1파장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희귀 문화재로서 세계가 인정하는 빼어난 가치를 지닌다. 곧, 경판의 완전무결성, 그 분량의 방대함, 탁월한 보관기술 등, 오늘날의 교환가치 잣대로는 도저히 그 가치를 환렬할 수 없는 뛰어난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실용성을 거의 잃다시피하여 실제로는 낮은 사용가치만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획된 고려대장경의 전산화는 고려대장경의 모든 내용을 디지털 코드로 입력함으로써 이제 그 완성이 목전에 다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른바 “전자고려대장경”이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고려대장경”의 탄생은 불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 첫 파장은 불교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른바 정보화사회라고 하는 오늘날에 “전자고려대장경”의 탄생은 무엇보다도 경전 정보의 대량생산이라는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디지털 코드로 저장한 “전자고려대장경”의 탄생을 계기로, ‘고려대장경에 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그리고 고려대장경의 그 어떤 정보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해인사 고려대장경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정보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존 해인사 목판 대장경이 고려시대 이후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지탱하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면, “전자고려대장경”은 미래사회에 있어서 불교를 실제적으로 지탱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전자고려대장경”이 일으킬 파고는 불교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체로 깊숙히 밀려 들어올 것이다.

경전 정보화의 사회적 의미-제2파장

현대사회는 수많은 사회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그 결정적인 구조적 원인은 물질문명이라는 현대문명에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의 고통은 인류문명의 위대한 정신적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거나 실천하려고 하기보다는 물질적인 이해관계나 감각적인 욕구의 충족에만 매달려 온 현대인들의 자업자득이다. 한편으로는 그 원인의 일부는 정신적인 가치의 생산력이 물질적인 가치의 그것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전자대장경의 탄생을 계기로 경전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의 모든 자원들이 정보화된다면, 정신적 가치의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생산력의 증대는 현대사회의 결핍 요인, 곧, 정신적인 가치를 점차 충족시킴으로써, 정신적인 가치와 물질적인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미래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다종교사회의 양상을 띤 우리사회는 불교에 비해 각종서양종교들의 정보 능력이 상대적으로 앞섬으로써 한국인에게 있어서 불교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되거나 심지어 왜곡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복적’ 이니 ‘신비주의적’ 이니 하는 한국불교의 수식어는 서양종교와의 비교적 인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 한국인들은 왜곡된 불교관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가치관 혼란상태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전자고려대장경은 완벽한 경전 정보를 올바르고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현대인의 왜곡과 편견을 극복하고 올바른 불교관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종교간의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에도 기여함으로써 가치관의 혼란을 줄이는 데도 공헌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고려대장경 - 제3파장

현대 사회는 한편으로는 급속하게 세계화 및 국제화됨으로써 나라와 나라사이의 장벽이 차츰 낮아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적으로 지방화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정보의 흐름은 국가 장벽, 지역 장벽, 인종 장벽, 문화 장벽, 심지어 언어 장벽까지도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전자고려대장경은 경전 정보를 세계 곳곳에 전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홍보함으로써 그 동안 여러 가지 장벽으로 인하여 불은佛恩의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이 불교와 인연을 맺게 해 줄 것이다. 이제는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인사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열람하고 그 뛰어남에 감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욱이 혹자의 말대로 향후 21세기가 불교의 세기라면, 경전 정보에 대한 세계인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전자고려대장경’은 이러한 세계적인 수요 폭증을 충족시키는 충분한 공급원이 될 것이다.

부정적인 파장을 경계해야

자본주의사회는 모든 사회적 산물을 상품화함으로써 모든 다른 가치들을 물질적 가치에 종속시켜 버린다. 우리는 바로 이런 점을 경계하며, 전자고려대장경이 탄생되어 고려대장경이 사회화될 경우에 이 전자고려대장경이 교환 가치로 전락하여 천박한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십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고려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불교성전이자 세계에서 가장 완전무결한 고려대장경의 정신을 전자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자고려대장경이 고려대장경 본래의 가치를 온전히 보전하면서 동시에 그 사용 가치를 자유롭게 실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전자고려대장경은 불교 경전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불교의 상징성을 보존하여야하며 성스러움과 존엄성을 지닐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고려대장경의 실용화 이전에 전자고려대장경을 대하는 규범을 확립하고 사용자 스스로가 외경심을 가지고 고려대장경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유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전자고려대장경은 그 완전무결성에서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전자고려대장경에서 발견되는 오자나 탈자를 하루빨리 수정하여 보완해야 할 것이며, 사용자가 함부로 훼손하거나 임의적으로 고칠 수 없도록 하는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전자고려대장경의 원판인 해인사의 목판본 고려대장경을 영구히 보존할수 있는 장치도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좀더 많은 사람이 좀더 손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전자 고려대장경에 기초하여 하루바삐 국역 대장경판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통합전자대장경시대의 도래에 발맞추어 한국불교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역 대장경이 여러 문화권의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 다른 대장경과 함께 통합전자대장경의 일부로 자리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이를 위해서는 전자고려대장경은 불교계만의 ‘한정적 공유재’ 가 아니라 세계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명심해야 하며, 불교계 스스로가 전자고려대장경에 대한 특권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지양함으로써 ‘전자민주주의’ 를 확립해 나가도록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