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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을 만들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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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예진 2001년 08월 234호
산사의 여름은 불성의 종자를 가꾸는 농번기입니다. 산사 수련회의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교화부 스님들은 지하에 있는 시청각실에서 땀을 뻘뻘 흘립니다. 어린이들을 하수夏收(여름에 거두어 들이니까)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때 저도 지하세계(?)에서 땀으로 목욕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린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곧 저의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주제 : 부처님은 우리 친구
언제 : 2001년 ○월 ○○일~○○일(2박 3일)
어디서 : 운문사 만세루
대상 : 초등학교 1학년~6학년
예약접수 : 선착순 500명


올해 23차 여름불교학교 대강 안내문입니다. 보름이나 남겨두고 접수는 마감되었습니다.
많은 절에서 어린이부터 청소년 어른들의 수련회까지 다양하게 열고 있으나 운문사는 여러 가지 여건상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만을 열고 있습니다. 한가지 수련회만을 고수하는 만큼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만큼은 전국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자부합니다. 입산 이전부터 따지자면 약 10여 년 동안 여름불교학교를 보아왔습니다. 교사 교육 프로그램,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관심 등 운문사만큼 하는 곳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운문사는 사찰 살림 대부분이 학인스님의 소임으로 이루어지듯 여름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획에서부터 레크레이션, 음악, 율동, 담임 등 모든 프로그램은 스님들의 철저한 준비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직접 어린이 앞에서 뛰지 않더라도 먹거리 준비 등 뒤에서 하는 일까지 합하면 260명 전 대중이 여름불교학교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내 가족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스님들은 세상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스님들과 함께 하는 2박 3일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스님들은 불교적인 사고와 시각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기 ?
㏏?都求?

도반 스님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2명의 조카가 있습니다. 조카들은 고모가 스님 된 사실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전화를 해도 늘 어두운 목소리로 “고모, 우리랑 같이 살자.”고 졸라대었고 머리를 기르라고 보채었습니다. 스님이 된 사실을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우연찮게 작년 여름에 기회가 되어 여름불교학교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여름불교학교 회향 이후 조카들은 고모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변하였습니다. 집에 가서도 발우공양을 하겠다고 어머니께 발우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불법승’, ‘석가모니불’ 그리고 박수를 치며 뜻도 모르는 〈반야심경〉을 외우며 장난을 쳤습니다. 또 삼촌이 1080배를 했다고 하자 아이는 삼촌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새벽의 54배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하면 “스님!” 하고 반색합니다. 이젠 고모가 스님인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속가 집과 인연을 끊고 사는 스님들은 속가 집안과 어쩌다 연이 닿게 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스님들 역시 가까운 인연을 제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도반 스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못했던 일을 운문사 여름불교학교를 통해서 그 두터운 마음의 땅에 불심을 심었다는 것입니다.
2박 3일의 행사를 위해서 우리는 여름을 투자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혹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중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까하여 음악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요즘 어린이에게 맞춰야 하는 이 테크노(작년에 유행했던) 댄스가 도무지 스님네한테 어울리는 일인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율동을 하려면 몸이 따라주지 않고, 손동작의 복잡한 순서는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착 가라앉은 염불만 하던 목소리는 고음의 동요가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피로한 몸은 수업시간에 아무리 깨어 있으려 해도 어느새 졸고 있습니다. 후다닥 놀라서 깨면 눈을 뜬 채로 자고 있기 일쑤입니다.
서투르지만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정확하게 압니다. 내가 사랑 받고 있는지 미움 받고 있는지. 아니 모든 만물이 그럴 것입니다.

두 해 전, 여름불교학교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할 때였습니다.(작년엔 비가 왔음) 폭죽이 올라가고, 나무에 불이 붙여지자 너무 신이 난 치문반 스님은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스님예! 우리 축제날 같아예.”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이 사바세계에 노닐며 어떻게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방편의 힘은 그 일이 어떠합니까?” 라고 무진의보살이 질문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상대방의 득도에 요청되는 몸에 따라 불, 벽지불, 성문, 범왕, 제석, 자재천, 장자, 거사, 재관, 바라문, 부녀 등 여러 가지 신상으로 나타나 교화 설법한다는 부처님의 답변 중에서 “응당 동남, 동녀의 몸으로 득도하는 이에게는 곧 동남, 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운문사 여름불교학교가 좋은 것은 스님들 스스로 아이처럼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을 주로 동자로 표현합니다. 《80화엄경》의 최후품인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이야기는 아이를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봅니다. 어려운 일도 능히 행하는 보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이와 같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참다운 지혜가 생겨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찰에서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산도 만만찮습니다. 프로그램 준비 또한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씨앗은 언젠가 발아하여 이 지구에 자비와 지혜의 싹을 틔울 것입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시원합니다.
청산에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그보다 더 시원한 것은
어린이 마음, 어른의 마음 씻어주는
산사의 여름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