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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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성연
1989년 02월 84호
들어가 보니 초라한 단 위에 영정이 어슬프게 놓여 있고 곁에는 스님과 관계된 유품과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꽃을 올리고 향을 사른 뒤 촛불을 밝히려고 했으나 난장이 촛대꽃이가 떨어져 있어 울컥 눈물이 솟았다.
심우장(심우장), 소를 찾는 집이라면 선가(선가)에서 말하는 무상대도(무상대도)를 깨치기위해 공부하는 집이란 뜻이다. 성북동에 위치한 심우장은 만해 대선사가 총독부를 보지 않기 위해 정북향으로 지은 곳이다. 고인의 넋을 생각하며, 일제의 간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굽힘이 없었던 님의 투혼을 배우곡자 오랜만에 심우장을 찾았다 노송 한두 그루가 서 있는 심우장 뜨락은 깨끗했다. 님께서 손수 심으셨다는 향목(향목)도 우뚝 서 있다. 심우장 건물은 사칸 겹집으로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아담한 한옥이며, 삼간은 한풍을 차단하는 비닐이 쳐져있었다. 섬돌위세는 몇 켤레의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소문데로 사람들이 세들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우장 한쪽 끝 단칸방에 ‘만해사상연구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문틀엔 자물쇠가 걸려 있으며 문종이는 누렇게 바래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초라한 단 위에 영정이 어슬프게 놓여 있고 곁에는 스님과 관계된 유품과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싸늘한 방구석엔 때ane은 전화기 한 대가 초라하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꽃을 올리고 향을 사른 뒤 촛불을 밝히려고 했으나 난장이 촛대꽂이가 떨어져 있어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영정 앞에 좌정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열여덟살에 갑오 농민전쟁에 참가하여 반제․반봉건 투쟁의 선봉에 섰던 분, 삼일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로서 민족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신 분, 썩어가는 불교를 구하고자 불교유신론을 지어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신 분 일제치하에서 죽을 때까지 민족의 해방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고군분투하신분, 민족의 정기를 일깨우기 위해 몸과 마을 다하여 애를 쓰신 분, 만해 대선사
후학들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그가 불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현실에 비통함을 떨칠 수 없다. 타 종교에서는 실오라기 같은 역사도 찾아 내어 자신의 종교가 민족종교임을 부각시키려고 하는데, 불가에서는 이런 분을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있으니 불제자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만해 대선사가 득도한 백담사는 10.27 법난의 원흉이며 단군 이래로 최대의 도적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버젓이 부처님의 자비를 빙자하여 안하무인격으로 기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을 부처님 모시듯 하고 있는 현실에 비춘다면, 심우장은 그래도 고인의 체취만이라도 서려있으니 좀나은 편이라고나 할까.
심우장을 뒤로하고 내려오면서, 이제라도 심우장이 불교의 성지로 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열과 성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온 몸에 강한 전율이 흐름을 느낀다.
오늘의 불교는 불교 관계 제악법을 두고 조그만 이해 관계로 인해 이전 투구하고 있으며, 두 개의 총무원이 언제 한바탕의 격전을 치를지 모를 상황이다. 민족사 속에서 어쩌면 꺼져 버릴지도 모를 불교의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진정 민중과 함께 오늘의 역사 현실을 고뇌하고 아파하는 참 불교의 모습을 갖추는 일은 , 대선사의 업적을 기림과 더불어 만해사상의 진수를 민족사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실천궁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네 꼬마들이 해맑게 뛰노는 모습 뒤에 서 있는 안내판의 ‘만해가 불가의 중이 되었다’라는 비하된 문구가 ‘민족의 영원한 민족정신의 성지인 심우장’이라고 바뀔 때까지 불교계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