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와 자정 운동으로 이어질 때 조계종 분규해결은 시작된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11월 213호
지난 10월 1, 2일 법원의 판결이 표면적인 이유가 되어 발생한 조계종 분규는 현 총무원측-여기에는 중앙종회, 원로회의도 포함된다-과 정화개혁회의측의 대립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 42부는 정화개혁회의 총무원장 정영스님이 고산스님을 상대로 지난 1월에 낸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소송과 총무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또 원고측이 신청한 도견스님-원로회의 의원-을 총무원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조계종은 지난해 11 ~12월에 이어 또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판결을 접한 총무원 주변 불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처음에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법원의 판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산 총무원장이 1월에 취임한 뒤 비교적 안정적인 종단 운영을 해왔는데, 법원의 판결로 종단이 큰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대책회의를 거듭한 총무원측은 피고인 고산스님의 항소권 포기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항소 포기에 담긴 뜻은 이렇다. 첫째, 법원 판결을 전면 거부함으로써 지게 되는 사회적 지탄의 부담을 덜었다는 것이다. 항소권의 포기로써 법원 판결을 존중함과 동시에 판결을 확정지었다. 둘째, 법원이 선임한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원천 무효화 시켰다. 가처분 판결문에 따르면, 총무원장 직무대행의 직무 집행 시기는 판결 확정 때까지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법원이 선임한 총무원장 직무대행의 효력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조계사 주변의 재가단체의 반용이 나온 것은 3일부터였다. 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것이 주요내용이었다. 절차성의 오류를 지적해 한국 최대 종교의 대표권자를 법원이 선임한 것은 오판이며, 이는 불교의 자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재가 단체들은 10월 5일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면직처분취소청구 소송에 대한 서울 헹정법원의 판결을 예로 들었다. 서울 행정법원은 정부가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을 면직시킨 것은 재량권을 넘어선 위법한 처분이지만, 심 전 고검장이 복직할 경우 자신보다 후배인 검찰총장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등 검찰 조직의 안정에 장애가 되는 데다 복직할 자리가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복직은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면직 처분이 부당하다면 당연히 복직토록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나, 검찰 조직이 갖는 특수성을 감안해 논리적 모순을 ‘사정事情 판결’이라는 법 이론으로 비켜 간 것이다.
법조인들은 서울지법 민사 42부 재판부가 ‘부분 사회의 이론’이라는 법 이론을 적용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종교단체 등 단체내의 완결된 유지기능을 존중해 사회법의 적용을 완화해 그 단체의 자율기능을 유지케 해 준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법 이론을 적용해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한국 최대 종교의 안정성을 위해 법원이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선임하기보다는 총무원장선거의 재실시를 판결했더라면 절차장의 잘못을 바로잡고, 조계종단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재가단체처럼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발표할 통로가 없는 불자들 가운데는 “또 싸움이냐”며 거듭되는 조계종 분규에 대해 언급하기도 싫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불자들의 반응은 주목 받지 못했지만, 불자들 가운데 흐르는 정서임에는 틀림없다.
법원 판결 이후 발생한 고산스님의 항소 포기, 원고인 정영스님의 항소 제기 과정에서 때 아닌 법리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법리 논쟁의 쟁점은 피고의 항소권 포기로 법원이 선임한 직무대행의 효력이 유효한가, 전부 승소한 원고의 항소권 여부였다.
총무원측은 전부 패소한-원고의 청구 취지와 판결 주문이 같은 경우 전부 승소. 이번 소송의 경우 재판부는 원고인 정영스님의 청구 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피고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자격이 없음을 확인한다.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피고인 고산스님은 전부 패소했다-피고가 항소권을 포기했으므로 판결이 확정됐으며, 이에 따라 직무대행의 권한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정화회의 측의 항소에 대해서도 전부 승소한 원고는 항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항소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화회의측은 전부 승소했더라도 피고의 항소권 포기로 청구 취지에서 구하고자 했던 실익을 상실했으므로 항소가 가능하다며 반박했다. 정화회의는 6일 법원에 항소를 제기했으며, 16일 서울고법 민사 6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고법의 사건 배당을 두고도 법리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화회의측은 항소중이므로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도견스님의 직무대행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총무원측은 이미 지난 10월 6일 서울지법 민 사42부가 발급한 판결확정증명원과, 이 증명원 발급에 대해 정화회의측의 이의 신청을 각하한 사실을 근거로 직무대행의 효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 42부는 10월 7일 정화회의측이 판결확정증명원 발급 이의 신청을 각하하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미 판결이 확정된 이상 그 판결은 항소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그러한 확정 판결에 대해 항소가 제기되었다고 하여 판결 확정의 효력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법리 논쟁에 대해
많은 불자들은 양측 주장의 타당성보다는 출세간의 불교 일을 세속 법의 판단에 맡기는 모양이 옳으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대 조계종의 역사가 분규로 얼룩졌듯 분규가 있을 때마다 사회법에 좌우되는 일을 스스로 불러들였다. 조계종의 고질병 중의 하나다. ‘조계종 전문변호사’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70년대에는 조계종의 법통의 상징인 종정까지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려놓은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당연히 세속법 의존의 고질병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현재의 종헌·종법은 계율의 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속법의 모양을 따르다 보니 이해관계가 대립될 경우 계율은 팽개치고 종헌·종법의 규정과, 이 규정의 헛점을 끄집어내 수단으로 삼으며, 급기야 세속법으로 가름하려 든다. 오죽했으면 종단 일을 사회법에 제소하면 멸빈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겠는가 계율의 정신이 충실히 반영된 종헌·종법으로의 개정, 그리고 종헌·종법을 수행과 포교를 비롯한 일상적인 삶의 지표로 삼는 풍토조성이 시급하다.
또 하나의 질타 섞인 물음은 폭력의 악순환이 언제까지 이겨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10월 12일 낮, 조계사 앞 우정국로 6차선 도로 3백 미터 구간에서 벌어진 총무원측과 정화회의측의 유혈난투극이 40여 분 동안 벌어졌다. 그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와 다음 날 신문의 사회면 톱은 ‘조계종 유혈 폭력’ 이라는 제목을 달고 폭력사태 상황을 전했다. 보기 민망했고, 분노를 자아냈다. 폭력이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불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경찰의 늑장 출동으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폭력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경 찰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이 날 오후의 궐기대회를 치르기 위한 방어적 차원의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도 수긍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불자와 국민은 자비를 표방하는 불교에서 폭력을 일으켰고,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음은 성숙한 불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교의 자주성은 자존이 라는 가치에 불교 밖의 사람들이 불교의 권위를 인정해 줄 때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사회법 의존은 스스로의 자존을 깎아 내리는 일이며, 폭력은 국민이 부여하려는 권위를 마다하는 행위이다.
이번 조계종사태는 지난 해와는 달리 청사접수를 둘러싸고 극렬한 공방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또 11월 15일로 총무원장선거 일정이 발표되며 새 총무원장을 뽑아 빨리 안정을 되찾자는 분위기가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총무원장을 새로 뽑았다고 해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존을 팽개치고, 국민을 불교로부터 냉담하게 돌아서게 하는 사회법 제소와 폭력 행위에 대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 또 자정을 위한 운동으로 이어질 때 이번 사태는 해결을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으며 길을 찾고 있다. 참회도 없고 자정 운동도 없다면 조계종의 10월은 너무 처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