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그마한 조약돌 속에 갇혀 살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지구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이니까 이마 신생대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그 날도 나는 엄마하고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내가 살던 강물이 그만 땅속으로 푹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오직 나 혼자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아무리 소리쳐 불러 보아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부모형제와 헤어지고 나서 오랜 시간 동안 어둠의 땅속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요. 엄마가 보고 싶고 형제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무섭고 답답하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어둠 속에서 삶을 참고 견딜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둠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둠이 내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을 게 아니라, 넌 이제부터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해.”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기다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둠아, 도대체 기다림이란 게 뭔데 그런 말을 하니?”
“그건 네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며 의지야.”
“글쎄, 내게 그런 기다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는 그런 기다림을 위한 시간과 의지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누구나 기다림을 지니고 산다고 말하였습니다.
“지금은 네가 비록 땅속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땅 위로 나가 네가 그리워하는 강물과 햇살 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들을 만나려면 넌 지금부터 기다림을 지니지 않으면 안돼.”
나는 어둠의 말대로 기다림을 지니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런 마음을 먹고 나자 기다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기다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어둠에게 묻자 어둠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기다림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인내를 바탕으로 기다림을 하나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둡고 추운 땅속을 벗어나 언젠가는 다시 물 속을 헤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딱딱해져 갔습니다. 부드러웠던 흙이 차츰 돌이 되어 가자 부드러웠던 내 몸도 그만 돌처럼 딱딱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구에는 또 한 차례의 지각변동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얼굴을 조금 내밀게 되었습니다. 기다림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어둠의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또 다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던 비위덩어리가 수 많은 돌멩이로 쪼개졌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들 주먹보다 더 작은 돌멩이가 되어 강가에 나뒹굴게 되었습니다.
나는 강가에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가 헤엄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내 마음일 뿐 나는 돌 속에 박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수 많은 날이 지나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사는 강가에 수석을 채취하는 사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혹시 그 사람들에게 잡혀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으나 결국 그런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와아! 이거 굉장한 돌이군! 돌 속에 흰 물고기 한 마리가 박혀 있네!”
나를 집어 든 사내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정말 명품이야, 명품! 마치 물고기가 지금 막 꼬리를 치고 헤엄을 치는 것 같아!”
사내는 나를 무슨 소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양 배낭 깊숙이 넣어 자기 집 거실장 위에다가 올려놓았습니다. 나는 강물소리를 듣지 못하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거실장 옆에는 바로 텔레비전이 있어 누가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가끔 걸려 오는 전화 벨소리에도 기겁을 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내가 박혀 있는 돌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날 좀 내보내 줘. 그 동안,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살았으면 이제 헤어질 때도 됐잖아.”
“아냐, 난 널 보내고 싶지 않아. 난 널 사랑해.”
그는 잘라 말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밀에 놀랐지만 다시 돌에게 말했습니다.
“난 물고기야. 물고기가 헤엄을 치지 않으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니.”
이번에는 그가 대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초승달아, 네 생각은 어떠니? 넌 날좀 내보내 줄 수 없겠니?”
나는 답답한 심정으로 내 곁에 멀직이 떨어져 박혀 있는, 사람들 새끼 손톱만한 초승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초승달은 자기도 밤하늘에 높이 떠서 세상을 한번 은은하게 비쳐 보는 자신의 소원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퍽 실망스러웠지만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인집 남자가 느닷없이 금붕어가 담긴 어항을 하나 사와 거실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항에는 온몸에 붉은 빛이 도는 금붕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만 그 금붕어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웬일인지 그 금붕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내가 강가를 떠나게 된 것은 바로 이 아름다운 금붕어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금붕어만 쳐다보았습니다. 금붕어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긴 꼬리를 하늘하늘 움직일 때는 마치 내가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습니다.
“날 좀 내보내 줘.”
나는 금붕어와 함께 살고 싶어 내가 박혀 있는 돌멩이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힘껏 고개를 내 저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기회만 있으면 나를 내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여전히 고개만 가로 저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마 첫눈이 내린 날이었을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 내가 어항 속에서 금붕어와 같이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엔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꿈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내가 박혀 있던 돌멩이 속에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가둬 놓았던 돌이 쓸쓸히 눈물을 훔치며 미소를 보내고 있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나는 그 돌멩이의 미소를 보며 그가 진정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