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은 멀어져가고 계곡의 물소리는 더 깊어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하루 간격으로 출가한 두 행자는 약속이나 한듯이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눈길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그동안 외웠던 염불테스트를 하자고 서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손바닥을 마주쳤다. 둘 다 알고 있는 재미있는 노래 곡에다 염불을 붙여서 불러 보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그 길은 산길이었고 기도하기 위해서 암자를 찾는 불자들 외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치 않았다. 두 행자는 마음 놓고 목청껏 염불노래를 시작했다. 그 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이라는 노래가 세간 사람들에게 인기가 절정을 이룰 때였다. 두 행자가 먼저 첫곡으로 겨룬 곡이 그 곡이었는데 염불 가사가 문제였다. 어떤 가사를 붙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행자는 〈반야심경〉을 ‘돌아와요 부산항’에 붙였고 나는 〈대방광불화엄경 약찬게〉를 붙였다. 두 행자는 좀 엉터리 같은 부분이 있어도 서로 봐준다며 한 곡을 끝내고 두 번째 곡을 겨룰 때였다. 서로 좀 빠른 곡을 택하기로 했다. 참 오래된 외국 노래였는데 ‘쟘발라야’라는 곡에다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붙여서 노래를 하는데!
오랜만에 어찌나 신났는지 두 행자는 서로 마주 보며 춤까지 추게 되었다. 그 옛날에는 다이아몬드 춤이라고 해서 유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 하지도 못하는 춤 실력 때문에 그 어설픈 서로의 모습이 얼마나 웃음이 났던지 파안대소를 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다른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행자는 자기들의 모습에 한참 빠져 있던 터라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그 고요한 산중 어딘가에서 사람 웃음소리가 났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 스님 서넛이 큰 반석 위에 모여 앉아 두 행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것이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겁이 났는지 두 행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산길을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작은 다리 앞에 도착했다. 길에서 염불노래 한 죄, 덧붙여 춤춘 죄, 바로 암자에 안 가고 중간에 노닥거린 죄… 이제 혼날 것을 걱정하니 두 행자의 가슴은 막막했다. 그래도 모처럼 산문에 들어와 처음으로 가져본 시간이라 견책받을 일은 뒷전이고 두 행자는 마냥 즐거웠다.
산을 오르면서 오고가는 불자들이 원願을 담아 쌓아 놓은 돌탑에 두 행자는 자기들도 행자생활 잘 마치고 어엿한 스님이 되어 인천의 스승이 될 수 있길 기원하면서 돌 하나씩을 올려놓고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 돌탑 앞에서의 기원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