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견성암 스님이었던 속가의 이모님을 따라 수덕사에 들어온 것이 내 나이 열두살 때였다.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앞을 보지 못했던 어머니와 함께 살던 나를 보고 이모님께서 ‘절에 가서 공부하자’고 해 따라 나섰던 것이 불가와의 인연이 되어 이직도 이 곳에 있다.
수덕사에 들어와 만공스님을 처음 친견한 것은 예순여섯 해 전 겨울, 동안거 해제를 앞둔 무렵으로 기억된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분의 머리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머리 가운데가 모두 벗겨지고 곁으로 조금 난 머리가 마치 다 부서진 갈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의 눈길이 당신의 머리에 오래 머물고 있음을 느끼셨던지 스님께선 조금 남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시며 ‘내 머리는 공산명월이야’ 하셨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인사를 마친 나를 향해 가지고 있던 주장자로 한 대 때리는 것이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나는 ‘아야야’하며 아픈 소리를 내었다. 그런 나를 보고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이 아프냐.”
“스님께서 머리를 때리셨으니 머리가 아프지요.”
그러자 다시 한번 주장자가 머리로 날아왔다. 머리를 감싸 쥐고 아파서 소리치는 내게 스님께선 또 물으셨다.
“아픈 놈이 무엇인고.”
같이 둘러 앉아 있던 대중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며 물러나오던 나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주장자로 내리치고 똑같은 질문을 하시는가, 그에 대한 그러한 의문, 즉 내 평생의 화두가 그 날 그 시각부터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께 인사를 드린 첫날을 스님께서 주석하고 있던 정혜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날 밤 스님께서 불러 가 보니, 좌복에 단정히 앉으셨다가 나를 바라보시고는 진지하게 다시 묻는 것이었다.
“아까 내가 주장자로 때렸을 때 어디가 아팠는가.”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 아까 보니 네가 머리를 맞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던데 그러면 소리를 지른 것은 머리였는가.”
“아닙니다. 입이었습니다.”
“그럼, 이상한 일이구나. 아픈 곳은 머리인데 어째서 소리를 지른 것은 입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맞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은 입을 시켜서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게 한 놈이 과연 어떤 놈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그것은 어린 소년에겐 단박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스님 방을 물러나오면서 깜깜한 어둠 속 절 앞마당에서 나는 다짐했다. 그래, 내 그것을 알아보리라. 알아 맞추면 스님께선 상으로 맛있는 과일을 내린다고 하셨지만, 그 날 밤 내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님께서 내린 수수세끼를 어서 풀어 스님 앞에 가서 정답을 말하고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날 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며 그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알 길이 없었고, 며칠 동안 밥을 먹는 등 마는 둥,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으나 쉬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가 타서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스님께선, 주장자로 머리를 한 대씩 내리치셨다. ‘아이쿠 아야야’하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스님께선 영락없이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바로 그 놈을 찾아라. 아프다고 소리치는 그 놈이 무엇인지 어서 부지런히 찾아보아라.”
정말 모든 생각을 다 동원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왜 머리통을 맞았는데 입이 아프다고 했을까, 그 놈이 무엇일까. 부엌에서 군불을 지필 때도 그 생각, 법당을 청소할 때도 그 생각, 밥을 먹을 때도 그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스님께선 나를 볼 때마다
주장자로 내 머리를 한 대씩 탁탁 내리치며, 패고프면 배고프다고 아우성 치는 그 놈, 집에 두고 온 어머니가 보고 싶은 그 놈, 그 놈이 무엇인지 애쓰게 하는 그 놈을 찾아보아라 하셨다.
절에 와 있으면 흔히 하는 염불 한번 해 보지 않았고, 불경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해 보지 못했으니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도무지 깜깜한 내게 스님께선 ‘자기 성품’을 바로 보게 하는 공부를 바로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너무나 답답해 울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스님께서 그 마음을 아셨는지 어느 날 불러 앉히고는 말씀하셨다.
“네가 찾고 있는 그놈이 어떤 놈인지 제대로 알아야 그 놈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 똑똑히 일아 볼테냐.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으면 그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나는 그놈이 어떤 놈인지 기어이 알아야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해 들은 스님께선 이 절에 살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르셨으니, 그날 밤 정식으로 행자가 된 것이었다. 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공양간에 나아가 밥을 하고 찬을 만들며, 스님의 잔심부름으로 이곳 저곳을 오가는 사이 덕숭산 자락이 푸름으로 덮이는가 싶더니 온 산이 붉으레 붉으레 물들며 세월이 흐르는 사이, 나는 여전히 ‘그 놈’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 부르셨다.
“네가 요즘 걸으면서도, 일하면서도 중얼중얼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래 아프다고 하는 그 놈을 찾았느냐?”
배고프면 밥 먹으라고 하는 그 놈, 맞으면 아프다고 하는 그 놈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즈음이었다. 나는 당장 날아올 스님의 주장자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놈은 바로 ‘마음’인 것 같다고. 그러자 스님께선 ‘그 마음이라고 하는 놈은 도대체 어디 있더냐’고 물으셨다.
그것이 문제였다. 분명히 있기는 한데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주장자가 어깨 위로 떨어지고, 한참 너털웃음을 짓던 스님께서 웃음을 거두시더니, ‘서른 살 먹은 중보다 네가 공부를 잘했구나’하시는 것이었다. 스님도 나도 한껏 기분이 좋았던 그날, 스님과 오붓이 앉아 차를 달여 마셨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다.
내 본디 성품 또한 지난 일들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마는 터인데다가 몇 해 전 크게 앓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고 기력도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많은 은혜를 입었던 스승 만공스님과의 첫 만남과 일곱해를 모시고 살았던 행자시절이 또렷이 기억 나는걸 보면 내 수행의 나날 중에서의 그 시절이 유난히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좋은 스승을 만나 넉넉한 도량에서 공부하는 것만큼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수행자에게 있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