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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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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성동 1987년 04월 62호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특별히 발달하게 된 것이 손이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기 위하여 사용되던 손이 나무의 열매를 따거나 풀뿌리를 뽑고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역할과 다른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관으로 발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자연물을 그냥 얻기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움직여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른바 노동으로서. 노동은 이처럼 인류의 생활과 그 출발을 함께 하고 있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가 된다.
원시 시대의 인류는 화산의 폭발이나 산불 등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 관찰해 오면서 불의 유용함을 알게 되었다. 날것으로 먹던 고기를 불에 익혀서 먹는 것이 더 맛있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불이 또 추위와 짐승의 습격을 막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불은 인류의 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되기에 이르렀다.
불이 출현함으로써 인류의 생활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는 바,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짓는 커다란 경계선이 되었다. 나무뿌리·열매·풀·작은 짐승·물고기·곤충 따위를 단순히 손으로 채집하여 생존을 영위하던 인류는 방어 및 경제 수단으로 불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채집은 여자와 늙은이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일이 되었고 사냥이 기본적인 생활수단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분업이 발생하게 되는 바, 육체적 조건이 조금 나은 남자가 사냥을 하고 여자는 그것들을 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원시 시대로부터 수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냥을 주된 생활 수단으로 하는 인류의 획득 경제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농업과 목축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게 되는 생산 경제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가축의 사육과 소규모의 가내 공업을 하는 정착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단순한 채집 경제 및 획득 경제에서 농업과 목축 그리고 가내 공업으로 노동이 분화되면서 인류의 생활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혈연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원시 및 씨족사회에서는 지배와 예속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기구와 각종 연장이 발달하여 생산력이 높아지면서부터 씨족간의 유대는 흔들리게 되었다.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생산물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을 넘어서, 노동력을 적게 들이거나 아니면 전혀 들이지 않고도 계속해서 질 좋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졌다. 착취와 축적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많이 소유한 자와 적게 소유한 자 그리고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가 생기게 된다. 이른바 계급의 발생이다.
이처럼 노동의 집약과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게 됨으로써 노동력이 높은 남자가 가족 안에서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남녀간의 위치가 뒤바뀌게 된 것은 이처럼 노동이 분화되고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전쟁에서 이긴 부족은 상대편의 부족을 노예로 거느리게 되었고 그 노예의 집약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력에 의하여 생산력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잉여 생산물은 처음에는 부족의 우두머리되는 사람 곧 특정한 가족의 소유물로 독점되었다. 이른바 사유 재산이 출현한 것이다.
채집 경제 및 획득 경제의 시대에는 남녀가 함께 나무 뿌리·열매·풀·작은 짐승·물고기·곤충 따위를 거두어 들여왔고 여자는 그것들을 잘 갈무리하여 가족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맡았으므로 가족 안에서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다른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암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원시 시대의 인류에게는 부모와 지식의 관계는 거의가 모자 관계 뿐이었고 아버지리는 존재는 분명하지 않거나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원시 시대의 사회는 여자가 중심이 되는 모계 사회 또는 모권 사회가 된다.
그러다가 힘이 약한 들짐승과 순한 새를 울안에 가두어 가축으로 길들이고, 일정한 곳에 머물러 농업과 목축 그리고 가내 공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여자는 점점 지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단순히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음식물을 조리하는 처지가 되었다. 남자에게 종속된 것이다. 남자는 전쟁에 나가서 힘이 약한 부족의 생산물을 빼앗고 노예를 거느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여자와 아이를 거느리게 된다. 그리고 이른바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여자의 위축과 굴종과 타락은 점점 그 도를 더해가게 되었다. 옛날부터 허리가 가늘고 발이 작으며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꽃과 같은 여자를 미인이라고 하여 첫째로 꼽는 것이 다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말해지고 있는 이른바 미인의 기준 또한 지극히 일방적인 남자중심의 팟쇼적 편견으로 된 것이다. 인간 불평등의 시작인 것이다. 아직도 모든 종교 인구에서 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 다수인 현상 또한 초월적인 절대의 존재에게 스스로를 의탁하여 잃어버린 옛날의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무의식적 염원의 발로에 다름아닌 것이다.
인류의 꿈인 평등의 질서가 깨지는 것은 이처럼 사유 재산의 출현과 계급의 발생을 그 뿌리로 하고 있다. 일차적인 의식주의 해결을 위한 채집 및 획득 경제에서 농업과 목축이 나뉘게 되고, 농업에서 수공업이 나뉘며, 수공업은 다시 상업으로 나뉘며 이로부터 해상무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단순히 먹이를 놓고 다투던 씨족간의 복수 행위로부터 비롯된 전쟁은 잉여 생산물의 획득과 축적을 목적으로 한 영토의 확대로 그 개념이 바뀌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이른바 국가가 발생하는데, 국가라는 것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작용에 다름아닌 것이다. 날카로운 계급 모순의 정치적 결과로 된 것이다.
원시 시대의 인류는 주변의 모든 자연계와 그 자연계로부터 일어나는 현상에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주술 곧 신비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인간에게 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탄생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에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낳았고 주술 행위는 따라서 보다 나은 생활조건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종교이며 종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인간 염원의 총화로 되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과 투쟁하면서 자연의 성질을 이해하여 그것을 이용하면서 마침내는 자연을 지배하고자 한다. 따라서 인간의 생산 양식과 생산 관계가 변혁되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서 종교의 형태와 내용 또한 바뀌어지기 마련이다. 종교의 최초의 형태는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상의 영혼이 가족을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현실적 욕구의 반영인 것이다. 가족이 모여서 씨족이 되며, 씨족은 또 부족으로, 그리고 이해를 같이하는 부족과 부족이 모여 국가를 이루게 되는 바, 이해를 같이하는 계급의 현실적 이익과 관련하여 여러 형태의 신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신이 나중에는 가장 강력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하나의 신으로 통합되고 그 신은 마침내 삼라만상의 창조자로서 인간 위에 군림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그 신과 인간을 매개하여 주는 중간 역할자로서 승려가 나타나고, 승려는 특권 계급 이익의 대변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로 다른 이해 집단인 계급과 계급을 통합하여 기득권 계층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영속화하기 위하여 출현된 종교는 하나같이 내세의 행복을 강조하여 주장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의 행복 추구는 부질없고 속되며 또 무가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평등이 깨어지고 자유가 억압되어 모순과 불의로 가득찬 현실을 비판·혁신할 생각을 하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내세의 복락을 누리라고 달랜다. 한마디로 민중의 창조적인 기능과 혁명적인 역량을 억눌러서 피동적인 인간형으로 길들이고자하는 것이다.
일찌기 독일의 한 실천 철학자는 종교는 민중의 환상적 행복이고 억압된 활동물 곧 생명체의 탄식이므로 민중의 아편이 된다고 말한바 있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서, 그리고 경제적 착취를 확대·강화하고 보충하며 아울러 합법화시키는 도구로서 지배 계급에 의하여 보호·육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피지배 계급과 연합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된 부르조아 계급은 기성의 종교와 손을 잡는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모순들을 초자연적인 종교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혁명 계급의 무신론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성의 체제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착취와 억압을 새로운 형태의 것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무신론을 지키는 것은 무계급의 평등 사회 도래를 굳게 믿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밖에는 없게 된다. 종교의 비판이야말로 모든 비판의 전제가 된다는 주장은 그러므로 종교의 신비를 벗기는 것이야말로 인간해방의 열쇠라는 말에 다름아닌 것이다.
이처럼 지배 계급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 통합의 기능으로서 나라나게 된 것이 거대한 궁전과 신전 또는 사찰과 같은 종교의 건축물이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노예와 일반 기층 민중들을 쇠고랑과 족쇄를 채우고도 모자라서 가느다란 쇠줄로 묶어 놓고 무장 군인들이 채찍을 갈겨 일을 시켰던 것인데, 그것은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 통합의 상징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왕이나 황제의 궁전과 신전 또는 종교의 거대한 건축물들은 이처럼 기층 민중들의 가혹한 세금 수탈과 피와 땀과 눈물과 그리고 한맺힌 목숨들의 축적인 것이다. 솔로몬이 유대 민족의 유일신인 야훼를 모시기 위한 거대한 신전과 궁전을 지었던 것은 지배자들이 종교의 이름 아래 민중들을 얼마나 착취하고 억압했던가를 알려 주는 대표적인 본보기가 된다. 이집트의 피라밋과 유럽 사람들이 자랑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 건물 또한 마찬가지임은 물론이다.
인간과 자연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창조되지 않았다. 물질과 운동은 영원하며, 진정으로 종교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해방에의 열쇠가 되는 까닭이 진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