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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영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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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1년 12월 118호
여래수량품 如來壽量品


부처님의 수명에 얽힌 비밀
앞의 종지용출품에서는 무수한 보살들이 땅에서 솟아나와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고, 이들 모두가 기실은 성도뒤에 교화하신 부처님의 제자임이 밝혀짐에 따라 놀라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성도하신 지 사십여 년 만에 이리도 엄청난 대보살들을 교화하셨다는 것은 아버지는 젊고 아들은 늙은 꼴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도 당연했는바 과연 이에 대해 무어라하실 것인가
부처님도 문제의 중대성을 의식하신 듯 ‘여래의 참다운 말 믿어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으니 이제부터 털어놓으시는 것이 원체 엄청난 비밀이라 큰 신심 아니고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기심이겠다.
\"너희는 여래의 비밀스런 신통의 힘에 대해 똑똑히 듣거라. 온갖 세간의 천인, 사람, 아수라 모두 이르되, 지금의 부처님은 석가족의 궁정에서 가만히 나와 가야성 멀잖은 도량에 앉으샤. 아녹다램막삼보리 얻음이라 하나니. 그러나 선남자야. 내가 실로 성불한지는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 지났니라.\"
종지용출품에서 일으켰던 의문을 풀어 주기는커녕 더욱 배가 시키는 말씀이시다. 그렇게나 수명이 오래 되셨다면 땅으로부터 솟아나온 보살들이 다 부처님에 의해 교회된 제자라는 것도 일단 합리화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에 앞서서 자기들이 늘 돼서 잘 알고 있는 부처님이 기실은 무량겁 전에 성도하신 부처님이라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부처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비유컨대 오백만억 나유타 이승지 삼천대천 세계를, 설사사람 있음에 부수어 작은 티끌 하나 떨구고, 동방오백천만억 아승지의 세계를 지나 티끌 하나 떨구고, 이리하여 동으로 자꾸 가서 이 티끌 다한다면, 선냥자들아 생각에 어떠하뇨 이 모든 세계들을 생각하고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
헤일 수 없다는 답이 미륵을 비롯한 보살들로부터 나왔을 것은 당연하다.
\"선남자들아 이제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리니 이 여러 세계, 작은 티끌이 밟거나 묻지 않았거나 그모두 티끌 만들어 티끌 하나를 한 겹으로 친다 해도 내 성불한지가 다시 이에 더함은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겁이니라.\"
이를 정리하면, 먼저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삼천대천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다음에 오백만억 나유타 승지의 세계를 지날 때마다 그 티끌 하나씩을 떨군 다음에 그동안 지나온 모든 세계를 다시 티끌을 만들고, 그렇게하여 티끌 하나를 한 겹으로 친다 해도 부처님의 성불하신 지는 이보다도 백천반억 나유타 아승지겁은 더 되었다는 취지이시다. 거기에다가 남은 수명은 위에 든 것보다 곱은 더 된다는 말씀이 추가되었으니, 그저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는 무엇을 이름인가


법 法과 부처님
위의 말씀에 대해 결국은 석가여래의 수명에 한계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고 해석한 이도 있다. 아무리 무량겁 이라 해도 무한에서 볼 때는 한계 있음이 된다고 본 것이겠으나, 이는 단지 언어로 표현하시려니까 \'무량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간과한 데에서 오는 결과이며 부처님은 다시 \'\'영구불멸하노니\' 라고도 하시고 \'멸도함이 아니면서\'라고도 명언하고 계신 터이므로, 앞으로 말씀도 부처님 수명의 영원하심을 나타낸 것이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불타관을 둘러싼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은 불교가 표방해 온 진리 가운데에 하나여서, 사겁四劫의 사상이 말해 주듯이 우주조차도 생주이멸生住異滅로부터는 예외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열반에 드실 날이 올 것은 당연하고, 또 그럿은 사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법화경이 설해지던 당시로 환원시켜 생각한다 해도, 그들이 대하고 있은 것은 분명히 노쇠의 상을 보이시는 부처님이었을 것이므로 그분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은 누구에게나 예상되는 일이었을 것이며, 또 부처님 자신도 자신의 열반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것임을 자주 언급하고 계셨던 터이므로, 어느 누구도 부처님을 영원하신 존재로 받들였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무상 속에 계심이 분명한 터에, 돌연히 영원하심을 주장한 근거는 무엇인가.
\"여래 여실히 삼계三界의 상相이 나고 죽거나 스러지고 생기거나 함이 없으며, 진실 아니고 거짓 아니며,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고 알아, 중생의 삼계 보는 것과는 다른 탓이니라.\"
곧 부처님의 눈에 비친 것은 생사, 유무, 진위眞僞, 동이同異 따위의 대립이 온통 사라진 진여와 실상의 세계여서 중생이 보는 차별의 세계와는 크게 달랐으니, 부처님이 영원하실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는 말씀이시다. 결국 절대 진리인 법에 영원서의 비밀이 숨어 있은 것이 된다.
법이란 본래부터 그렇게 존재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존재할 진리이다. 그것은 절대 자체이므로 본래부터 존재하거나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거나 말할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시간의 범주를 초월한 존재이며, 존재한다는 말조차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공간의 범주에서도 진작 벗어나 있는, 존재도 아닌 존재이다. 따라서 그것이 영원의 존재일 것은 자명하니, 영원은 수효가 극히 많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수의 범주를 넘어서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같은 법과 완전히 일체가 되신 것이 부처님이라 할 때, 부처님의 영원하심이 밝혀지기에 이른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계시는 부처님의 생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생사를 겪으시는 몸은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부처님의 변화신變化身에 지나지 않고, 형상이 없는 절대적인 법이야말로 부처님이셨던 것이니, 유독 석가여래만이 그러신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이 그러하신 것이며, 부처님들만이 그러신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일체중생이 그러한 것이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처님들의 본신을 문제삼고 있을 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래 면목과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이 중요하다.

의사와 아들의 비유
만약 부처님이 그렇게 영원하시다면, 왜 우리 곁에 언제까지나 살아 계시지 않는 것이냐고 원망할 수도 있는 일이겠다. 물론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법신 자체를 보일 길은 없으시겠고, 변화신을 나타내시는 바에는 생사가 따르실 것도 당연하긴 하나,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수명을 오래 유지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에게는 이런 요청도 들어주지 못할 사정이 있다 하여 설하신 것이 다음과 같은 비유이다.
한 명의가 여행을 떠나 집을 비우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여러 아들은 독약을 잘못 먹고 고통을 못이겨 땅에 구르는데, 마침 집에 돌아온 명의는 이를 발견하자 곧 약을 조제하여 그들에게 주면서 말한다.
\"이 매우 좋은 약이 빛과 향과 좋은 맛을 다 갖추었도다. 너희는 먹을지나. 빨리 고통을 덜어 다시는 여러 근심이 없도록 해 주리라.\"
이리하여 독약을 마시고도 실성까지는 이르지 않은 아들들은 그 약을 먹고 곧 회복되었지만, 실성한 자식들은 끝내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이에 딱하게 여긴 명의는 방편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들에게 자기가 죽을 때가 되었음을 말하고 타국에 가서, 사람을 보내 자신의 죽음을 알리게 한다.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큰 충격일 수밖에 없고, 이어서 실성했던 아들들도 정신이 들어 아버지가 주고 간 약을 먹어 모두 건강을 되찾으니, 그때서야 아버지는 돌아와 자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명의를 부처님의 비유라 하면 아들들은 중생을 가리킴이 된다. 그리하여 독약을 먹듯 그릇된 견해를 받아들인 중생들은 그것 때문에 생사의 고에 떨어지니, 이들을 구하기 위해 베푸신 것이 법화경의 일불승의 약이다. 그런데 근기가 열등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많기에 부처님은 열반에 드심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을 일깨우려는 방편임을 밝히신 것이므로, 열반이 부처님의 영원성에 손상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