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날이 밝으면 가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스님의 약속을 믿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산사에서의 아침공양은 이른 새벽이어서 공양을 마친 뒤에 곧장 길을 나서려고 하였으나 이슬이나 마른 후에 떠나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해가 높이 뜨기를 기다렸다.
스님이 가르쳐준 길은 용문사의 앞 고개를 너머 내동을 지나 시목실에서 다시 높직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선동仙洞마을에 다다르게 되는데 여기도 같은 용문면이므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선동마을을 찾아가는데 토끼길 만큼이나 좁은 길이 있다없다 하여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여름철이라 숲이 울창하여 길을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노출된 양쪽 팔은 잡초목에 쓸려서 따가웠다. 게다가 모기 등의 날벌레에 쏘여서 선동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온 몸이 쓰리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심하게 아팠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반드시 긴 팔 옷을 입게 되었다.
선동마을에 이르러 스님이 이야기해준 석탑과 석불을 찾고 있는데 밭에서 일하는 노부부의 말이 ‘저만치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가면 새로 세운 절이 있는데 아마도 그 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길래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 절을 찾았다.
역시 근년에 세운 새로운 절이었다. 법당 앞에 나지막한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 서 있었다. 초층탑신석에는 문비가 음각되었고 각층마다 우주가 각출되었으며 옥개받침은 4단씩이었다. 석불은 법당 안에 봉안되어 있는 듯 눈에 뜨이지 않았다. 스님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법당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문틈으로 법당을 들여다보니 어두움 속에 석불 2구가 안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예천 읍내로 돌아와 하루를 지냈다. 이튿날 예천군 교육과장 김정식金正植 선생을 찾아 저간의 어려웠던 사정을 말하였다. 선뜻 도와 줄 의향을 보이길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서 기다렸다.
김과장께서는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그 절은 요즘 새로 법당만을 지어 놓았을 뿐 교화활동을 하지 않아 신도도 없고 스님도 기거하지 않으니 자기가 직접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차량까지 동원해 주었다.
선동마을 어구까지 편하게 차를 타고 와 불과 1㎞정도를 걸으니 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절 이름은 청룡사靑龍寺라고 하였다. 예부터 이 곳에 청룡사가 있었다고 구전한 것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여전히 법당 앞쪽 문들은 잠겨 있었다. 김과장은 옆문 한 곳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그 곳을 통하여 법당으로 들어가 앞문을 열어 주었다. 법당 안이 환해졌다. 가운데 석불좌상 1구, 그 옆에 또 하나의 석불좌상 1구가 안치되어 있어 한 곳에서 두 분의 부처님을 조사할 수 있었다.
현재 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부처님은 광배와 대좌를 갖춘 완전한 형태이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여래상으로서 나발의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공白毫孔이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둘러졌다. 두 눈과 코, 입 등이 정제되어 원만한 상호인데 양쪽 귀에 약간의 파손이 있어 유감스럽다.
통견한 법의는 양팔에 걸쳐 무릎을 덮었고 가슴에는 군의裙衣의 매듭이 보이는데 유려한 수법이 주목된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고 뒷면에는 광배를 부착시켰던 둥근 구멍이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하대석은 하단 8각 측면에 각각 1구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고 그 안에 화문이 양각되었다. 1석의 하단을 놓고 그 위에 8판의 복련伏蓮 대석을 얹었는데 상면에는 크고 작은 여러 층의 괴임을 각출하고 그 위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도 8각인데 모두 우주隅柱가 표현되었으며 각 면은 연화 위에 여래상과 보살상이 양각되었다. 상대석은 하면에 2단의 각형받침이 있으며 앙련仰蓮도 판내를 화문으로 조식하였다.
광배는 주형舟形으로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는데 주연周緣에는 웅대하고 화려한 화염문이 있으며 두광 주변에는 판내에 조식이 있는 8판의 단련單蓮이 둘러져 있고 간지間地에는 보상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두광에는 2조선을 내려 신광을 구별하였는데 그 곳에도 보상화문을 조식하였다.
좌상의 단아함과 유려한 의문, 풍만한 연판 등 각부의 수법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좌상의 높이 93.5㎝, 대좌높이 67.3㎝, 광배높이 150㎝의 규모인데, 이후 이 좌상은 청룡사석조여래좌상靑龍寺石造如來坐像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424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또 하나의 석불좌상은 현재 대좌만을 구비하고 있으나 좌상의 뒷면에 광배가 부착되었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배는 결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원만한 상호와 의문의 표현수법, 대좌와 연판 등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되며 그 당시의 조성으로는 수작에 속한다고 하겠다. 좌상높이 111㎝, 대좌높이 96.7㎝의 규모인데, 이후 이 좌상은 청룡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龍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425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