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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불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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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향적 1987년 04월 62호
긴 동면에 움츠려 있던 산사 주위의 숲과 계곡에서 소리없는 봄의 소리가 들릴라치면, 산사는 산사대로 도심의 절들은 그들 나름대로 여러가지 불사(佛事)들을 시작하느라 분주해진다. 그러나 봄의 희망찬 기운만큼 절에서 하는 불사는 희망찬 내용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현재 한국의 불교사원에서 하고 있는 불사란 법당과 요사를 복원-신축하는 것, 탑을 쌓거나 범종을 주도하는 것, 물고기 방생이란 미명 하에 보살들의 스트레스 해소(달리는 버스 속에서의 고성방가와 춤)와 나들이를 합리화시켜 주는 정도일 뿐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굶주리고 앓고 있는 이웃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보낼 줄 모르면서 자신들의 기복을 위한 기도나 행사에는 극성스러워지도록 만드는 절의 풍토가 안타깝다. 이맘때가 되어 음력 삼월이면 해인사를 비롯하여 몇몇 절에서 “대장경 정대불사”를 한다. 그런데 역사적인 자료와 사상적인 근거도 없는 절에서 정대불사를 흉내내는 것도 문제가 있거니와, 또 정대불사의 역사적인 의의와 사상적인 의미를 동참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그냥 한판의 굿으로 끝내는 행사는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더구나 막대한 예산과 많은 인원을(그것도 노보살들 중심으로) 동원한 행사라면, 그 규모나 내용에서 진정 이 시대의 문화와 연결되도록 기획과 연출을 새롭게 해야 뜻있는 불사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십년 전에 하던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계속 반복하여 동참자들에게 권태로움만 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불사들이 진정한 불사인지를 한번쯤 자문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왜냐면 오늘날의 사회인들에게 불사는 그 원 뜻을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화 이후로 우리 종단이 가람의 복원만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했던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화 이후 거의 40여년 동안의 불사 복원으로 많은 사원들이 이제 웬만큼 가람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본다. 앞으로의 불사는 외형적 치장보다는 이땅의 이 시대에 필요한 불사가 되어야 할 젓이다.
실제로 불사는 그 시대의 역사에서 소외받고 있는 민중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 수행자들의 주관에만 따른 절대치의 불사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궁핍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종교적인 것이라서 건물을 크게 축조하고 호화스럽게 꾸미는 것은 다 소비문화일 따름이다. 또한 원력이 지나친 주지나 비위살 좋은 화주 보살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불사에 동참하는 그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따르는 것만도 아닐 터이다. 신도들이 정성으로 낸 사주금으로 문화재는 문화재답게 복원하고 가람은 가람대로 조화를 이루고 또 수행과 교화에 필요한 건물이 지어진다면 명분이 서는 일일것이다. 그러나 주지의 소영웅주의적 명예심에 의하여 자기가 주지로 있는 동안에 무엇인가 한가지 남기겠다는 생각에서 불사를 한다면 시주한 단월의 보람이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오히려 절을 더 망치는 결과만을 낳게 된다. 절마다 짓고 있는 법당이나 요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절은 정말로 가람의 조화에 맞게 그리고 수행하는 장소로서 아주 실용성 있게 지어져 단월은 물론이고 참배객들에게 절로 신심이 우러나게 하는 절도 있다.
사원의 건물은 그 시대의 문화에 걸맞게 그리고 그곳에 사는 대중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지어져야지, 무조건 크게만 지으면 좋다는 사고방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말 수행자답지 못한, 속물들을 흉내내는 일에 불과한 것이며, 그러한 일은 종교가 세속주의에 편승한 일종의 컴플렉스 현상이 아닌가 한다.
어디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물질의 축적과 부피에 그 기준을 두고 있었던가! 우리는 그저 신도들한테만 유한한 물질에 대한 집착과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어의 모순의 연출은 큰 스님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지금 한국 불교가 어디 절이 부족하여 수행하지 못하고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는 “무소유 고행”으로써 수행만 잘 하면 된다. 수행자들이 가람 복원 불사에 신경쓰지 않는다 해도 수행자의 도가 높으면 자연적으로 신도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스님을 잘 모시려고 가람을 세우고 수호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불사는 수행과 교육(경학 연구)의 풍토가 조성되도록 제도를 개혁하고 추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불사의 모순점을 과감하게 개혁하지 않는다면 한국 불교는 불사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인간을 괴롭히는 사이비 종교로서 이땅의 역사에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진정한 불사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들이 인간과 세계의 존재실상을 여실히 알고 살도록 깨우쳐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