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법장法藏 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이연정
2001년 07월 233호
춘원 이광수가 불교에 심취해 법화경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운허 스님(춘원과 육촌지간)은 이를 걱정하고 만류했다. 이유는 그이가 문장의 대가일지는 몰라도 불교에 대한 식견은 번역을 할 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명성과 문체로 인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걱정하셨다.
운허 스님의 우려를 이해해서인지는 몰라도 결국 춘원은 경전번역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안타까워하던 어떤 스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춘원의 불교에 대한 앎은 일천했을지 모르나 그는 법화경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비록 의미를 통달하지 못했더라도 그의 유려한 문장이 심오하고 아름다운 시어인 부처님 말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점이 참으로 궁금하고 한편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불교학자들이나 스님들은 경전번역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여겨왔다.
뜻글자인 한문을 빌려 옮겨진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다시 옮긴다는 것은, 양자에 모두 능통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줍잖게 하면 뜻을 전도해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씀이다.
그 뜻 이해 못할 것은 없지만 한문과는 거리가 있는 한글세대들에게 한자공부를 시켜 불경을 이해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자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스승도 사실은 흔치 않다. 한자는 생활과 점차 멀어짐과 동시에 가르쳐줄 이 역시 점차 사라지고….
어쨌든 백년하청이 되지 않을까 싶던 한글대장경이 드디어 완간됐다는 소식이 얼마 전 불교계를 들썩였다. ’62년 발기해 ’65년 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37년 만의 일이고, 불교가 이 땅에 전파된 지 1600여 년 만의 일이다.
아직 보완해야 할 것이 해온 것보다 더 많다고는 하지만 이제 비로소 우리말 대장경의 역사를 헤아릴 수 있게 된 것만도 어디인가? 대장경의 한글화에 드러나지 않은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법장 스님이다. 본인은 번역 프리랜서에 불과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월운 스님의 몇 안 되는 전강 제자 (전강법호는 정봉鼎峰이다.) 로 또한 경전번역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스님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법장 스님이 역경원 대장경의 한글화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屠5년부터였는데, 지난해 백양사에서 학인들을 가르치는 강사를 맡으면서 일이 줄긴 했지만, 지난 6년 동안 법장 스님은 꼬박 경전번역에 매달렸다.
스님을 찾은 것은 318권에 이르는 한글대장경이 완간될 무렵이었다. 동국역경원의 경전번역 일에 가세하면서 밤이고 낮이고 원고뭉치를 항상 앞에 두고 있었던 스님이지만, 이제 한글대장경도 마무리되었으니 좀 한가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스님은 여전히 스탠드 불빛 아래서 원고뭉치와 씨름하고 있었다.
스님은 늘 바쁘다.
“끝이요? 이제 시작이지요.
일단 수정 보완작업이 앞으로 10년을 잡고 진행중입니다.
재작업을 하는 거죠. 문맥이나 언어의 통일 등 아무리 한다고 해도 실수가 있기 마련이니까.
다시 시작해야지요.” 한글대장경이 완간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은 태산이다.
수정 보완작업도 해야 하지만 전산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시급하다.
고려대장경 전산화가 마무리돼 15장의 CD에 담겨졌을 때, 불자들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한글대장경도 함께 전산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미처 한글대장경이 완성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완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목록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용어의 통일도 안 된 상태라 전산화를 통해 검색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거쳐야 할 많은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산화된다고 해도 한꺼번에 나오기보다는 시리즈로 CD가 하나씩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그 일도 일단 한글대장경이 수정·보완되고 용어의 통일 등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그 이후가 되겠지요.” 무슨 공부든 마찬가지지만 역경 역시 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이다.
한자漢字 한 글자의 처리를 놓고 한 시간 이상을 고민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역경작업이 제대로 되려면 최소한 세 단계는 거쳐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1세대, 2세대, 3세대로 표현하렵니다. 1세대가 불경에 해박하신 나이 드신 어른 스님들이라면, 우리 같은 이들은(스님은 세수 46세, 법랍 30년이다.) 2세대라 치고, 그 다음이 3세대라 할 것입니다.
먼저 3세대가 봐서 모르는 것 빨간 줄 치면, 2세대인 우리가 보고 수정하고 그래도 모르면 1세대에서 수정하고, 그 때도 모르면 물음표로 놔두고 그렇게 해야 이상적이에요.” 그러나 지금의 한글대장경은 그런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단다.
그러려면 계획하고 있는 10년 갖고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항상 재정과 인재다.
법장 스님은 그 중요한 인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글대장경의 《대승비분다리경大乘悲芬陀利經》,《불공견삭신변진언경 不空索神變眞言經》,《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紀》,《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 大方廣佛華嚴經修慈分》,《불모대공작명왕경 佛母大孔雀明王經》 등은 스님의 작품이다.
뿐인가, 4·6판 크기 600여 쪽의 《조당집주해祖堂集註解》 (역경원 간) 1권에 이어 앞으로 3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학인들은 방학이 있지만 스님은 방학이 없다. 그 틈에 또 스님은 강사노릇 하느라 밀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랴 번역하랴 스님은 쉴 틈이 없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남들은 철인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스님은 건강한 편은 못 된다. 언제나 그렇게 골골하고 그래서 군대도 방위로 갔다 왔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스님이 늘 하는 일은 경전번역.
다행히도 스님은 일찍부터 한문에 관심이 있었다.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했으니 보통사람들보다 불경을 먼저 대할 수 있었던 점도 있겠으나 유달리 한문공부를 좋아했다.
그래서 강원에 들어가서도 윗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윗반을 제끼고 치문 중강을 했단다. 지금부터 19년 전 얘기다.
그 때부터 막연히 교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월운 스님께 가르침을 받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우연히도 그게 현실로 다가왔다.
‘뜻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有志者 事竟成)’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한문을 좀더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민족문화추진위원회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전통경전을 현대학문과 접목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대강백 무비 스님 밑에서도 수학했다. 그 때 안목있는 좋은 도반들을 많이 만났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디 가서 훈장질이라도 하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겠다며 웃음 짓는다.
그런데 요즘 강원 학인들의 평균 연령이 30세를 넘는다.
따라서 지식과 학력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불경을 볼 수 있는 한문실력은 형편없다는 점이 어른 스님들의 걱정이다.
그러나 시류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
법장 스님은 강원교재도 근기에 맞게 다양해져야 한다고 본다.
“요즘은 나이 들어 출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한문실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각자 근기에 맞게 능력껏 볼 수 있도록 교재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학은 한마디로 지도와 같습니다.
지도가 있으면 가기가 쉽죠.
나는 출가자는 무엇보다 교학을 완벽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에 기도를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해야지, 이것이 정립이 안 되면 나중에 부처님의 연기법에서 벗어나는 사도邪道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불교의 모습을 했으면서도 불교가 아닌 게 많거든요. 우리도 지금 비불교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요.
화엄사상에서 보면 ‘비불교가 불교고, 불교가 비불교다’라고 하지만, 분명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고, 돌은 돌이고, 나무는 나무거든요.
그러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지.
무아無我사상에 입각해서.
그런 것들을 정립하지 않고 한 큐에 끝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 한 큐에 끝내지나요.” 여섯 살 이전까지만 해도 스님은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총명했다.
그런데 여섯 살 때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집에 가는 길에 뭔가 시커먼 것이 덤벼들더란다.
그 때 놀라면서 총명한 기운이 사라지고 병이 생겼다.
사람이 너무 놀래도 병이 생긴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물은 위로 오르고 불은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열이 위로 올라오면 찬 기운이 밑으로 내려와 버리니 거꾸로 돼버리는 것이다.
중학교에 가면서 스님들을 보면 괜시리 좋았다. 스님이 돼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중학을 졸업하고 바로 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하얀 도포 입은 할아버지가 어서 집을 떠나라고 하는 꿈을 꾸었다. 내일 아침 오전 10시 30분까지 당장 떠나지 않으면 큰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너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더 할 일이 없으니 나하고 가자.’ 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빌었다.
할 일이 많다고. 그러면 집을 떠나라고 해 집을 떠났다.
아마 그 때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려서 허깨비를 보고 놀랜 것도 그렇고 지금 찬찬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부처님께서 이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같아요.” 법장 스님은 30년 넘게 절집에 있었지만 조그만 절 주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굳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하지 않으려고 애써본 적도 없다.
그냥 그런 일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럼에도 늘 바쁘게 살아왔다.
글자와 씨름하면서.
스님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받은 만큼 회향하는 일.
부처님께 너무도 많은 은혜를 입었고 그 분께 받은 만큼 회향하는 일이 남았다.
그 길은 학인들에게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일러주고 일반인들에게도 보다 쉽게 불교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리를 시대에 맞게 패러디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그 일을 할 참이다.
불가능할 지 모르지만 ‘수행자는 어떤 것을 이루어서 성취하는 것보다 갠지스강의 모래알을 셀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계속 헤아리는 것처럼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산사는 밤이 일찍 찾아든다.
학인들의 방 불이 일제히 꺼지고 주변이 어둠 속에 침잠해 들어갔지만 법장 스님 불빛은 꺼질 줄 모른다.
지금도 아마 불경과 씨름하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