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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게송산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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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해 - 반산 1999년 11월 213호
가을이 깊어지니 산색이 달라지고 있다. 봄 산은 산 아래에서 푸르러 오고 가을 산은 산 위에서부터 붉어져간다 했던가! 이제 날로 물들어 가는 가을 산길을 휘적휘적 걸으면 서 화엄의 게송과 만나보자.

먼저 서품인 세주묘엄품이다. 여기서는 화엄의 화장장엄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국토에서 운집한 대중이 법회를 열고 있다. 그 곳에서는 대표 선수들이 한 사람씩 장기자랑을 하듯 425개나 되는 많은 법문을 마치 지역의 토산품 전시장처럼 요즘 유행하는 ‘OO엑스포’처럼 설하고 있다.
‘해탈문 올림픽’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출전한 선수들은 보살, 비구, 거사, 주야신, 천왕, 건달바, 아수라 등 다양한 동생중同生衆과 이생중異生衆들이다. 저마다 자신의 수행 방법으로 터득한 경지를 ‘해탈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거나 읊조리거나 웅변하고 있다. 앞으로는 되도록 품의 순서대로 게송을 음미하려 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

세간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하셨네
그 때 묘염해妙焰海천왕이 부처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자재천 대중을 널리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했다.
부처님의 몸은 모든 대회大會에 두루 계시고 법계에 충만하사 다함이 없으시며 적멸하여 체성體性이 없이 취할 수 없건마는 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하셨네〔佛身普徧諸大會하며 充滿法界無窮盡하시니 寂滅無性不可取로대 寫救世間而出現이로다〕.
부처님의 몸은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계신데, 온갖 국토의 법회에 모두 좌정하신 것처럼 모든 중생이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청량소에서는, “무궁진無窮盡이란 첫째로 한없이 출현하심이 마치 높은 산에서 구름이 피어나는 것과 같고 둘째로 없어지지 않는 법이 마치 허공에 늘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또 다음으로 보현보살의 게송이 이어진다.
부처님이 장엄하신 넓고 큰 세계가 모든 먼지 수와 갈거늘 청정한 불자들이 그 곳에 가득하여 부사의하고 가장 미묘한 법을 비내리도다〔佛所莊嚴廣大刹이 等於一切微塵數어늘 淸爭佛子悉滿中하야 雨不思議最妙法이로다〕
청량소의 해석을 보면, “첫째 게송에서 앞부분은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내용이고, 뒷부분은 중생을 조복하는 내용이다. 불자에 세 가지가 있으니 남의 아들〔外子〕이니 말하지면 모든 범부가 능히 불사를 계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의붓아들〔庶子〕이니 말하지면 모든 이승二乘들이 여래의 대승법에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요, 진짜아들〔眞子〕이니 말하자면 대승보살이 큰 법의 기쁨에서 바르게 태어난 까닭이다. 여기서 ‘청정淸淨’ 이란 말은 셋째인 ‘진자 眞子’임을 밝혔다.”

이 모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보듯 모든 먼지 속에도 다 그러하나 부처님 몸은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서 모든 국토에 다 나타나셨네〔如於此會見佛坐하야 一切塵中悉如是하니 佛身無去亦無來호대 所有國土皆明現이로다〕.
화엄에서는 법계 장엄을 설명하면서 늘 한 국토나 법회광경을 자세히 설명하고는 무한한 확대를 통해 시방의 미진수 국토에 ‘모두 그러하다〔悉如是〕는 말로 표현한다. 그냥 미진수도 아니고 열 개의 미진수 불찰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不可說〕’
의 불국토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공양구에서 저절로 법문 설하시다
그러고는 보살의 위신력으로 인하여 온갖 공양 도구들에서 저절로 소리가 흘러나와 게송으로 법문을 설한다. 이른바 ‘상방광명常放光明하고 항출묘음恒出妙音’이다. 상방광명은 요즈음의 ‘영상설법’ 이요 항출 묘음은 ‘라디오 법문’이다.

비슷하지만 다음으로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제2의 게송을 보자.
무량한 세월 동안 수행이 가득 차서 보리수하에서 바른 깨달음 이루시고 중생 구제를 위해 널리 불신을 나투시어 하늘에 구름처럼 미래세까지 이어지누나!〔無量劫中修行滿하사 菩提樹下成正覺하시고 寫度衆生普現身하사 如雲充徧盡未來로다]
위에서 말환 것처럼 이는 공양구에서 저절로 소리가 나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청법하는 내용이다. 청랑소에는 말한다. “자비에 합치된 지혜〔卽悲之智]’ 가 충만함을 찬탄하는 광경이다.

부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는데
이는 큰스님의 화엄법문에서 자주 쓰이는 게송으로, 뛰어난 음정을 가진 보살〔勝音菩薩]이 불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부처님 거룩한 몸 온누리에 가득하사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투시니 인연 따라 감응하심이 모두에 두루하지만 항상 깨침의 자리에 계신다네〔佛身充滿於法界하사 普現一切衆生前하시니 隨緣赴感靡不周하사대 而恒處此菩提座로다〕
청량스님은 이 게송에 대해, “부처님의 입장에서 찬탄한 내용으로 ‘근본을 변하지 않고 두루 시현하시니 곧 십신十身이 원융하여 네 가지 법계에 가득하다〔不動本而周徧 則十身圓融 徧四法界〕’고 한다. 근본은 보리좌菩提座를, 시방에 두루 감은 지말技末을 말한다. 그래서 보리수에서 일어나지 않으시고도 위로 네 가지 하늘〔수미산, 야마천, 도솔천, 타화자재천〕에 오르셨고, ‘그 중생제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할 근본인 깨달음에 돌아가 있다〔不壞末而歸本〕’고 할 수 있다고 평하셨다.

어쨌든 이런 어려운 말보다는 평소 우리네 일상속에서 찾아보자.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잘하는 게 중요함을 알려 준 게송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존경받는 국왕이라 하더라도 집안의 가장으로 불행한 사람이 있고, 개인적으로 훌륭한 인재라 하더라도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여 남에게 괴로움을 준다거나, 사회적으로는 인정 받으면서도 산중에서 대중을 원만하게 통솔하지 못한다면 원융이나 안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으리라. 또 이 게송은 화엄시식華嚴施食 등의 의식 염불에 자주 쓰여서 매우 친근하다. 더욱이 ‘화엄의 불신관’을 보여준 대표적인 게송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음 게송을 보자.
부처님은 보리좌에 편안히 앉으사 한 터럭에 여러 국토를 시현하시고 그 터럭마다 모두 그리하사 이처럼 법계에 두루하도다〔如來安處菩提座하사 一毛示現多刹海하시며 一一毛現悉亦然하사 如是普周於法界로다〕.
이 게송은 작은 것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널리 포용함〔不壞小相而廣容〕’이다. 한 터럭에 삼세간을 용납하며 그 속에 불신佛身이 안 계신 곳이 없다.
‘부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는데 우리 불교계에도 하루빨리 거룩한 몸 시현하사 무지한 중생을 모두 제도하고 다 함께 화합의 뜰로 나아가 온 산에 붉게 물들은 산색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새해 맞을 준비를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내일은 학인 스님들과 김밥 싸고 음료수 몇 개 준비하여 가을산행을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