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존자가 행선行禪을 하고 있었다. 마왕 파순(Ma-ra pa-pima-)이 존자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신통 제일인 그였지만, 아마 잠시 졸았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온전하게 깨어 있는 수행자의 몸에 마귀가 범접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뱃속이 거북해진 목련 존자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뱃속이 답답할까? 뭔가 가득 차 부풀어 오른 것처럼 말야!” 행선 길에서 내려온 존자는 숙소로 들어가 자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뱃속에 마라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나와라, 마라여! 여래와 여래의 제자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 오랜 세월 네게 불행과 슬픔이 따르리라!” 마왕은 한편으로 찔리는 구석이 있음에도 버티면서 생각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해보는 소리겠지! 자기네 스승도 이렇게 빨리 알아채지 못할 텐데 감히 그 제자가 어떻게 날 알아보겠어?” 그러나, 마라의 생각을 그대로 다 읽은 목련 존자가 말했다.
“짐작으로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니라! 너 거기 있지 않느냐? 나와라, 마라여! 고집을 부리다가는 오랜 세월 불행과 슬픔이 따르리라!” 겁에 질려 존자의 입 밖으로 뛰쳐나온 마라에게 존자가 말했다.
“거기 문을 등지고 서 있는 너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지 말라. 한때 나도 마라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이름은 두신(Du-sin)이었고, 네 어미인 깔리(Ka-li)는 내 누이였으니 너는 내 조카가 되느니라.” 여기서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셈이다. 이어서 목련 존자는 옛적 자신의 비행을 고백하고 수행자를 괴롭히는 일이 득은커녕 커다란 재앙의 씨가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중부 니까야 제 50 Ma-ratajjaniyasutta(漢譯 중아함 제131 降魔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마라에 대한 목련 존자의 가르침이 계속된다.
“옛적 까꾸산다(Kakusandha 拘樓孫) 부처님 시절이었다. 그 분께 위두라(Vidhura 無比)와 산지바(San~jva 有命)라는 두 수제자가 있었다. 위두라 존자는 진리를 가르치는 데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에 무비無比라고 불려졌다. 산지바 존자는 언젠가 나무 아래서 감각과 의식이 멈춘 선정(受想滅定)에 들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목동과 나무꾼, 행인들이 그가 숨을 거둔 거라고 생각하고 저마다 외쳤다. ‘실로 희한한 일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앉은 채로 숨을 거두다니! 자, 여러분 나무를 모아 화장을 치릅시다!’ 그들은 덤불과 나뭇가지, 소똥을 거둬다 존자의 몸 위에 쌓고 불을 지르고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대로 밤을 지샌 산지바 존자는 선정에서 깨어나 가사를 털고 바리때를 챙겨 아침 탁발을 나섰다. 말짱한 모습으로 나타난 산지바 존자를 본 마을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앉은 채 숨을 거뒀던 분이 아닌가? 세상에, 화장을 한다고 나무를 쌓아 불을 질렀는데, 저렇게 살아 있다니!’ 이렇게 해서 그 분은 유명有命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 때 마라 두신이 생각했다: ‘저 하찮은 빡빡 머리 수행자들이 살건 죽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바라문들과 마을 사람들을 부추겨 저들을 중상하고, 괴롭히고 성가시게 만들어 마음이 변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지!’ 그 뒤로 마라의 꾀임에 빠진 바라문과 마을 사람들은 까꾸산다 부처님의 제자들을 멸시하고 중상하며 성가시게 괴롭혔다.
사태를 간파한 까꾸산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저게 모두 마라의 부추김으로 생긴 일이다. 그대들의 마음이 변하면 그 틈새를 뚫고 들어오려는 마라의 술책인 것이다. 동서남북 상하 온 천지를 사무량심(四無量心:慈·悲·喜·捨)으로 가득 채우고 그 가운데 머물라!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는 제자들과 전체 승가 어디에도 마라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다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마라가 묘수를 발견했다. 마라는 다시 바라문과 마을 사람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저들을 떠받들고 공경하라!” 그러나 마라의 속마음을 꿰뚫어 아는 까꾸산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단속했다.
“이 또한 마라의 부추김이니라. 그리하여 그대들의 심신이 해이해질 때 그 틈새를 뚫으려는 것이다.”이번에도 역시 책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악에 바친 마라 두신은 끝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까꾸산다 부처님 뒤를 따라 탁발 길에 나선 위두라 존자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 것이었다. 그는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는데도 묵묵히 스승의 뒤를 따라 걸었다. 까꾸산다 부처님이 마치 코끼리가 그러하듯이 온몸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마라 두신, 이 자는 절제라는 것을 모르는 군!”
목련 존자가 마라에게 말했다.
“까꾸산다 부처님이 쳐다보는 그 순간, 마라 두신은 목숨이 끊어져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나는 만 년 동안이나 니라야(niraya)지옥의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 뒤에는 웃사다(ussada)지옥으로 갔다. 그 지옥의 고통으로 인해 내 몸은 사람 몸에 물고기 머리 모양을 하게 되었다. 마라여, 여래와 여래의 제자를 괴롭히지 말라. 마치 불덩이를 집어드는 바보 꼴이 되리라!” 목련 존자의 이야기를 듣고 주눅이 든 마라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고 말았다.
마라ma-ra는 마귀, 악마 등으로 번역되었고, 마왕 파순과 동일시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초 이 말은 ‘살해·파괴’를 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라는 ‘죽음’을 암시하며, 사신死神이라는 쓰임새는 곧 죽음을 의인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에서 말하는 마라는 한 생을 마감하는 생물학적 사망보다는 목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의 정신적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은 마라가 우리 안으로 파고들 수 있는 틈새는 방심과 탐욕, 화내는 마음, 어리석음임을 밝히고 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턱없는 공경과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우리의 초발심이 퇴색한 것은 아닌지 늘 되새겨보는 일이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의 타락이나 퇴보는 역경보다는 오히려 순경 속에서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바로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