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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긴 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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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종민 2001년 07월 233호
수련회에 참여하는 분이라면 전생에 불연이 있었거나 업보가 있어 산사를 찾게 되는 것일까? 입재식이 시작되기 전 습의실에서 받은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보경당에 모인 선남자 선여인들의 자태는 엄숙하기만 했다
반듯한 신발정리에서 조심스럽게 좌복을 가다듬고 부처님을 향해 앉는 자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고운선을 유지하며 지그시 감은 눈과 꼭 다문 입, 모두가 마음을 비운 듯 사뭇 각인된 일념으로 가득해 보였다
나 역시 불혹의 나이에 인생의 방향조차 모른 채 방황하는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기도 하고 찌든 생활에서 온갖 고뇌와 번뇌를 떨쳐 버리려는 마음을 몰라주고 몇 해 전 송광사에서 수련회 경험을 가진 동생이 힘든 것이므로 그 몸으로 수련대회를 치를 수 없을 것이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가야산 일주문을 들어설 때는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물론 나만의 고뇌에서 얻은 몸의 병으로 혼자 진통을 겪고 수술을 앞둔 상황을 염려하는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신체적 고통쯤이야 심적 고통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짧은 기간이지만 수행을 통하여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을 부처님도 알아주시는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받아주는 것 같았다
눈을 들면 부처님과 ‘묵언’이란 두 글자와 귀를 열면 “차수하시오.” 라는 습의사 스님들의 목소리이 외에는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새벽 3시 도량석, 범종소리, 북소리에 산사는 잠에서 깨어나고, 대적광전에 들어서면 육중한 부처님 앞에 정적이 어깨에 내려앉고 우렁찬 예불에서 내 육신과 마음을 씻으며 서툴게 불경을 외어보는 엄숙함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음을 알 것 같았다
하루 여섯 시간의 참선에 들어서면 발을 잡지 않고도 결가부좌가 되는 신체조건은 오히려 마음 가벼웠고,활짝 열린 보경당 문을 너머 청화당 사이로 하늘을 받혀 올린 전나무 숲속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귀를 멍멍하게 했고, 간간이 귓전을 스치는 한줄기 바람에 모든 번뇌를 씻어주기에 충분했지만, 망상은 머리 위에 올라서고 잡히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 시간엔 내 몸을 다스리는 맑은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일자일배하며 사경을 하는 시간은 평소 글을 쓰던 나에게는 쉽기만 했고 생전 처음 발우공양을 할 때는 평소 밥알 하나라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여지껏 너무 사치스럽게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고, 네 번의 퇴수물을 마시는 기회도 결코 더러운 물이 아닌 보약으로 삼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수행 나흘째 1080배를 할 때는 조금 걱정이 앞섰다
혹시 아픈 몸에 진통이나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나만의 번뇌, 돌아가신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석가모니불을 불렀다
900배가 넘어서면서 뒤틀린 몸을 가다듬었으나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땀과 눈물에서 내 업장이 녹아 옷과 좌복으로 스며들어 마른 곳이 없고 주머니에 넣어둔 발우공양법 메모지는 펴볼 수가 없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홍류동 계곡에서 땀을 씻고 바위 위에 앉아 숲속 하늘을 올려보는 순간, 양파껍질 같은 한 겹의 번뇌를 벗겨 낸 듯한 개운함, 그것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날 새벽, 오계를 받고 계첩에 새겨진 나의 법명 ‘법인法忍’을 마음에 새기며 삼세제불 앞에서 엄숙히 참회하고는 큰법당을 나설 때 모든 망상을 잊고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4박 5일간의 출가는 23년간의 내 공직생활에서 받은 많은 교육보다 값지고 귀중한 시간으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이면 독경에 귀를 씻고, 남을 배려하며 양보할 줄도 아는 여유로움과 함께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청사 내 법당에서 목탁을 잡고 예불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부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렇듯 모든 중생의 마음에도 부처님이 있고 부처님 마음에도 중생의 마음이 있다.’는 《화엄경》의 깊은 구절을 어찌 알겠냐마는 부처님 곁으로 한 발 다가서는 맑은 정신으로 동료들과 민생을 생각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이란 내 직업에 더 충실하고자 한다
더 넓은 가슴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그들 앞에 다가서는 것이 부처님 뜻이 아닌가 싶다
자비하신 부처님의 말씀이나 아무리 좋은 법문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듣지 못하는 법
절에 간다고 절에 가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본다고 다 부처님이 아닐진대…. 마음의 문을 열고 진정한 마음으로 정근할 때 내 마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지면서 나를 다스리고 남을 생각하는 진정한 불자가 될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을 해본다
수련동문회 매월 정기법회 날이면 평소 내가 좋아하는 등산과 볼링, 친구들과의 모임 등 모든 유혹도 뿌리친다
해인사를 갈 때마다 독경 테이프 두 개를 다 들을 때쯤이면 멀리 가야산이 나타나고 어머님 품안 같은 포근한 부처님을 뵙는다는 마음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끝으로 해마다 수련회를 기획하시는 사중 스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도반 모두가 성불하기를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