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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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성오
2001년 07월 233호
이 음식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내 덕행德行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 모두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장방형의 커다란 방에 사면의 벽을 따라 반가부좌한 채 소임자 스님의 죽비소리와 선송先誦에 이어 다 함께 공양게송을 따라 한다.
처음 대하는 발우를 펴고 묶는 법, 공양하는 법, 거두는 법을 배우고, 중간 중간 몇 차례인가의 게송을 합송合誦한 뒤 공양을 하면서, ‘밥 한 그릇 먹는데 이렇게도 절차가 까다로워서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언지 모를 신비함과 뭉클함이 동시에 가슴을 후비는 듯 했다.
몇 년 전의 여름휴가 때의 일이다.
사찰에서 열리는 불교수련회에 참가해보라는 권유에 선뜻 따라 나섰던 짧은 시간의 소중한 기억들.
굳이 서울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의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열리는 수련회에 참여하고자 했음은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태고 보우선사와 보조 지눌국사의 조계종조설說 논쟁이 한창이던 50년대 초, ‘환부역조換父逆祖’라 하여 종정직을 그만두고 백양사에 내려가 청류암에 머무시며 후학양성에만 전념하셨던 만암 스님의 흔적이나마 더듬어 보고 싶었고, 둘째 이 시대 선승禪僧의 귀감이신 서옹西翁 방장 스님이 계시는 도량이라는 점과 아울러 제 그림자를 담고 있는 입구의 쌍계루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함도 내포되어 있었다.
모든 사물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 길 섶에 피어 있는 풀꽃을 보라.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비쳐오는 모습은 무성한 풀무더기에 지나지 않지만, 걸으면서 내려다보면 희끗희끗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앉아서 들여다보면 풀무더미 속에 어찌 그토록 예쁘고도 앙증스런 꽃들이 아름다이 피어 있는지.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렇듯 아주 우연한 일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나에겐 불교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가끔 대형사고(?)를 일으켜 세간의 뉴스거리를 제공해 주는 승려들을 바라보며 극히 냉소적이었으며 승단 자체를 폄하평가하던 터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불교문화를 향유하길 즐겨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을 뿐….
살펴보건대, 오랜 역사의 질곡 속에서 수 차례의 영욕을 되풀이하며 면면히 이어온 불교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그 숨결이 스미지 아니 한 곳이 없을 정도로, 하나의 DNA가 되어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유전流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사찰에 대한 관심분야는 가람의 배치가 어떻고, 건축물의 양식은, 탑塔의 형식은, 배례석의 상태와 창살의 문양은 어떠하며, 당간의 위치와 괘불의 크기,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과 그 수인手印을 관찰함에 있었을 뿐, 심지어는 법당에서도 가톨릭식 합장으로 예절만 갖추고 드나들면서도 참배조차 할 줄 모르던 수준이었다.
불교와 스님들의 수행修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련회 덕분이었다. 청록빛 녹음으로 둘러쌓인 산사山寺에서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의해 스님들의 일상과 거의 같은 생활을 해보면서, 불교를 좀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겉으로나마 수행자들의 삶의 모습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참선參禪 시간이 주어졌을 때, 참선이란 것은, 마치 배용균 씨가 찍었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처럼 ‘스님들이 조용히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우리가 스님들과 같은 자세로 벽을 향해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한 곳을 응시하며, 엄지 손가락 끝을 마주 대고 두 손을 살포시 포개어 얹은 상태에서(禪定印) 머리 속 망상을 비우며 의심을 좇으라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좌선坐禪’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몸을 풀어줘야 한다며 앉은 채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선禪 체조 몇 동작을 지도 받았는데 돌이켜 보니 좀더 잘 익혀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회원들은 저마다 ‘좌선’이라는 신비의 체험(?)에 몰두해 있었고, 이 모든 것은 묵언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한편, 도량 안에서나마 스님들의 일상을 눈여겨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꼭두새벽 3시, 목탁소리로 하루를 열어 밤 9시가 되면 정적속으로 들어가는 스님네를 가리켜 ‘호수 위의 백조(물 위의 모습은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의 발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으며, 일거수 일투족에서 ‘동중정動中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또 다른 새로움이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하다. 이틀 째 되던 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며, 가끔은 무엇엔가 놀란 듯한 산새들의 푸득거림,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 보이던 별들 아래로 프러시안 블루의 깊은 흑청빛 밤하늘이 시야를 드리우던 그 밤, 우리는 산사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의 눈빛들로 언어를 대신한 작별인사를 미리 하고 있었다. 불과 2박 3일의 수련회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웠으리요만은 적어도 내게는 그 짧은 만남으로 인해 생의 ‘극적전환(change of face)’을 가져 온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나는, 불교서적이외에는 별반 흥미를 느낄 수 없었으며, 책 속에서 만나는 선사禪師들의 수행담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얘기가 이미 아니었다.
특히, 경허 선사의 행장을 살피던 중, 만공 스님과 혜월 스님이 스승의 다비식을 치르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속가의 부친이 가시던 날보다 더한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며, 오도송悟道頌 가운데 표현되던 깨달음의 순간에서는 환희심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은산철벽이 무너지며 눈 앞이 환해졌다.”는 한결같은 표현은 ‘무명無明에서 벗어났음’이리라. 어느 사이엔가 내 마음 한켠에는 부처님 한 분이 모셔져 있었고, 자신의 수행의 힘으로 정각正覺을 이룰 수 있다는 불교의 근본교리는, 이미 발심해 있던 나를 더 이상 세간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아무개야, 아예 개종하지 그래?”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가끔은 놀림하던 친구가 그의 불화佛畵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고 탄성하던 내게 하던 말. 어떤 인연으로든 나는 출가를 했고, 그 친구는 아직껏 나의 출가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친구가 불교회화를 그만둘 리 없으니 언젠가는 미술관에서 다시 마주할 것이다. 출가승이 된 나를 보고는 무슨 말을 건네올까?공교롭게도 부처님 출가하시던 이월 초여드렛날, 나는 출가를 위해 해인사로 향하던 중 홍류동에 접어들자 환희로움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산중을 내려오는 한 승려를 보며 ‘무엇 때문에 내려 오는가? 나는 산에 들어 산을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며 홍류동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야산 산신이 되어 다시는 세인世人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을 혹여 만날 수 있을까? 굽이진 길을 돌아설 때마다 100년 전 이 길을 소맷자락 휘적거리며 오르내렸을 경허 선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길을 따랐다.
“나는 왜 이 곳을 찾아오는가? 누가 나를 이 곳으로 오게 했는가? 그렇다. 오랫동안 숙변처럼 침잠되어 있던 내 의식의 찌꺼기들을 소제하고 새로이 청량수같은 법法으로써 이 갈앙심을 채우리라.
다시는 중생의 삶을 번복하지 말기를 발원해보며 법왕法王의 제자로서 부끄럼 없기를.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일여정진一如精進하리라.”오늘 아침에도 죽비소리에 맞춰 공양을 할 것이다. 잠시, 창호지 바른 여닫이문 밖 녹음 속으로 시선을 던져 본다. 처음, 맨 처음 발우공양을 하던 때가 눈 앞을 스친다.
‘이 음식이 어디로부터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