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입장 대변한 불교계
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신문 등록 절차가 쉬워지면서 불교계에서도 88년 3월, 법보신문의 창간을 필두로 그해 말 해동불교신문, 이듬해 봄에 대한불교 신문이 창간되면서 바야흐로 신문 전성시대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신문들의 창간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교계 신문도 과거에 비해 내용이 다양해지고 발로 뛰는 기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둥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신문과 잡지를 단지 문서 포교의 한 방법으로만 여겨 왔던 불교인의 기존 관념을 깨뜨리고 언론으로서 자기의 모양과 기능을 갖추려는 노력이 시도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 교계 신문을 지켜본 대부분의 대중은 그 한계를 명백히 느껴야 했다. 각 신문사의 사주가 어떤 정치적인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신문의 논조가 결정되었고, 심지어는 극심한 편파 왜곡 보도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현실은 일선 취재 기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형편이다. 불교계 신문과 잡지의 현역 평기자들로 구성된 한국불교 기자협회는 자신들의 기관지인 한국불교기자협회는 자신들의 기관지인 불기협회보 2호에서 \"언론들조차 특정한 편에 서서 사건의 진상과 해결 방향을 각기 편향된 시각에서 보도함으로써 종단의 혼란을 오히려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있음을 시인했다. 이는 신문들이 창간될 때에 나돌던 의혹과 우려의 소문들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올해의 종단 분규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인 보도와 논평을 유지하려고 애쓴 주간 불교가 제호에 걸맞게 10월부터 기존에 열흘 간격으로 발행되던 것이 완전한 주간으로 바뀌었다.
다른 교계 신문사가 작년부터 이미 주간 십이면을 발행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경영자의 의지보다 공정한 언론을 지향하는 기자들의 요구가 쾌 반영되어 한 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였다는 데는 적지 않은 의미를 주고 싶다.
기자와 경영주 함께 각성을
현재 불교계는 주간 십이 면을 발행하는 불교신문, 법보신문, 대한불교와 주간 팔면을 발행하는등 주간불교, 해동불교가 있다. 11월 말경에는 국제불교가 주간 팔면으로 창간된다는 소식이다.
국제불교의 창간에 대해서 교계는 구구한 설이 떠돌고 있다. 과거 적지 않은 신문들이 언론 본래의 기능보다 자파(세력)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염불 보다 젯밥\'에 끌려 신문을 창간한 것처럼 새로 탄생되는 신문에 대해서도 그러한 의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신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는 아니나 새 신문을 발행하는 주도 인물이 최근까지 신문을 경영해 왔고, 그 과정에서 몇 차례 납득하기 힘든 전력이 있어 온 까닭에 구절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듯하다.
일선 기자들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어려운 처지와 조건에도 그동안 많은 기자들어 노력해 왔고, 올해에도 신문들의 보도 내용에 대해 스스로 적지 않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내용 때문에 개인적이든 또는 집단적이든 기자가 불이익을 당하고도 문제가 되었다는 소식은(해동불교신문은 예외로 한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듣지 못했다.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움직임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어느 중견 언론인의 법률지에 기고한 글 때문에 생긴 파문과 그 뒤의 전개 소식도 씁쓸함만을 더 할 뿐이다.
혹시 교계의 언론계가 치열한 자기 노력 없이 과거의 관행에 젖어 자포자기’ 나 \'알아서 기는\' 풍토가 짙게 깔린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공정한 언론이 되려면 큐보다도 기자들의 남다른 각오와 노력이 크게 요청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사보, 침체기의 잡지
언론으로서의 역할보다 포교와 교양물로서의 기능에 강한 잡지계는 올해도 침체 국면이 지속되었다고 하겠다.
80년대의 중반과 후반을 거치면서 그 동안 불교계를 대표했던 「불교사상」, 「월간법회」, 「선사상」, 「법시」들이 잇따라 폐간되고, 「월간금강」이 창간 초기의 성격을 변화시켜 발행하는 등으로 90년대에 들어선 교계 잡지는 침체 국면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비록 올 6월부터 부산에서 「불교세계」가 창간되는 등의 발전적인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영향은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불교세계」를 중심으로 「불광」등이 외롭지맍 꾸준히 잡지계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에 비해 사보는 꾸준히 발전하여 잡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보보다 잡지쪽에 가깝다는 명가를 받아온 월간 「해인」과 「정토」등이 계속 발간되고 있고, 「등불」「불일회보」「금정」「화엄」「동학」「흥국」등도 월간 또는 격월이나 계간의 형태로 편집과 지질, 내용 등을 강화시켜 오고 잇다. 「구룡사보」도 「월간구룡」으로 제호를 바꾸었고, 선학원에서는 새해부터 일제 시대에 몇 차례 발간되다가 중단된 「선원」의 복간을 결정하고 현재 창간호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소식이다. 「현대 불교」를 휴간시킨 봉은사도 곧 사보의 복간에 착수한다고 한다.
또한 가산문화불교진흥원을 비롯한 몇 몇 곳에서도 학술 전문지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전문 학술지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전문 학술지의 발간은 불교 관련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이제 웬만큼 큰절이면 자체 사보가 없는 절이 드물며, 이에 대한 투자도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각 사찰이 이렇듯이 경쟁적으로 사보를 키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내용에서 특별히 차이도 없는 사보에 여기저기에서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이다. 형식적인 사보 내기로 생색을 내기보다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부처님 사업(불사)을 찾아서 시행하거나, 꼭 사보를 내려고 한‘ 다면 서로 힘을 합쳐 좀더 충실한 내용l과 형식을 갖춘 책자를 발행하자는 소리는 귀담아 들어 볼만하다고 하겠다.
대항 언론과 대중 감시 발전되어여
적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제도 언론과 반민주 언론에 대항하여 참다운 언론 사회를 실현시키는 데 앞장서는 언론\"이라는 대항 언론이 있다. 우리 불교계에 이 개념을 도입한다면 어떤 것들이 이에 속할까?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없다. 사실 현재 제도 언론의 영향력도 별로 크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이를 대항 언론에서 찾기는 무리일 듯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나 불교11 현실을 볼 때에 대항 언론이 차지해야 하는 지위와 역할의 당위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현재 교계는 독자적인 대항언론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민주·재야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책자등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통불협이 계간 「불교운동」, 정토구현승가회의 월간「정토구현」, 대불련의 「대불련보」 들이 그것이다. 올 하반기에는 선우도량과 인권위원회에서도 책자와 신문을 창간했고, 올 4월까지 대승불교승가회에서 발행한 월간「대승불교」가 있었다.
그러나 위의 매체들은 언론으로서의 기능보다 단체의 위상 제고와 자체 회원 의 교육과 교양, 회원과 간부, 중앙과지 역간의 소식 전달, 조직 강화 들어 기본 역할로 풀이된다. 물론 위에 열거한 매체의 대부분은 제도 언론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정치, 군사, 외교, 인권, 경제와 같은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특징이 있다. 또 대정부, 대종단을 서슴없이 비판함은 물론 때로는 반미 입장을 분명히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계의 대항 언론은 취약한 재정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까닭에 매우 낮은 단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승가대학이 학교 당국과의 관계나 편집장의 성행에 따라서 논조가 변화하는 한계를 극복한다면 그 가능성이 매우 큰 매체로 기대된다
이제 교계 언론도 일정한 궤도에 오르려면 기자들의 자각과 노력,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대항 언론의 탄생과 발전은 물론 언론{상품)의 소비자인 독자들이 언론을 체계적으로 감시하고 비평해야 하겠다. 교계에도 하루빨리 신문과 잡지의 비명 모임과 전문가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