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우리는 참으로 어렵고도 쓰라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쏟아져 나오는 실직자들의 아픔은 결코 다른 사람의 아픔이 아니었으며,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들 마저 다달이 나오는 월급 봉투에 그저 무한한 감사를 느껴야 했던 서글픈 나날이었다. 누구 때문일까? 무엇 때문일까? 주변 사람들과 숱하게 입씨름도해 보았지만 어느 누구로부터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세월은 역시 멈추지 않고 흘렀다.
하지만 세월은 역시 멈추지 않고 흘렀다. 다소 짜증스럽고 어느 때보다 더디다는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세월은 벌써 일 년이라는 장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지난 일 년 여 동안 우리에게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부여잡고 싶던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지난 연말의 조계종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던 단어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분명 고통 받는 중생에게 무한한 희망의 빛을 던져 주던 분이신데, 그런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승단은 부처님을 대신해 우리 중생에게 희망을 던져 주어야 하는 곳인데… 그런데 지금의 승단은 오히려 중생에게 절망을 안겨 주는 곳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뭐 이런저런 푸념 섞인 생각도 많이 해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내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과연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부처님 은덕으로 젊은 학인 스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팔 년 가까이 되어 간다. 내 명함에는 부교수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지만 이 곳에 교수로 부임하고 난 뒤 젊은 스님들과 함께 책을 보는 일은 내 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는 대학 교수라고 하기 부끄러울 만큼 근무 여건에 분심이 일기도 했지만 스님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환희심, 언제나 내 직장에 가면 눈 밝은 학인들이 계신다는 무한한 자긍심이 있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내 삶의 희망이었으며 곧 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 조계사 경내에 서있던 내게서 갑자기 희망이라는 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물론 스님들이 돌과 유리조각을 던지고 심지어 화염병까지 출현한 그 광경을 목격한 때문아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절망스러웠던 것은 나와 함께 공부하면서 한국불교의 힘찬 앞날에 대해 꿈을 꾸어 나갔던 그 스님들이 이쪽 저쪽으로 서로 나뉘어 다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종단의 중진 스님들에게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결코 답습하지 말자며 그렇게 굳게 다짐하던 스님들이 어느덧 그 일원이 되어 똑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그 현장은 내게 큰 절망감으로 다가서고 말았다.
아직도 아픔이 가시지 않은 이번 분규에 대해 나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설사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척하며 결국은 불교를 욕되게 하고 있는 기자들의 행태가 너무 싫고, 자신의 고고한 불심으로 승단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듯한 일부 재가자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비론兩非論’적 태도는 더 큰 죄악이라고 떠들며 일방의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부터는 ‘귀의삼보가’ 아니라 ‘귀의이보’만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판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나는 그저 내 앞날의 인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기에도 벅차다. 일순간에 모두 빠져나가 버린 듯 한 내 인생의 희망을 주워 담기에도 벅찬 나날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던 그 희망,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그 기대감이 도무지 채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고 있던 스님이 상습 도박범으로 붙잡혀가도 좋다. 조계종단은 폭력승단이라는 언론의 비아냥을 들어도 좋다. 내게 있어 더욱 절박한 문제는 그래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해 왔던 앞날에 대한 그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보다 그래도 책 보기를 더 즐겨하는 스님들을 보며 그 분들의 성장에서 큰 환희심을 느끼곤 했던 이전의 마음을 과연 되 찾을 수 있을 것 인지가 너무도 절박한 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온갖 망상과 허탈감으로 마음이 혼미해질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스님이 한 분 있다. 바로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스님이다. 그 분은 지금과 견주기 어려울 만큼 불교가 암울했던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며, 유생들에 맞서 불교중흥을 꾀하다가 결국 유배지 제주에서 곤장을 맞고 입적한 순교승殉敎僧이다. 그 분의 결연하고도 올곧은 의지는 연약하기 찍어 없는 나에게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서고 있으며, 특히 다음의 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불교인 모두가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소개해 본다.
불교가 쇠퇴하기가 이 해보다 더 하겠는가
피눈물을 뿌리며 수건을 적시네.
구름 속에 산이 있어도 발붙일 곳 없으니
티끌 세상 어느 곳에 이 몸을 맡기리.
釋風衰薄莫斯年 血淚潛潛滿葛巾
雲裏有山何托跡 塵中無處可容身
보우스님이 중종 33년(1538년)의 법난을 겪은 뒤 그 아픔을 술회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이 법난은 조선시대 최대의 법난으로 불리울 만큼 잔혹하게 진행되었다. 유생들은 닥치는 대로 전국의 사찰들을 불태우고 부수어 나갔으며, 스님들이 눈에 띄면 장소를 불문하고 몽둥이로 구타를 가할 정도
였다. 몸소 이 법난을 겪은 보우스님은 이렇게 ‘피눈물’로 수건을 적시며 아픔을 달래었다.
그런데 보우스님은 이 같은 법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 법난이 있은 지 꼭 십년 뒤부터 봉은사를 거점으로 불교중흥의 의지를 실행해 나갔다. 물론 당시의 불교중흥 불사는 문정왕후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지만,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버리지 않은 그 분의 희망이 없었다면 결코 실행될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협박과 모함을 견디어 내며 진행된 이 때의 중흥불사로 인해 꺼져가던 조선불교의 불씨가 다시 소생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도내 마음 속의 ‘희망’은 되돌아오고 있지 않다. 글을 청탁 받았다는 것을 핑계로 마음을 추스려 보고자 했지만, 보우스님의 그 소중한 희망을 되새겨보며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도저히 ‘유마의 방’에 실릴만한 당당하고 생명력 있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또 한번의 악업을 짓고 있다는 무거운 마음과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그저 한스러울 뿐이다.
‘백척간두진일보’라 하였던가. 마지막으로 자애로우신 부처님께 다시 한번 간절히 매달려 보는 수 밖에…
부처님, 비록 보잘 것 없는 중생이지만 부디 이 미물의 가슴에 다시 희망의 싹이 틔워질 수 있게 하소서.
부처님, 이 중생의 삶이 다시 희망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