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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암 휴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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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원자 1991년 12월 118호
기기암으로 가는 팔공산 숲엔 아직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스님은 이렇게 산길을 오르며 땀을 흘리면서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 가을 찾는 이 없어도 저 홀로 눈부신 단풍으로 치장했을 숲을 지나며, 일행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땀을 훔치며 그렇게 말했다.
저 푸른 하늘의 빛깔이 극락의 빛이라 했던가. 우리는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에 눈길을 보내며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많은 스님네들이 현실 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시정으로 내려왔고, 그래서 우리는 역시 깊은 산중의 절을 찾지 않아도 스님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영천 은해사 입구에서 한시간 남짓 걸어 올라가야 하는 기기암행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으로 출렁였다.
그것은 아마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해 서성이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에 발 딛고 사는 우리가 이 시대의 스승을 진심으로 그리워해서일 게다. 산중의 한 선객과의 만남이 우리 삶의 무게에 던져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헤아리며 가기암으로 올랐다.

몇해전에 대승불교승가회에서 실시한 한국승가의 의식과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선이 한국 불교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응답이 팔십오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로써 한국불교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곧 선임이 확인되었으나, 한국 불교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계율 준수 문제와 사회 활동으로 가장 많은 응답을 내어, 선수행이 낳은 문제점도 함께 지적되었다.
이는 곧 선이 한국 불교에서 사회성과 윤리성의 문제를 어떻게 실천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서 오늘날 선원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휴암스님은 이러한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해 온 분이다.
스님이 출가할 때만 해도 산중 불교는 총판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힘이 있었다.
여론에 절대적인 힘을 가했던 산중 불교가 오늘날, 특히 몇 년 사이에 종단 차원에서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진단인데, 산중 불교의 이러한 쇠퇴의 원인으로서 불교 정통정의 약함을 들었다.
‘불교적인 행동의 가치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채, 시대의 변화에 너무 빨리 적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의 역사적인 실천의 결여라는 열등감에 젖어 ,불과} 현실과 유리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래서 현실 문제에 대해서 우리를 소극적이게 했던 불교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원인 분석이나 자기 반성도 없이 현실에 뛰어들였지요.
어떻게 하는 것이 불교적인 행동이며 출가인의 행동연가 하는 철저한 고민이 대세를 이루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현실 참여는 오히려 불교의 특성마저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인 성격이나 내용, 양적인 현실 모습을 바로 알고, 또 어떻게 하면 동질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시대와 역사와 만나게 되는지를 오래 갈무리하는 것이 곧 불교의 사회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이는 곧 한국 불교가 처해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 원인이
되는 불교의 원리를 재조명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져야 한데는 것과 같은 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불교의 특정을 살리는 방법을 가지고서 역사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인도는 기후나 풍토 문화의 모든 면에서 본래 소극적인 특정을 지닌 나라예요. 불교는 이러한 인도 문화의 옷을 입고 태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실천면에서 소극적인 특성이 농후한 종교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특정을 인정하지 않고, 너희에게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있다며 들이대는 식의 논리나 실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불교의 자리를 명확히 인식해서 소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현실에 적응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불교의 사회적인 실천이라고 봅니다. 현대인들은 적극적인 것에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어떤 방향도 없이 달려가고 있어요.
적극에 대한 맹목성을 일깨울 수 있는 진리를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오히려 적극적인 행

위라 할 수 있어요. 이것은 내가 말하려는 소극성의 의미입니다.
역사의 의미에 기이하려면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가치관이 원대할 때 불교가 역사를 바로 이끌 수 있지요.
지금처럼 우리가 가치관을 상실한 채 물질로 치닫다가는, 극단적으로 말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인류가 업의 불길에 휩싸여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불교는 이러한 세태를 어떠한 문화 경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 하는 언어를 내놓아야 합니다. 역사에 열 사람의 외침이 뒷받침되려면 천명, 만 명이 그들의 뒤에 있어야 하는데, 뒤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역사의 거대한 가치에 일단을 형성하는 집단으로서 이 집단이 곧 승가이며 산중 불교이죠.
불교가 산중에 있느냐, 도회지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라리 무의미합니다. 불교가 어디에 있든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그 문제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러면서 스님은 인도적인 소극성을 거대한 적극성으로 활용한 인물의 보기로 간디를 들었다.
만약 간디가 비폭력이라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뒷날 영원한 동양인으로, 역사에 추앙 받는 인물로 길이 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소극성의 의미를 부연했다.

열어 놓은 문 밖으로 기기암 뜰 앞의 구룡목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마을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구룡목은 기품 있고 의연하게 보였다. 그런 구룡목이 기기암 주연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얼핏 해보며 세간을 향해 내놓는 스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산중에서의 진심어린 수행이란, 물질과 경계(대상)로 치닫기만 하여 자신을 돌아봐서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인지를 어떻게 깨닫게 할 것인가를 오래 갈무리하는 것이라고
스님은 생Z}한다. 그래서 스님은 늘 산중에서 치르는 선수행이 시정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중심을 잃은, 그래서 거칠어 가는 영혼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그 문제는 산중과 시정의 거리만큼이나 높은 절벽을 느끼게 한다.
불교의 진리를 상실하지 않고 그들과 진실 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내어 실천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스님의 이에 대한생각은 깊어만 간다.
진실한 수행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다 보면 산중과 시정에 가로놓인 벽이 뚫리게 마련인데, 불교의 진리란 그렇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스님은 믿고 있다.
“생명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깊이 생각해야지요 진리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해야지 그것을 모든 이해 관계에 적용하려고 성급허 굴면 안됩니다.”
아무런 명분 없이 되풀이되는 오늘날의 종단 분규만 해도 지금 당장 대안을 내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스님은 지적했다. 이 또한 승려가 ‘불교적으로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라는 물음을 놓아 버렸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에, 뜻이 있는 젊은 스님네들이 물질에 눈을 돌리지 않고 청정한 수행에 몰두했을 때 종단 분규를 비롯하여 우리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스님은 반문했다.

대학 시절 신소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뜻한 바 있어, 불가와 인연을 맺어 이십 몇 년 동안 선수행에 정진했던 스님은 꼭 한번 산중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 80년 법난 뒤에 총무원 일에 참여한 것이 그것인데, 스님은 그 일을 지금도 깊이 후회하고 있다. 그때 쩍은 늘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고. 불교 집안의 현실에 많은 실망을 했다.
한동안 젊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신도들에게 법문을 하는 일조차 싫을 만큼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다. 또 하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와 진실에 대한 열의를 빼앗아 것이 아직까지도 스님에게는 커다란 상실로 남아 있다.
‘내면의 진실을 위해서 불사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노력한 만큼 세상에 이바지하고 갈 수 있겠지요 억만금을 주어도 그것을 안개처럼 여길 수 있고 진실 하나 민을 위해 목숨을 내걸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출가인은 이런 면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휴암스님은 십 년 전에 기기암으로 와 폐사나 다름없던 암지를 기둥만 놓아두고 새로이 고쳐, 지금은 안거 때가 되면 십오육 명의 스님네들이 기기임에 들어와 결제에 들어가는 일종의 선원으로 만들었다.
며칠 뒤로 다가온 결제에 따른 준비로 바쁜 스님은 영천 읍내에 볼일이 있다며 산문 밖을 나섰다.
손보다 먼저 산을 내려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문득 ‘해제가 되어 산문을 떠나는 남자들의 모습은 당당한 한국 불교의 모습이다’라고 표현한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까치일까, 어디선가 새 몇 마리가 날아와 기기암 뒤편의 감나무에 앉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홍시 하나가 키 큰 감나무 밑으로 떨어졌다.

박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