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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부처요, 앉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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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1년 07월 233호
남전南泉 선사에게 육긍陸亘 대부가 물었습니다
“저희 집에 돌 한덩어리가 있는데 어떤 때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불상을 새기고자 하는데 되겠습니까?”
“되느니라.”
대부가 다시 물었습니다
“안 되겠지요.”
“안 되느니라.”
이에 운암진정雲庵眞淨 스님은 말했습니다
“앉으면 부처요, 앉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니라.”
또 동산양개洞山良价 스님이 말했습니다
“앉지 않으면 부처요, 앉으면 부처가 아니니라.”

남전보원 선사는 마조 스님의 법을 이었습니다. 하루는 대중에게 죽을 돌리는데 마조 대사가 물었습니다
“통 속의 것이 무엇인가?”
이에 남전 선사가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가 입을 다물고 저 따위 말을 하다니!”
이 말에 남전 스님은 마조 스님으로부터 공부의 경지를 인정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같이 배우는 무리가 감히 따지고 묻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뒤에 안휘성 지양池陽 땅 남전산에서 선원을 열었습니다
삿갓을 쓰고 소를 치면서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밭을 일구면서 선풍을 떨쳤습니다
스스로 왕노사王老師라고 부르면서 30년간 한 번도 산을 내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사의 삶에 감동한 지양 땅의 태수이던 육긍 대부陸亘大夫가 귀의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 뒤 산에서 내려오기를 청하니 이로부터 도를 배우려는 무리가 항상 수백 명이 넘었고 그의 법문이 제방에 자자하게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이 문답도 그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선사의 제자로는 조주 스님이 가장 유명합니다. 남전 스님의 불상법문은 또 있습니다

남전이 원주를 부르자 대답을 하니 물었습니다
“부처님이 90일 동안 도리천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할 때 일이다. 우전왕이 부처님을 생각하고는 32상相의 그 모습을 조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서른한 가지 모습만을 표현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오직 범음상梵音相 한 가지만은 조각하지 못했느니라.”이에 원주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범음상입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구나.”
《육조단경》에도 이와 비슷한 법문이 있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하루는 오조 홍인 선사로부터 전해받은 가사를 빨려고 했습니다
마땅한 샘이 없어서 절 뒤로 5리쯤 올라가니 울창하고 무성한 숲 속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장자를 땅 위에 세우니 그 곳에서 샘이 용솟음쳐 올라와 못이 되었습니다
이에 무릎을 꿇고 가사를 세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승려가 나타나 예배하고 아뢰었습니다
“저는 방변方辯이라고 하는 서촉西蜀 땅 사람입니다
어제 남천축국에서 달마 대사를 뵈었는데 저에게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속히 당나라로 가라
내가 대가섭의 정법안장과 가사를 전해 준 여섯 번째의 조사를 조계산에 가서 만나보도록 하여라.’ 그래서 제가 멀리서 왔으니 그 의발衣鉢을 보여 주소서.”“그대는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잘했는가?”
“예! 진흙으로 상相을 잘 빚습니다.”
그러자 조사께서 정색을 하고는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모습을 본떠서 빚어보라.”
방변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며칠 만에 그 모습을 본떠 조각을 했는데 높이가 일곱 자로 아주 절묘하고 세밀하였습니다. 이를 바치니 육조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각하는 성품만 알고 부처의 성품은 모르는구나.”그러자 실망하는 그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말했습니다
“길이 인천人天의 복밭이 될 것이니라.”

백장 선사께서 어릴 때 일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이시다.”
그러자 어린 백장이 말했습니다
“모습은 사람과 닮아 차이가 없군요. 저도 이 다음에 이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불상을 모시면서 겉모양의 솜씨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범음상梵音相도 집어넣을 수 있어야 하고 불성佛性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 백장 선사처럼 누구나 와서 귀의하여 신심을 내고 또 발심을 하게 하여 천하의 선지식을 낳을 수 있는 진짜 불모佛母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암영서明庵榮西 선사가 건인사建仁寺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그 해 겨울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추운 날 병들고 굶주린 거지가 찾아 왔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병이 들어 처자식에게 먹일 것이 없어 모두가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선사 역시 도와 줄 물건이라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한참 궁리를 하더니 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의 금박 광배를 잘라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을 팔아서 쌀이라도 사시오.”
그리고는 친절히 위로하고는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이튿날 불당에 들어간 대중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불경不敬스럽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그러자 선사는 말했습니다
“무엇이 지나치단 말인가? 나는 불상을 파괴하지 않았다. 다만 부처님의 뜻을 행했을 뿐이다
부처님도 아까와 같은 불쌍한 중생을 보셨다면
당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서라도 도움을 주셨을 것인데 광배 정도가 무슨 대수로운 일인가?”하고 오히려 대중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불상이라는 상相의 모양에만 집착하는 대중들에게 상을 떠난 부처님의 진상眞相을 보라고 선사는 방편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거지도 거지가 아니라 대중이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즉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볼 수 있다면 여래를 볼 것’이라는 법문을 해주러 온 선지식인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선사들이 불상을 통하여 자기의 안목을 열어갔고 또 남의 안목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야산에 대불을 모시는 것은 산중의 결제대중의 안목을 열리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모든 중생의 안목을 열어 주기 위함이라고 할 것입니다

총림의 결제대중들이여!
육긍 대부가 남전 선사에게 “저희 집에 돌 한덩이가 있는데 어떤 때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불상을 새기고자 하는데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되느니라.”고 하였고 대부가 다시 “안 되겠지요.” 하니 “안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운암진정은 “앉으면 부처요, 앉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니라.”고 하였고 동산양개는 “앉지 않으면 부처요, 앉으면 부처가 아니니라.”고 하여 스승과 제자가 말꼬리를 바꾸어 이 화두를 염롱拈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선지식이라면 모름지기 분명한 선택이 있어야 하거늘 어째서 다른 사람이 ‘되겠지요’하면 ‘된다’고 하고, ‘안 되겠지요’하면 ‘안 된다’고 하였으니 여기 모인 대중들은 남전의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된다’고 한 말은 누가 한 말이고 ‘안 된다’라고 한 말은 누가 한 말입니까?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득야도득 問得也道得하고 부득환부득 不得還不得이라
귀남전노사 貴南泉老師는 천하적중적 天下賊中賊이라
‘되겠는가’ 하면 ‘된다’ 하고 ‘안 되지요’ 하면 ‘안 된다’고 하네
남전 선사가 귀한 것은 천하의 도적 중의 도적이기 때문일세

억喝!□


2545년(2001). 6. 4 대불건립 입재식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