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관통도로는 욕망의 산물,후세의 자연을 해칠 권리는 없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1년 06월 232호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산을 바라보는 눈빛은 신앙이나 다름없다. 산은 삶에 지친 전신을 기대어 새로운 힘을 얻는 곳이다. 육신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곳 또한 산이다. 산은 그저 사람들 앞에 우뚝 서 있는 객관물이 아니다. 합일물이다. 산과 합쳐져서 비로소 사람은 삶을 살고 있다.
가야산은 어떤 산인가. 일찍이 조선팔경, 12대 명산으로 불려왔다.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에 안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금강산의 옥류동계곡과 견줄 수 있는 홍류동계곡이 절창을 연출하는 명산이다. 최치원은 홍류동계곡에 제시석題詩石을 남겼다. “첩첩한 돌 사이로 미친듯 내뿜으며 겹겹한 산을 두드리니, 사람의 소리는 지척간에도 분간하기 어렵도다.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막았네” 라는 헌사를 바쳤다.
이런 가야산이 해인골프장 건설 문제로 10년 동안이나 지루한 법정다툼을 벌이더니 이번에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개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상남도가 지역간 교통기능 강화와 균형발전 촉진, 관광철 교통난 완화와 가야산 관광산업 발전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93년부터 ‘국가지원 지방도 59호선 가야-봉산간 도로 2차선 축조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88고속도로와 해인사를 연결시켜 관광객을 유치해 경남도의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대전리에 온천을 개발하겠다는 것을 보면 도로 개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남도의 도로 개설에 대해 해인사와 환경단체들은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주민들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월 25일 경상남도와 창원지방법원 국무총리실 등에 낸 도로구역결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서에 다수의 지역주민들도 동참했다. 이 신청에 대해 창원지방법원은 다음 달 20일께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해인사와 지역주민, 환경단체들만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경상남도의 홈페이지에는 연일 반대의 글이 오르고 있다. 지난 5월 10~17일 사이 ‘도지사에게 바란다’에 올라온 글 100건 가운데 90여건이 가야산 관통 도로 개설을 하지 말라는 의견이었다. “당장의 지방수익성을 위해 후손에게 가야산과 해인사 대신 러브호텔과 노래방을 물려주려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산은 경남도민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산이기도 하다. 자연 그대로를 선대에서 물려받았듯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가야산 관통 도로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막대한 생태계 파괴와 해인사 수행환경의 침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온다. 환경 관계자들은 이 도로 개설이 추진될 경우, 가야산은 대규모 관광단지 조성, 치인리 일대 대규모 고랭지 채소단지 조성, 대전리 일대 대규모 온천단지 조성으로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홍류동계곡에 녹조가 발생했다는 보도다. 4월 21일 ‘대한매일’은 합천군의 발표를 인용, “홍류동계곡인 해인사 입구 해인주유소~마장마을 사이 3㎞ 구간에 부착성 녹조류가 이상 번식하고 있다. 계곡 내 일부 바위에는 부착했던 녹조류가 마른 흔적도 있다”며 수질 관리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해인사는 현재보다 수배에 이르는 관람객의 내방으로 수행환경권이 위협받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 부처님께 예배하고 문화유산을 관람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장려할 만한 측면이 있다. 사찰에 들러 삶의 에너지를 얻고, 절제의 미학을 한번쯤 곰곰이 생각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 문경의 봉암사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청정한 수행도량으로 있음은 불교를 위해서나 국민들을 위해서나 매우 바람직한 사례로 기록된다. 수행환경권은 불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말이 아니다. 수행은 우리 사회를 맑히는 일이며, 욕망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대자유의 길을 열어주는 일대사인연이다. 대법원도 ’95년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전통사찰의 환경이 수호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수행환경권을 존중했다.
언제까지 사찰이 보고 즐기기식의 관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지방자치단체는 사찰을 관광객 유치를 위한 자원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 지방자치제도 부활되어 실시된 지 5년이 되었다. ’91년에 지방의회를 구성했으니 10년이지만, 단체장을 주민들이 뽑은 것으로 치면 5년이다. 지방자치 연구가들은 지나온 5년을 평가하며 주민 참여, 지방 공무원들의 책임의식과 친절도가 높아졌음을 긍정적인 점으로 보고 있다. 반면, 지방세수 확보를 위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자체의 개발 계획은 지자체가 지닌 공공성을 무기로 거침없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나마 환경단체와 사찰이 제동을 걸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환경은 늘 푸르고 깨끗한 자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을 지키고 가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꾸자는 철학의 문제이다. 그래서 자연친화적 개발이란 말도 우리는 의심한다. 아주 간단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앉으면 눕고 싶다’는 옛말은 인간의 욕망의 무한함을 지적한 탁견이다. 가지면 더욱 가지고 싶어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이 자연이다. 산에 골프장을 지어야 하고, 길을 뚫어 골프장 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 한다. 먹고 자기 위해 호텔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래서 행복한가. 그래서 행복하다면, 산을 무너뜨려 허허벌판으로 만들든 무슨 상관이랴.
가야산 관통 도로 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산을 애지중지하기 때문은 아니다. 욕망의 해소를 충족으로서가 아니라 절제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얘기하는 것이다. 한 불교환경운동가는 환경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환경운동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저항하고 지지하는 운동을 전개함과 아울러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심하고 살피는 운동이고, 또한 수행을 통해 자연의 근본을 통찰하며 생활양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생태주의운동, 생명운동은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개인의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것이어야 한다.”산을 오르며, 산중에 안긴 사찰에 가며 왜 두 다리가 아닌 네 바퀴에 의존하려는 것인지. 우리는 이런 하찮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삶을 되돌아보고 유턴 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야산 관통 도로 반대운동이 갖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터, 특히 자연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4월 발표한 ‘환경 전망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인류는 심각한 환경 재해에 시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20년 후의 사람들에게 닥칠 재앙의 원인은 현재의 우리들의 욕망이다. 우리는 20년 후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