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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정치쇼의 걸작, 전 두환 씨 부부 백담사 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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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9년 01월 83호
전대통령이 11월 2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남기고 홀연히 강원도 산골 백담사로 은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방송을 통하여 침통한 표정으로 오래간만에 국민 앞에 나선 전씨는 제5공화국 때의 과오와 비리 등에 대해 사과하고 정치자금 139억원과 연희동집 등속이 자신의 전재산이라고 내세우며 이를 국가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노태우 현 대통령은 ‘시국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전임 대통령에 대한 더 이상의 단죄는 없어야 한다며 사실상의 정치적 사면을 선언하고 국회특위 조사 활동의 연내 종결을 촉구했다. 이는 전씨가 앞의 ‘말씀’에서 “어떤 단죄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임을 깊이 깨우치면서 국민 여러분으 심판을 기라리겠다”고 의사를 표명한 것에 대해 현직 대통령인 노 씨가 “
더 이상의 단죄는 없어야 한다.“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리고 대신해서 국민 여론을 무마하려고 양심수의 전면석방과 사면 복권, 광주화운동과 해직 공직자 및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 조치 따위를 발표했다. 또 노 대통령은,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에 드는 정치자금 문제에 대하여서는 ”재임중에 있었던 정치자금 운영을 비롯하여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행한 정치 행위는 범법 여부를 따질 개인적인 문제일 수가 없다.“면서 ”정치자금 문제는 전임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내용을 받아들임으로써 매듭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조사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곧, 전 씨가 ‘말씀’에서 밑도 끝도 없이 ”퇴임 후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을 수행할 때 쓰기 위해 여당 총재로서 사용하다 남은 돈 139억원을 관리해 왔다“고 밝힌 말을 무조건 믿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말에 수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부 정치 군인들이 국법을 어기고 정권 탈위의 목적으로 상급자를 체포 구금한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에서부터 1980년 5월 17일 광주학살, 언론학살, 삼청교육대, 10.27법난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죄악을 자행하고 전두환씨가 집권하는 데에 노태우 현 대통령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제5공화국의 온갖 비리와 의혹들을 규명하려고 온 국민들이 힘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5공화국의 탄생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이 전두환씨를 무조건 사면하자고 말한 것은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결구, 현 정권으 본질이 어떠한 것이가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말씀’과‘담화’의 배경
치밀한 각본에 의해 전개된 ‘말씀’과 ‘담화’는 현 정권과 전두환씨의 무리가 정치 쇼로서의 일대 걸작품을 만들려는 저의에서 그 제일보를 내딛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투쟁의지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격동의 한해 1988년을 다시 한번 수놓으며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된 ‘전두환씨 사과해명 후의 백담사 은둔’과 ‘노태우 대통령의 담화’들은 왜 일어났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국민 대중의 힘에서 비롯하였다. 그동안의 독재정권과 정치군부가 비교적 쉽게 총칼로 국민을 억누르고 그 귀와 입을 막으며 정권 찬달과 통치를 자행해 왔으나, 이제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87년의 유월항쟁으로 군부독재를 밀어부쳐 민주화를 크게 진전시켰고, 칠월과 팔월에 걸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생존권과 기본권을 확대했으며,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대통령선거 때는 뜨거운 열기로 군부독재종식과 자주민주 정부 수립 의지를 한껏 고양시켰다. 실망과 좌절감에 빠진 듯 싶었던 국민들은 4.26총선을 통해 헌정사에서 처음있는 ‘여소야대’ 국회를 탄생시켰고, 전열을 정비하여 나갔다. 그리하여 제5공화국때부터 국운을 걸다시피하여 준비해온 제24회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단 그리고 오공비리 청산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른다.
특히, 11월 3일. 국회 오공비리 조사 특별위원회의‘일해재단 설립 배경 및 자금조성 관련 비리 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필두로 하여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특별위원회의 청문회, 문공위원회의‘언론문제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날마다 텔레비젼과 라디오로 생중계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짐작해오던 권력의 비리들이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광범위하게 드러나면서 국민은 더욱 분노하게 되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념하여 학생들이 이 날을 ‘전-이 부부 구속체포의 날’로 설정하고 전개한 광범한 거리투쟁. 그로부터 이틀 뒤 전-이 부부 구속을 위한 투쟁 본부 같은 재야 단체가 주최한 ‘전-이 구속처벌 1차 시민 궐기대회’ 따위로 표출된다. 이 때를 계기로 6.10,8.15 남북학생회담과 같은 조국통일 운동에 주력하던 학생 및 재야의 운동은 광주학살과 오공비리 문제에 그 힘을 모으게 되었고, 시민들의 호응도 매우 적극적으로 된다. 두 주일 뒤에 열린 2차 시민궐기대회에서도 온 나라가 강력한 시위를 벌여 87년의 유월투쟁 뒤로 가장 광범위한 국민 대중들이 투쟁에 합류한다.
이렇듯 끓어오르는 국민대중들의 투쟁 열기에 놀란 현 정권이 마지못해 취한 조치가 앞서 ‘말씀’과 ‘담화’ 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기반이 허약한 현 정권이 국회에서조차 야당에 밀리고, 국민들의 생존권 확보와 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재은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광주문제와 오공비리 문제까지 전면적으로 등장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 정권은 자신의 밑뿌리까지 대중 앞에 훤히 드러내보이는 광주와 오공비리 문제를 ‘보상’ 과 ‘주변인물 구속’ 따위로 마무리짓고 양심수 석방으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여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는 속셈이다.
당정 개편과 야당의 태도
‘담화’ 와 ‘말씀’ 이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국민호도책이라는 사실은, 그 뒤에, 12월 5일의 내각 개편과 l2월 8일의 민정당 당직 개편과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오공 단절, 군인사 배제’ 라는 표면적인 원칙과 24개의 부처 중에서 20개 부처의 대폭적인 인사교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후 체제 수호 차원에서의 개헌” 운운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극우 수구파 핵심 인물인 김용갑 총무처장관의 유임을 비롯하여 시국과 관련된 핵심 부서에 강성 이미지의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포진하였다. 또 내각의 수장에는 군출신이며 미국 체류 중에 중앙정보부로부터의 자금지원으로 미국 내에서 유신체제 홍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강영훈씨를 임명했다.
이러한 개각에 대해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우려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 사흘 뒤의 민정당 당직 개편에서도 국민들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유신 독재치하에서 구공화당 당의장 서리까지 지낸 박준규씨의 대표위원 기용은 민주화를 위한 전진이기는커녕 유신망령까지 되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처사로 민주화의 후퇴일 따름이다. 그뒤 12월 9일에는 대통령 정치담당 보좌역을 신설하여 그 자리에다 지난 유월의 민정당 의원 세미나에서 ‘광주사태는 김 대중 씨의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 하여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서울대 교수 노 재붕씨를 임명했다.
노 대통령이 제6공화국을 출범시킨 뒤 처음으로 단행한 대규모 인사인 이번 당정개편은 광주 문제와 오공비리 문제로 정부 여당이 당면한 위기 국면을 넘기는 한편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그러나 오공 때의 강경파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유신 인사까지 대두시킨 이번 일은 국민으로서는 정말 유감 천만인 것이다.
한편, 임시국회에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킨 데에서 보았듯이, 뭉치기만 하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세 야당은 그동안의 몇 가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민의 기대에 썩 잘 부응한다고는 볼 수 없다. 세 정당 사이에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5년 뒤의 대권 확보를 위해 여권안의 수구세력과 현 정권의 주도 세력과의 분리를 꾀함으로써 그 힘을 약화시키고 자기 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 현재로서는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듯하다. 그러나 야당은 명심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야당의 모습임을.

역사와 민족 앞에 선 불교

일련의 긴박한 정국 변화 과정에서 11월 23일 전 두환씨의 백담사 은둔이 있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 재야불교계이다. 24일에 동국대 스님 열두 명은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스님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서 불교개혁과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성지인데 10.27 법난의 주범이자 80년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반란 괴수 전씨가 이곳에 머문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가서 전씨가 떠날 것을 촉구하려 했으나 도중에 경찰의 저지로 되돌아 와야만 했다. 같은 날 대승불교승가회, 민불련 들도 비슷한 성명을 냈으며 개운사에서는 농성을 전개했다. 그리고 다음날 통불협준비위는 ‘총무원사과, 전씨부부구속’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8.l5남북불자공동기원법회 등 주로 통일운동에 역량을 치중해 왔던 재야불교권이 자체 정비와 조직건설에 치중해 오다가 다시 투쟁의 전선에 집결한 것이다. 12월 4일 재야불교 10여개 단체의 협의체인 「통불협」을 결성한 뒤 다음날 회원 43명이 동국대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 두환씨 부부가 백담사를 즉각 떠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백담사로 가던 중 양평 광탄검문소에서 경찰의 저지로 4일간의 거리농성을 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일단 철수한 불교도는 12월 9일 조계사에서 2차 출정식을 갖고 18명(스님 4명, 재가불자14명)이 다음날오전 11시 백담사입구에서 “민족 성지 백담사에 살인마가 웬말이냐”, “5공비리주범 전•노일당 처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농성 중 12시 30분경 경찰에 의해 강제진압을 당하고 전원이 연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후 10여 일만에 구속 취소 조치로 풀려나긴 했으나 스님 2명과 재가불자 1명이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전 두환씨 부부 백담사 은둔을 둘러싸고 교계에서는 찬성쪽의 의견도 적지 않았다. 대자대비의 불법이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참회하러 온 사람을 당연히 포용해야 한다는 견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군부독재정권이 계속 그 세력을 확장하느냐 아니면 민주화로 성큼 나아가느냐 하는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국민은 지난 8.15 해방후 일제침략자에 협력한 친일 민족반역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편에 아부하여 출세와 부를 누려온 자들을 한번도 바로잡지 못하여 그들이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옴으로써 도덕적 타락을 절감하고 있으며 또한 민족의 정기를 잃고 말았다. 특히 48년 9월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자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친일파를 처벌하려 했으나 정권욕에 눈이 어두운 이 승만 독재세력에 좌절되는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를 후세에 물려주지 말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현재의 우리 불교인과 국민은 비상한 각오와 결의로 광주학살과 5공비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데 힘을 모아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