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우뢰 같은 침묵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1월 83호
지대방에서 우연히 나와 같이 법명에 묵(黙)자가 끼인 한 스님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내가 침묵 묵(黙)자를 파자(破字)하여 말하였다.
“왼쪽의 검을 흑(黑)변은 시커멓게 구워진 고깃덩이고 오른쪽 개견(犬)은 시장기를 느낀 개를 뜻하니, 개가 고깃덩이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곧, 본디 잘 짖는 개이지만 시장기를 느끼던 차에 맛좋은 고깃덩이를 입에 물게 되는 순간에는 아주 잠잠해진다는 소리이다. 이렇게 고기 맛에 탐착하여 짖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더니, 듣도 있던 다른 묵(黙)스님은 더 기발한 뜻풀이를 펼친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 검을 흑(黑)변이다. 따라서 묵(黙)자는 개가 가만히 앉아서 깊은 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고는 “석가모니 부처님조 능인적묵(能仁寂黙)이십니다”라고 그 스님은 덧붙인다. 아뭏든 법명에 묵 자 달린 스님이 늘어나고 있다.
요즈음에는 네 벽에 백운방(白雲榜)이 있는 큰방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간 쪽 좌우로 백운( 白雲)과 청산(靑山), 위아랫목의 좌우로 삼함(三緘)과 오관(五觀), 그리고 탁자 양쪽으로 입승(立繩)과 지전(持殿)-이렇게 여섯 장을 빗자루만한 붓에 담묵을 찍어서 운필한 고풍은 새로 도배하고 나면 사라지고 또 사라지곤 하여서이다. 그 가운데 삼함(三緘)은 입을 세 번 봉한다는 뜻으로 구업(口業)을 경계한 말이다. 이같이 좋은 유풍은 꼭 붓으로 쓴것이 아니라도, 인쇄된 백운방으로라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만일에 참선을 하려거든 입으로
많은 말을 말라.
若欲參禪 口無多言

이는 고담화상(古澤和尙) 참선 법어의 첫구절 말씀이다. 절집안에서 말을 적게 하는 이런 가풍이 이체는 묵언 수행으로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희양산(曦陽山) 봉암선원(鳳嚴禪院)에서는 여러모로 이채로운 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큰방과 후원의 결제 대중이 아흔여섯명으로 근래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납자가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 것이 그 첫째요, 대선찰(大禪刹)의 신임 주지 스님-방 짜는 자리에서 정진 대중 가운데서 뽑았다-최연소를 기록하는 스님이라는 것이 그 둘째요, 대중 가운데서 묵언을 승락받은 이가 아홉 명이라는 것이 그 셋째다.
퍽 오래된, 한 십 년쯤 전의 이야기다. 한 묵언수좌가 있었는데, 그 스님은 그때에 팔년째 일주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묵언정진중에 있었다. 묵언 수행 초기에 예비군 문제로 경찰관이 그 스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의 이야기는 퍽 고무적이다. 까닭인즉,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입건되어 처벌을 받아야 할 이 스님이 뜻밖에도 여불(如佛)의 대접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 스님은 봉암사에 한번 방부를 들인 뒤로는 일주문 밖을 나간 일 한번 없이 오로지 “이 뭣고”만 찾았으니 제불보살의 가피로 그만한 일은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의 몰골은 거칠 대로 거칠어지고 벙어리 삼룡이가 다 되어 마치 원시인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게다가 하루 점심 한 끼니만으로 배를 채우는 형편이며, 밤에도 허리를 방바닥에 붙이는 법이 없이 장좌(長坐)를 계속해 왔다. 경찰관은 이 묵언수좌를 보는 순간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합장을 올리고는 조금 전에 법단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듯이 넙죽넙죽 큰절로 삼배 올리고는 총총히 되돌아갔다. 물론 경찰관이 대선찰 주위에서 근무한 탓으로 불법의 감화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는 보지만, 직무 수행으로 범법자를 붙잡으려고 왔다가 그냥 절을 올리고 떠났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그때에 묵언수좌에게서 풍기는 무슨 마력 같은 것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배짱좋은 이 묵언수좌는 그 뒤로 별다른 일 없이 정진을 잘하고 있다.

고운(孤雲) 선생의 입산시(入山詩) 한 편을 소개한다.

스님들이시어, 청산이 좋다고 말씀들 하지 마시오.
산이 좋을진대 왜 자꾸 밖으로 나가시오.
시험 삼아 후일 저의 자취를 살펴보십시오.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두번 다시 밖에 나오지 않는 모습을.
僧乎莫道靑山好
山好何事更出山
試看後日吾踪跡
一入靑山更不還

스승과 상좌의 인연이 묵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화가 있다. 십산사 년 전의 일이다. 해남 대흥사 진불암 토굴에 초설(初雪)이 쌓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내가 산사를 찾아들어 토굴 문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방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 한 컬레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가 그때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 곳이 아마 송광사 지대방이었을까.
‘눈이 오는 데에다 하얀 고무신을 보니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마을에서는 흰 고무신 신는 것을 보기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방안에서 묵언하는 스님이 문을 열어 내다보고는 그냥 가만히 계신 거요. 한참 동안 말없이 그대로 계신 거요. 나는 밖에서 스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순간, 이상스럽게 마음이 끌려들어가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지난 날 입산 시절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 토굴 스님은 삼년 묵언중에 있었다고 한다. 참 묘한 인연이 묵언의 매력에 끄달려서 일어났다고나 할까.
“만일에 토굴 스님이 입을 열어서 말을 하였다면 그렇게 쉽사리 스님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을 거요.”
그는 이렇게 덧불여 말하였다. 이어서 무언가 신비로운 힘에 끄달려서 마음속으로 갈구해 마지 않던 큰 스승을 뵌 듯한 느낌을 묵언중에 받았다고도 하였다.

우뢰 같은 침묵〔一黙如雷l선어(禪語)의 한 구절이다. 단순히 말이 없다고 해서 묵언일 수 없다. 천지를 뒤집을 듯이 포효하는 우뢰 소리의 위력이 묵언 중에 간직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형식만 찾아서 난행고행(難行苦行) 하다가 몸에 병이 와서 종종 도중하차를 하는 경우를 본다.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난행고행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도 편하고 보는 이도 부담이 적다. 그래야만 부처님이 육 년 동안 보리수 아래에서 묵언중에 앉아 계시고 달마대사가 구 년 동안 소림굴에서 나오시지 아니하던 그 미더운 가풍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