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구조의 개선과 은처승 정화가 핵심
중흥회는 10월 15일자 해산 특집 회보에서 9·26통 도사 대회에서 결의한 제도 개혁안을 다음과 같이 발표 하였다.
가. 중앙의 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그 권한을 지방에 이양한다.
나. 도 종무원 제도를 도입한다.
다. 각 도마다 불교 회관을 건립하고 지방 승가대학 설립을 추진한다.
라. 의회 제도는 지방과 중앙으로 분화시킨다.
마. 복지 시설과 승려 보시제 실시를 검토한다.
‘종단은 이렇게 달라져야 합니다’ 는 제하의 글에서 이들은“오늘의 갈등과 반목을 청산하고 대립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쇄신하여 새로운 승가의 위상을 정립하여야 합니다”하고 제도 개혁을 역설하면서 위와 같은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위의 안은 권력 분산을 핵심으로 하면서 그 방법으로는 기존의 본사 중심 제도를 강화 하기보다는 행정 구역상의도 단위 제도 도입을 그 특정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은 이번에 처음 제시된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1989년 11월 ‘중앙종회 제도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제출된 적이 있다.
중흥회는“서원장 퇴진”의 명분으로 서 원장이 은처승 임을 첫째의 이유로 꼽았다. 사실 서 원장의 은처문제는 과거에도 몇 차례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종단의 정치 상황에서 밀려난 개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가운데에는 88년 봉은사 사태 당시의 종회 의원이었던 황종진 스님의 광고. 종회 의원과 일주회 회원들의 비공식 질의서 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중흥회측이 주도한 9·26통도사 승려대회에서는 이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급기야는 일간지에까지 기사화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물론 이보다 앞서서 7·8 해인사 승려 대표자 대회 직전에 중흥회측과 본사 주지 협의회가 공동으로 세 군데 일간지에 질의서 형식의 대대적인 광고를 게재함으혹써 서원장의 은처 문제는 일반언에게까지 화제가 된 척이 있다. 또 개인적으혹든 집단적으로든 조계종 일부의 은처 문제를 제기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종회 의원인 법철 스님의 양심선언 광고, 석림 동문회의 제2정화 운동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선언과 운동은 결국 개인의 영리 차원이상이 아니었다는 지척이 많다. 바야흐로 대처를 몰아내고 세운 비구 종단인 조계종이 다시 대처의 변형에 불과한 은처 문제로 바람잘날이 없는 팔이 된 것이다. 사실 은처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내부적으로도 이의 해결이 한국 불교 제일의 파제라는 데에 이의가 없다는 것이 주된 여론이다.
이제 개혁위가 이번 발표회에서 제기한 내용들을 부분적이나마 살펴보도록 하자.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번 발표회는 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수적인 면에서 압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주제가 다방면에 걸친 아주 구체적인 언급이 특정임에도 종단의 권력 구조 문제는 빠져 있음이 쉽게 눈에 띈다. 즉 개혁위의 공고를 보면 총론. 계율,의식, 교육. 포교. 사원 경제, 기타 등으로 논의 분야를 나누었고 배포된 자료를 보아도 종무 행정에 관한 글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과거와 다른 특색이 있다면 계율과 청빼 대한 부분이다. 은처 문제뿐만 아니라 어른에 대한 공경, 복식과 음식 문제와 같은 계율이 명에 떨어진 요즈음에 그것 을 내세운 것은 오히려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리고 교육 문제에 관한 글이 매우 비중 있게 발표되어 그 중요성의 정도를 엿보게 해 주었다. 그밖에 통과 의례(탄생, 성인, 결혼, 예장, 제례식 둥)의 정비와 시행, 불교 예술의 전통과전망 들에 관한 글들이 발표되어 본질 문제로의 접근은 아니나 일상 신행 활동에서는 매우 긴요한 문제가 제기된 것처럼 보인다.요즈음 종단 분규의 가장 큰 원인인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동국대 김갑주 교수는“사원 경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재정 관리 체계위에서 전문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통일적이고 공개적인 관리를 역설하였다. 아울러 각 사찰간의 공동 분배, 전문인 양성올 위한 과감한 투자,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등을 주장하였다. 한마디로 개혁위의 이번 토론회는 본질적인 문제는 빠뜨리면서 지엽적인 문제의 제기와 해결 방안만을 모색하려는 의도에서 전개된 것으로 추측된다.
좌절뿐인 제도 개혁의 역사
근년에 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전면에 떠오른 계기는 무엇보다도 비상 종단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83년 신흥사의 주지직 다툼이 끝내 승려 살인 사건으로 번짐으로써 출범한 비상 종단은개혁을 그 존립의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비상 종단이 내세운 개혁의 기본 내용은 첫째 종단 내부의 불합리한 채도와 모순을 척결하여 우리 역사와 사회의 요구에 부용할 수 있는 종단 체제를 갖추고X} 하였으며(민주집중제의 도입). 둘째 문중파벌 ·폭력 ·금력에서 비롯한 종단 분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종단 풍토쇄신법을 제정하고 종단의위계 질서 확립을 도모하였다. 셋째 주지나 재무 관계자의 전횡과 금력에 의한 분규를 막기 위하여 사찰재정을 공개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사찰의 운영과 관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화하였다. 넷째 포교의전문화와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전문 포교사 제도(납:전법사. 여:전교사)를 두었다. 다섯째 본사 중심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 단위에 따라서 교구를 마련하는 중앙 집권 체제를 마련하고.
재가 신도에게도 종단 운영참여권(종회 참여, 대의 기구 위원 선출권 )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혁신적이고 구체적인 개혁안을 마련하고 의욕적으로 실천하려 하였던 비상 종단은 종단 내의 보수 기득권 세력파 권력의 공작으로 84년8월에 좌초하고 말았다.(노태훈. ‘불교개혁운동의 재조명’ ,“숲과 나무”,1988년 6월호.)비상 종단이 좌절된 뒤에 종단에서 제기된 개혁안은 늘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중흥회의 제도 개혁의 골격도 이것과 비교해보았을 때에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뿐만 아니라 88년 11월에 작성되고 이듬해 11월 정기 종회에서 보고된“제도개혁 연구 보고서(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제도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 김능혜 제출, 4x6 배판.76쪽 분량)”도 비상 종단에서 제기한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88년과 89년의 제도 개혁이 당시의 종단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도 최근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봉은사 사태 동으로 종권에 위기 의식을 느낀 서 원장은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정풍회와 해동불교신문과 같은 정치 성향이 짙은 몇몇 재가 그룹이 다른 차원에서 공청회를 열어 나갔다. 그러나 이 때에도 개혁특위의 연구 보고서가 거부되었고 그 뒤로는 그것마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또한 그들은 종단의 정치 상황에 따라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대중적인 신망을 완전히 앓고 나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처승을 몰아내고 비구승이 한국 불교의 주류로 나서게 된 1950년대의 정화운동도 지금에 와서는 그명가가 매우 엇갈리는 형편에 놓여 있다. 한국 불교전체를 접수하고 주도할 만한 내적 준비가 매우 취약한 처지에서 이승만 정권의 도움으로 무리하게 대처승을 몰아낸 그 파오가 오늘날의 분규로 재현된다는 것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처승 문제는 은처승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다시 다가왔다. 현대 한국 불교에서 외치는 개혁의 내용 가운데에는1913년 발표된 만해 한용운의 “조선 불교 유진론”에 담긴 열두 개 항의 골격이며 많이 틀이 있다.
멀리는 만해 선사로부터 가깝게는 비상 종단에 이르기까지 재기된 제도 개혁의 기본 골격이 아직도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 개혁안이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지금도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주체 세력의 형성이 관건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이유로는 이 작업을 추진할 주체 세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 또한 비상 종단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운데에 하나가 정권의 공작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유력 해짐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89년의 개혁 운동이 흐지부지 된 것은 그 추진주체들의 문제 제기의 동기나 성향을 보았을 때. 진정으로 개혁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종권의 유지와 계속 장악을 위한 명분으로 내세운 제도 개혁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견이 나와도 그것의 실천은 별개의 것이 되어 버린다. 더욱이 이번의 종단 분규도 권력이서 원장측에 힘을 줌으로써 잠시나마 잠잠 혜지는 추세이고 보면, 그 결과는 너무뻔한 작업으로 그치고 말것이다. 다만 이제는 종단분규도 명분과 정책적인 대안이 분명하지 않았을 때에는 한낱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켜보는 대중들의 눈초리 또한 더욱 매서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연장선위에서 기존의 종권자나 종권 지향자들은 비록 어느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개선책일지라도 성실한 자세로 임해 주었으면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지난 여름부터 처음으로 시작한 행자교육과 같은 사업은 계속문제점을 보완하면서 꾸준히 전개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본적이고 진정한 개혁은 대중에 기반을 둔 건강한 주체 세력이 마련되어야 성사될 수 있다. 양심과 능력이 있는 주체 세력이 형성되어야 외부의 입김을 막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방해하는 불교 내의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들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