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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난 속에 커가는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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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정암 1991년 11월 117호
저녁 숲을 헤치는 바람은 어느덧 스산한 서걱거림으로 골짝 물소리를 재운다. 짙푸른 녹음이 부대끼던 그 풍성하던 여름의 노래가 아련한데 계절은 성큼성큼 걸음을 서둘러 이미 가을이다.
차창 밖으로 감아 돌던 계곡과 버스에서 내려 둘러보던 가을 산도 좋기만 하더니, 그 품에 뛰어들어 부서져 내리는 햇살과 어우러진 숲 자락을 사방으로 둘러 세우면 걸음걸음마다 가올 색이 짙어간다. 이제는 낯익은 해인의 숲길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가슴팍까지 뻐근하게 숨이 차오른다.
길 옆에 자리잡은 저녁 햇살을 환히 받는 넓직한 바위에 앉아 두 무릎을 모아 앉고 가쁜 숨을 고르자니 잊고 지내려던 온갖 상념이 가만가만 가슴을 헤집고 든다.
일 년 전. 늦가을의 붓끝이 그 화려한 마지막 덧칠을 미쳐 갈 무렵. 나는 기댈 곳 없는 허전한 가슴을 부여안고 해인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때까지는 웬일인지 좀처럼 마음이 내키질 않았던 곳이다. 그 당시에는 나는 대학졸업반의 가을이 주는 막연한 우울함과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까닭 없는 불안이 아직도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한 감상과 어울린 일반적인 이유 말고도 내가 그때까지 움켜쥐고 버티어 오던 나름대로의 거창한 세계와 역사에 대한 이상이, 삶이라는 치열하고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부딪쳐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그저 감수할 수밖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서 속철 없이 얽힌 인간 관계에서 맛본 좌절은 그 가을의 내 모습을 더욱 초췌하게 만들었다.
가을 단풍을 한두 번1보아 온 것도 아니겠으나 그때 내 눈앞을 막아 서던 그 산 빛. 그 물빛은 가슴이 서늘하도록 사무쳐 왔고 새소리, 바람 소리, 귀가 시린 물 소리에 무어라 떠들며 웃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리들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줄지은 관광객들의 뒤를 쫓아 큰절 마당까지 들어서고 보니 산사의 오후가 지닌 안온함이 압도하였고 밟게 감도는 향내음에 흔들리는 대적광전 부처님의 그윽한 미소는 보는 이의 눈매마저 부드럽게 만드는 듯하였다. 경내를 이리저리 서성이는 사람들을 피해 낙엽이 수북히 쌓인 숲길을 걷자니 문득 가슴에 담아 용 온갖 무거운 짐들이 발끝에 채여 가벼이 굴러가는 색 바랜 낙엽들 만큼이나 부질없는 허상으로 여겨졌다.

늦가을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고운 산 빛을 실은 햇살은 아직도 따가웠다. 나는 햇살의 온기를 머금은 양지녘 바위 위에서 시간도 잊은 채 한참을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머리 속을 가득 채웠던 잡념들이 기울어 가는 햇살따라 하나둘씩 스러져 가자 이겨낼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메마르게 느껴지던 생활도 결국 서툴게나마 내가 보듬어야 할, 함부로 벗어 던질 수 없는 뜻 있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손을 잡아 주지 않아도. 누가 철없는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아도, 누가 굳이 위로의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나를 에워싼 자연 속에서 한없는 위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다만 그렇게 고맙고 신비로울 뿐이었다. 늘 무심하게 스쳐 지나던 산과 불과 나무와 하늘이 무엇인가 뜻 있는 존재로 다가오는 새로운 느낌은. 어쩌면 지금은 낯설어진 인간과 자연과의 가장 자연스로운 관계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그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호하게 둘러친 허위와 교만의 울타리 안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오늘날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걸 없는 지극히 삭막한 것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별다른 준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작은 인연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넉넉히 비워둔 마음자리가 고마운 만남들을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간절하기만 하던 철없는 빈 가슴을 가없이 그득 채워 주던 그 해 가을 산과의 잊지 못할 만남은 다시 찾아온 계절 속에서도 새롭기만 하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시리도록 고운 이 산 빛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갈 가을의 뒷자리가 바람이 차가울수록 옷깃을 올려 세우기보다는 서로의 체온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계절이었으면 한다

백경숙씨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영남대 대학원에 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요즈음은 참선공부에 뜻을 두고 선수행하는 도량을 찾아 참선에 열심이다.


법난 속에 커 가는 불교
정암

현대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만남들과 부딪친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사건 현장 속에서 사건과의 만남 들이 모두는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무엇인가를 맺어 간다. 그와 같은 여려의 만남가운데에서는 1600년에 걸친 한국불교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오욕의 그람자에 맞서서 정법을 수호하려 하였던 현장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땅의 정신적인 지주임을 자부하여 온 민족 종교로서, 민족을 올바르게 이끌어 왔다고 말하여 온 한국 불교에게 밖으로부터 가해진 허울좋은 명분의 정화하는 이 땅, 이 민족의 혼을 밟아 버린 것만큼이나 심각한 정치적인 도구로써 한낱 이 나라의 파행적인 정치 행태와 그 맥락을 같이 할 뿐이다. 법난과 정화라는 상반된 개념 속에서 법난 이후 우리 불자들은 과연 얼마 만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였으며, 또한 역사와 사회 속에서 주인 된 의식을 가치고 올곧게 그 책무를 다하여 왔는지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가 탄압 받을 때마다 그에 맞서는 불교인들의 대응은 그저 일회성에 그치는 규탄 집회였을 뽕, 구조적인 모순에 맞서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6공 법난’으로 불리면 지난 89년 9월의 동대 사태가 났을 때에도 제등행렬 폭력 사태를 규탄하는 법회 때에도 다만 분노의 성토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불교 자주화의 대오에 동참하였던 대중들의 뜨거운 열기는 더 이상 좌시만 할 수 없던 불교 대중의 외침이자 이제까지 소외당하고 억눌려 왔던 불교계의 사FF후로서 불교의 자주화에 한 획을 그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10·27 법난, 원각사 사태, 제둥 행렬 폭력 사태 들에서 보듯이 교계의 지도자인 큰스님들이 군화에 무참히 짓밟히고, 신성해야 할 법당과 제등행렬이 최루 가스에 질식되어야 했던 그 모든 일들을 그저 자비라는 한마디로 치부하고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사자는 자기의 현실을 올곧게 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 나아갈 바를 찾는 데에서 진정한 사자다-움이 있는 것이지, 현실을 외면한 채 덧없는 수행을 고집하였을 때에는 플내 늙고 병든 사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또 한 연꽃은 더러움을 이겨 아름답게 피었을 때에 연꽃으로서 더욱 빛난다. 우리는 진정 스스로가 사자로서 그리고 연꽃으로서 존재하여 왔는가를 자문해 보。싸 할 것이다. 세간을 떠나서 도를 구하는 것은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꿈을 구하는 어리석음과 같아서 우리 불자들은 이 시대와 역사 앞에서 누가 주인이며 무엇이 주인 되는 일인가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여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
‘불교의 자주화’라는 구호는 익히 들어온 말이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원인으로는 흔히 정권에의 예속성, 종단의 봉건성. 역사 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피동성을 보기로 든다.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은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길은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직시(正見)하는 것이 무엇보다 으뜸이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의 주체로서 이 민족을 이끌어 왔던 불교가 지금에 와서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여 자신의 위치를 잃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 불교가 이 땅의 주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예속성, 봉건성, 피동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 진다. 교육과 조직의 문제를 풀어 가려는 의치와 그릇된 불사에 연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 혁신을 이룩함으로서 불교 내부의 힘을 강화시키고 민중들의 삶이 겸허한 자세로 다가서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깨달아 세계의 쿠인으로서는 일이다.
법난이라고 이름하든 정화라고 말하든 우리 불교가 역사의 거대한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내외의 사건은 우리에게 시련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만남이 불교를 더욱 키우는 것이냐, 죽이는 것이냐는 우리 불교전체 구성원의 대응력과 생명력일 것이다. 병든 사자처럼 썩은 고목처럼 외부의 충격에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불교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고, 그러한 충격에 분연한 자기 주장과 냉철한 자기 돌아봄이 실천적으로 병행된다면 오히려 법난은 우리를 키우는 약이 될 것이다.
이조 오백여년 동안 천대 받아 산중으로 쫓기고, 일제의 압제 아래 해체되고, 서구화의 물결에 밀려났으면서도 스스로의 생명력을 꾸준히 키워왔던 불교. 우리의 울타리요, 우리의 최종 지향점이요, 지극히 현재적인 우리 존재 전부인 불교. 그 불교가 이제 좀더 고난 속에서 커 가고 성숙한 모습으로 자리ㅈ바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총제적 집적물일 수밖에 없는 역사, 이제 우리 불교가 그 역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정당한 역사의 소명 의식에 복무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지난 해인사 승려대회 때에 손가락을 절단하면서 절규하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불자여! 눈을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