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의 기반 위에 올려 놓게 되면 가르침에서 더욱 중요한 기능을 하는名 등의 위치가 모호해진다. 그래서, ꡐ名身, 句身, 文身은 각기 차례대로 行列, 安布, 連合하는 기능을 한다. 소리라고 하는 것은 다만 展體因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리는 名을 일으키고, 名 이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ꡓ라는 입장에서 名 등의 역할을 창조하게 된다. 전전인이란 가르침을 발생론적으로 캐물어 들어가면 소리가 최초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논에서는 이를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져온 원인을 캐들어 가면 할아버지가 손자의 원인이 되듯, 소리-名 -의미의 관계에서 소리는 다만 전전해 나온 원인이 될 뿐이고 중요한 것은 의미이므로 의미를 담고 있는 名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실제 가르침에서 소리-名-의미의 三重의 관계 중 名의 역할은 큰 것이다. 따라서 비록 聲을 敎体로서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의 의도는 名 등을 교체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4대 나한의 評家들은 語業이 敎体라는 입장을 正義로 취하고 있다.
㉡순정리론의 입장 :구사론과 雜心論에는 敎法이 語와 名을 함께 体로, 따라서 色蘊과 行蘊에 포섭된다는 게송이 있다(현담에서는 이 입장을 聲, 名 양자를 포섭하는 제3의 입장으로 세운다). 별다른 논평 없이 두 견해를 포괄하는 듯이 보이는 이 게송을 순정리론은 오직 名만이 体라는 입장에서 반박한다. 즉, 가르침이란 의미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므로 의당 의미를 담고 있는 名 등을 가르침이라 해야 한다. 소리 하나만 가지고는 가르침을 수행할 수 없으며, 自性差別 동의 의미를 설명하는 名 등이 있어야 비로소 가르침은 성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名만이 진정한 가르침의 体가 된다는 주장이다.
현담의 의도는 바사론의 두 견해를 대비시키고, 이를 評家師와 經部의 입장, 순정리론과 현종론의 입장으로 배속하여 구사론과 잡심론의 第三의 입장으로 유도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현담의 주석서인 會玄記(卷 32)에서는 이를 지적하고 있다. 어쨌거나, 제삼의 입장을 살펴보면, 논쟁의 핵심, 현담의 의도 따위가 좀 더 명백해진다.
(다) 四法이 모두 가르침의 体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구사론과 잡심론의 게송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낸 구사론에는 그 게송에 대한 별다른 설명도 없고, 교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도 없다. 그래서인지 현담에서는 순정리론에서 經部의 입장을 비판하는 부분을 인용해서 名 또한 体가 된다는 입장을 변호하는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구사론은 經部의 입장에서 名 등의 불상응행법은 假有라는 전제를 갖고 있고, 반대로 순정리론은 名 등이 실재한다는 입장에서 의미를 能顯하는 名을 實體로 보는 입장에 있다. 순정리론의 비판은 구사론을 포함하여 名 등의 假有를 주장하는 經部 전체에 미치는 것이어서 이 비판이 구사론의 세번째 입장을 보완해 줄 수 없다. 아뭏든 이 비판은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經部의 주장 : 名句文의 三法은 聲을 体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聲만을 体로 보아 色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有部에서 不相應行의 名 등을 다시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물론名 등의 능전으로서의 기능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님).
㉡순정리론의 비판 : 첫째, 敎證 … 經에서는 語身과 별도로 名身句身을 설명한다. 이것으로 보아 의미를 能詮하는 名身 등이 별도로 실유함을 알 수 있다. 둘째, 理證… 우리는 때로 소리는 들었지만 그 뜻을 모를 때가 있고, 반대로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상황을 미루어 의미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이는 의도하는 문장이 소리와 관계없이 전달될 수도,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 이처럼 명구문은 소리와 별도로 실재한다. 셋째, 例證… 나무는 四大의 合成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 나무의 그림자는 나무의 綠 등을 벌어 假發한 것이지만 그 그림자의 体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名句 또한 문장의 綠들어 모여 別生한 것이지만 그 体는 實有한다.
㉢현담의 의도와 그 해석의 난점 : 현담에서 이 세 가지 견해를 맞세우는 목적은 대승에서의 세 가지 견해와 대비하여 대승의 교학을 통해 소승교학의 난제들이 훌륭히 해결되고 있음을 보이자는 데 있다. 이는 교학의 모든 異見들을 화엄교학의 완전한 체계 안에 포섭해들이려는 꾸준한 시도의 소산이다. 그러나, 현담이 원하듯 세번째 입장을 주장하는 교학이 실재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名 등의 三法을 정의 내리는 문제에 따른 유부와 경부의 논쟁이 된다. 經部에서 또한 名句文의 기능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고, 名등의 假有가 聲을 体로 하여 의사전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입장이다. 會玄記에서도 현담의 오류를 지적하고, 경부의 견해가 대승의 体用論에 근거를 제시하는 견해로서 오히려 이를 더 부각시켰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교체론은 名 등이 實有인지 假有인지를 둘러싼 논쟁-실재론과 명목론의 논쟁과도 같은-의 전제들 위에 성립해 있다. 교체론 자체가 갖는 고유한 의의를 살리기 위해 그 같은 존재론적 논쟁에 광범위하게 휘말려들 필요는 없겠지만 名 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경전해석의 방편들에 크게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 만큼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는 대승의 이론들은 매우 교묘하고 독특한 것이다.
*增語; 단순한 소리에다 의미를 증여함으로써 의사소통의 길이 열리므로 이를 語路라 한다. 여기에 의미 부여가 名을 통해서 이뤄지느냐, 意識을 통해 직접 이뤄지느냐 하는 異說이 있다. 교체론이 있어서 名의 위치는 중요하다. 물론 어업이 体라는 입장에서는 名보다는 의식과 어업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