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이란 매순간 되풀이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씨줄과 날줄로 짜여지는 것이지만,나에게는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왔던 한남의 장면이 있다. 저만큰 TV카메라가 있고 아나운서가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를 때마다 홀 안을 온통 눈물 바다로 만드는 이산가족 찾기의 현장 중계. 무슨 말도 확인도 하기 이전에 봇물 터 지듯이 눈물을 쏟으며 서로를 부여안고 뒹굴며 몸부림치는 혈육의 재회.
눈물로 애태우면 헤어짐의 세월을 넘어서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형제자매의 모습들. 그것은 참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절절한 우리의 현실을 두고 하는 말임을 확인시키는 장면들이었다.
그 눈물겹고 목메이는 재회가 있기까지 그들의 삶이란 얼마나 찢기 우고 내몰리는 한스러운 것들이었는가. 우리나라 사람은 한도 많고 눈물도 많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만큼 한 민족 한 핏줄로 긴 세월을 살아왔고, 그 세월만큼 무수한 고난을 함께 겪은 민족도 드물다.
일제의 강압에 쫓기고, 분단과 전쟁의 광기에 죽임을 당하던 우리의 평화로운 삶. 그래서 시인은 이슬에 젖은 황돗 빛 보드라운 흙을 보고도 전쟁의 상혼을 이야기하고, 흐르는 계곡물은 민족 분단의 고통으로 흐느끼지 않는가. 전장에 나갔던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들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아픔이,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남편의 행방을 몰라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애달픔으로 지새우던 젊은 아낙네가, 폭격을 피해 이리저리 떠몰리다가 누나의 손을 놓쳐 사고 무친의 고아가 되어 버린 사내아이가, 그렇게 그리움과 애끓는 한으로 한꺼번에 울어 버릴 때에 나 또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이념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삶을 이렇게도 찢어 놓고 사무치는 한을 남겨 놓았는가. 분명 이산 가족의 눈물겨운 재회는 잊혀져 가던 민족 분단의 고통을 다시 확인시켜 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이 시대, 못난 우리의 자화상은 또 어떠한가? 남들은 잘도 만나고 대화하면서 통일이니, 국가 연합이니 하면서 자기 민족의 살길을 도모하는 데 못난 우리는 아직도 휴전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근래에는 남북 고위 회담이니 경제 교류니 체육 교류니 해서 남북이 화해부터 한 뒤 통일의 길로 갈 것 같은 기미가 보여 무엇인가 기대를 갖게도 한다. 그러나 이 핑게 저 핑게로 회담을 지루하게 끌어오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정권 담당자들은 다만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통일 쇼를 하는 것 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크고 열렬한 만남. 그것은 곧 남북의 핏줄이 다시 이어져 온통 기쁨에 겨운 아우성으로 만나는 통일이 아니던가. 북으로 향하던 차창을 온통 눈물로 얼룩지게 하면서 사십여 년 만의 만남을 기쁨과 슬픔으로 자맥질하면서 안타까워 하던 남북 이산 가족의 재회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벼락같이 서울에 와서 잠깐이나마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만나고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길을 떠나가는 장면도 정녕 우리 시대, 우리 삶만의 기막힌 운명이 왜 아니겠는가. 개마 고원 높은 산마루의 진달래꽃 찍어 주고, 호남이라 너른 벌판 논둑에 앉아서 술사발을 나누고,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신나는 기차 여행을 하며, 남파 북아 오손 도손 한집안 살림을 가꾸는 날은 잔정 언제인가.
나는 요즈음 학생들의 통일 운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통일을 하자면서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 여학생이 느닷없이 평양에 가고 판문점을 넘어오고 하는 것이 통일 운동의 한 방법이겠거니 하는 정도가 나의 이해 수준이다. 그러나, 어느 여름날 뜨거운 땡볕 아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그 현장에서 매운 최루 가스를 맡으며 듣던 노래 한 구절이 절절한 통일의 열망으로 고동치던 것을 지울 수가 없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최루 가스에 쫓기어서 일순간 텅 비어 버린 거리를 힘없이 응시하며 한 여학생이 가로수에 기대어 낮은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 바로 “직녀에게” 라는 노래였다.
그렇다. 남과 북의 그 열렬한 만남,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우리는 쉬지 않고 노둣돌을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