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 자리잡은 사찰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네 개의 기둥을 사방에 세워 지붕을 얹는 것이 원칙이나 일주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위에 지붕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건축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해인사 일주문은 홍하문紅霞門이라고도 한다.
붉은 노을은 붉은 광명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를 상징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몸 빛깔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주문을 홍하문이라고 한 것은 부처님이 계시는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경주 불국사의 자하문도 홍하문과 통하는 이름이다.
이와 같이 일주문은 중생이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서, “처음 발심했을 때가 곧 바른 깨달음의 세계”라고 설파한 화엄경의 초발심을 나타낸다. 해인사 일주문 두 기둥에 ‘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를 뻗쳤어도 항상 오늘이니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라고 쓴 주련을 걸어 놓은 것도 이러한 불국토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번째 문으로 들어서는 마음의 영원성을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의 자세로 들어섬을 수용하는 일주문에는 문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담도 없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제13권에 나오는 해인사 일주문 사진에는 양 기둥 옆으로 날개처럼 아주 짧은 담이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담은 마치 선禪 수행의 점진적인 단계를 보여 주는 십우도의 소와 동자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경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인사 일주문의 담은 1948년 일주문 앞에 기단과 계단을 새로 조성하면서 헐려 없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도 일주문 양옆으로 낸 담을 볼 수 있는 사찰로는 구례 화엄사가 있다.
해인사 일주문 정면에는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뒤편에는 ‘해동제일도량海東第一道場’, 내부 중앙에는 ‘홍하문紅霞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정면 현판은 근대 서예의 대가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글씨이고, 뒤편 현판은 고령 지방의 명필 박해근朴海根의 글씨이며, 홍하문은 주원영朱源榮의 글씨다.
일주문의 창건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1457년(조선 세조 3년) 봄에 중수하여 그 뒤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수한 때가 1940년인데, 그 때 주지였던 설호雪 스님이 주관하여 도목수 이화백李花白의 솜씨로 이루어졌다. 일주문은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를 갖춘 건물로 주변 경치와 어우러짐이 돋보인다. 일주문 앞 기단 오른쪽에는 ‘불기 2975년’, 왼쪽에는 ‘무자 개축 戊子 改築’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불기 2975년이란 서기 1948년에 해당하지만,서기 2001년을 불기 2545년으로 계산하는 오늘날의 연대 환산법과 차이가 있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 양쪽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이 서 있는 긴 진입로를 지나면 그 앞으로 봉황문이 서 있다.
‘해인총림海印叢林’ 현판이 걸린 문인데, 이 봉황문은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천왕문 대신 사천왕문 또는 금강문이 있기도 하고, 어떤 사찰에는 천왕문 앞에 별도로 금강문이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일주문에는 출입문이 없는 반면에 천왕문에는 출입문 두 짝이 설치되어 있고, 이 문짝에는 불법을 호지하고 도량을 수호하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왼쪽의 수문신장은 밀적금강,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이라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저라는 무기를 들고 입을 다물고 방어할 자세를 취하고 있고, 나라연금강은 힘이 센 천상계의 역사로서 입을 크게 열고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 두 역사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해인사 봉황문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 탱화를 모시고 있다.
이 탱화는 1932~3년에 지송파池松坡가 조성하였다고 한다. 외호신이란 불국 정토의 동?서?남?북 네 외각을 맡아 지키는 신으로서,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 또는 비사문천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지국천왕은 몸은 약간 푸른 기운을 띠고 있고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증장천왕은 붉은 기운이 도는 몸에 노란 눈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용을 움켜잡고 있고 왼손으로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광목천왕은 몸은 백색이고 오른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고 있다. 다문천왕은 몸은 흑색이고 왼손에는 비파를 잡고 오른손가락으로 비파줄을 튕기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악귀를 내쫓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상을 천왕문에 모시는 것은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만들어 신성한 장소로 들어가게 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수행자가 발심하게 하는 수미산 중턱에 있는 문이기도 하다.
“우레가 치니 천지가 동시에 사자후하고, 비가 개이니 강산이 한결같이 푸르다.
만물이 지극하면 고기와 용이 능히 변화하고, 도가 정미로우면 석불도 절로 신령스러워진다.” (雷鳴天地同時吼 雨霽江山一樣靑 物極魚龍能變化 道精石佛自神靈) 고 해강이 봉황문 기둥에 쓴 주련은 바로 이러한 뜻을 나타낸다.
봉황문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봉황문 상량문에 의하면, 1717년에 중수, 1761년에 재건하였으며, 1817년 화재 때 전소된 것을 1821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봉황문을 지나 그 앞에 벼랑처럼 서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해탈문에 이르게 된다.
해탈문은 다른 사찰에서는 흔히 불이문이라고 한다. 불이(Advaya, non-duality)는 둘이 아닌 경지를 뜻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생사가 둘이 아니며, 세간과 출세간, 색과 공 등 모든 대립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말한다. 따라서 불이문은 이 곳부터는 모든 중생적인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처님의 나라임을 상징한다.
해인사 해탈문 역시 수미산 중턱의 봉황문을 지나 수미산 정상에 있는 문으로서,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을 이룬 세계인 도리천 입구에 있는 불이의 경지를 상징하는 문이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들어설 때까지 진입로가 길고 계단이 가파르게 난 것이라든가, 계단 숫자가 33단인 것도 불국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리천 33천에 올라서야만 불이문에 이를 수 있음을 상징한다.
해탈문 기둥에 걸린 주련에 “비로자나불 원력이 법계에 두루하여, 최후의 승체로 보리도량에 나오시어, 원해탈 심인으로 금강보좌에 오르시고, 가야산중에서 무상정각을 성취하셔서, 해인삼매에서 대화엄경을 상설하신다.
일백사십 공덕은 이승과 같지 아니하고, 팔만사천 법문은 십지를 높이 뛰어넘으셨다.” (毘盧遮那佛願力周法界 以最後勝體詣菩提道場 圓解脫深因登金剛寶座 伽倻山中成就無上正覺 海印三昧常說大華嚴經 一百四十功德不共二乘 八萬四千法門高超十地) 고 한 말씀도 같은 맥락을 나타낸다.
해탈문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1490년 성종 연간 해인사를 확장 중수할 때 중문도 새로 건축하고 불이문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데, 그 문이 해탈문일 가능성이 크다.
해탈문은 1817년 화재 때 소실된 것을 제월霽月 화상이 1818년에 재건하며 ‘해동원종대가람’이라 하였다고 한다.
‘해동원종’이란 선종 구산 13종을 통합 일원화한 진실, 원만한 교리를 말하는 종파, 즉 화엄종을 뜻한다. 현재의 건물은 1899년(광무 3년)에 범운梵雲 스님이 중수한 바 있고, 1936년에 다시 설호 스님이 중수하였다.
해탈문의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 남쪽 정면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존경하던 만파萬波 스님이 1865년(고종 2년)에 쓴 친필이고, 북쪽에 있는 ‘해인대도량海印大道場’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다.
해탈문 주련 글은 1939년 당시 주지 설호 스님이 짓고, 글씨는 1941년 진주의 서예가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의 필적이라고 한다.
흔히 사찰에 들어가는 문은 사문, 산문, 삼문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에는 “삼문”이라고 불렀다. 중국 문헌인 《사탑기》, 《역대명화기》에 기록된 사원에는 모두 “삼문”이라 하였다.
사찰이 삼문을 한 이유를 송나라 석도성釋道誠은 《석씨요람釋氏要覽》에서 “무릇 사원에는 삼문이 있다. 문이 하나만 있는 데 삼문이라 부르는 것은 왜 그러한가? 《불지론佛知論》에 의하면, 대궁전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이 입구가 된다.
대궁전은 법공열반을 말하는 것으로 삼해탈문은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을 말한다.
오늘날 사원은 수도하여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삼문으로 들어간다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삼문을 산문이라 고쳐 부른 것은 송?원나라 이후부터다.
조선시대 사람인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지수재집知守齋集》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에서 “해인사 입구에는 삼문이 있는데, 그것은 차례로 홍하紅霞, 봉황鳳凰, 해탈解脫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이라든가, 1490년에 중문을 불이문으로 이름을 고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해인사에는 이미 17세기보다 훨씬 이전에 홍하문, 봉황문, 해탈문 등 삼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삼문이 위치한 곳은 해인사의 진입공간에 해당한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수도생활공간,예불공간, 대장경이 봉안된 법보공간에 이르는 과정은 불교 신앙체계와 통하고, 그 속의 공간과 건물들은 이러한 신앙체계를 수행하는 매체들이 된다.
특히, 사찰을 들어가며 체험하는 공간과 건축물들은 사찰을 찾는 참례자들에게 특정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 중에서도 해탈을 통한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과정인 고?집?멸?도의 사성제는 바로 사찰 여러 공간과 대응한다.
속세에서 불국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세속 현실이 고통이며 괴롭다는 진리의 고성제에 해당한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이르는 공?무상?무작의 삼해탈문이 위치한 공간은 괴로움의 원인을 살피는 집성제에 해당하고, 주불전이 있는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은 괴로움이 사라져 해탈에 이르는 멸성제의 경지에 이르는 곳이며, 대장경이 봉안된 판전이 있는 곳은 괴로움을 없애는 길의 진리를 밝히는 도성제의 공간이 된다.□